[봉이 씨가 선물한 여정][라이프] 여정의 마지막, 대구와 경산

2026-01-14


봉이 씨가 선물한 여정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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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니 집이 조금씩 그리워졌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에 들러 친구를 잠시 만나고 이 여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대구로 내려가는 길에는 일부러 동해안을 따라 천천히 달리는 열차를 탔다. 대학교 신입생일 때 전국을 여행하며 타 본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때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그저 아름답게만 보였는데, 이제는 해안을 따라 늘어선 공장과 상점, 논과 밭, 그곳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세월이 흘렀기 때문인지 머무는 나의 시선도 변해 있었다.


생각에 잠긴 채 수십 개의 작은 역을 지나, 어느새 대구에 도착했다. 역에서 만난 친구 지훈은 책과 노트북이 든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나를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지하철을 타고 대구 시내로 이동하는 동안, 지훈은 자기 집에서 하루 묵고 가라고 권했다. 얼마 전 결혼한 지훈 부부에게 민폐가 되지는 않을지 잠시 망설였지만, 오랜만에 만난 만큼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 그러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일정은 그렇게 하루 더 미루어졌다. 지훈은 8년 전, 내가 다시 캄보디아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함께 연수받았던 동료다. 그때 나는 인생의 큰 방황기를 지나고 있었는데, 처음 만나는 사이였음에도 지훈은 내 이야기에 묵묵히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고작 일주일을 함께 보냈을 뿐이지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덕분인지, 우리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안부를 주고받으며 지낸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카페에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하나하나 떠올릴 수는 없지만, 웃고 떠들며 보내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잊고 지내던 일상을 살아가는 감각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대구 옆 경산에 있는 지훈의 집에 가서도 대화는 이어졌다. 처음 만난 친구의 남편과는 다소 어색했지만, 나를 배려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우리는 밤늦도록 함께 영화를 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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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이 씨가 잠든 봉이 나무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봉이 씨 생각이 밀려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막 잠에서 깬 지훈은 말없이 나를 토닥여 주었다. 어제부터 지훈은 혹시라도 내가 힘들까 봉이 씨 이야기를 일부러 꺼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괜찮아?” 같은 뻔한 질문 대신, 그저 함께 일상을 보내며 자신의 공간에서 편안히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제야 알았다. 어색한 위로나 조언 대신, 곁에서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덕분에 나는 이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9일 동안 8명의 사람을 만났다. 무심한 듯 챙겨주던 친동생, 편히 쉬도록 맛있는 음식을 내어주고 함께 있어주던 홍선, 바쁜 시간을 쪼개어 위로를 건네준 유니 님, 나의 슬픔에 깊이 공감해 준 정순, 봉이 씨의 어릴 적을 떠올리게 해준 새샘, 내 사정은 알지 못했지만 든든한 저녁 한 끼로 응원을 전한 책방 사장님, 그리고 평범한 하루를 함께 보내며 마음을 보내준 지훈과 지훈의 남편. 봉이 씨를 떠나보내며 나는 마지막으로 “내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그 말처럼, 봉이 씨가 선물한 이 여정에서 나는 내 곁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알게 되었고, 공허함 속에서도 다시 삶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


짧은 여정이 끝난 뒤에도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멈춰 있을 것만 같은 시간은 무심하게도 계속 흘렀고, 나는 봉이 씨를 애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불교 의례에 따라 봉이 씨의 49재가 되던 날에는 정순과 함께 내가 자주 찾는 뒷산에 올라 봉이 씨의 유골을 묻었다. 조금 남은 유골로는 봉이 씨를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메모리얼 목걸이도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내기 위해 애쓰는 날들이 이어졌다. 책을 읽고, 심리 상담을 받고, 명상 수련을 다녀오고, 또 이 글을 썼다.


누군가의 죽음은 그 경중을 따질 수 없이 남은 사람에게는 깊은 슬픔으로 남는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모든 생명의 이치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갑작스럽게 생긴 빈자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막막해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봉이 씨를 떠나보낸 직후에는 슬픔뿐 아니라 죄책감, 분노, 미안함, 외로움과 공허함까지 다양한 감정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 앞에 애써 도망쳐 보기도 했고, 금세 괜찮아질 것이라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했다. 하지만 슬픔은 그렇게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봉이 씨가 떠난 후 두 달이 지났을 무렵에는 다시 한 번 짙은 슬픔이 몰려와 나를 깊은 곳으로 끌어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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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얼 목걸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봉이 씨가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봉이 씨와 함께 지내며 눈을 맞추던 일상이 더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나는 여전히 그 시간을 건너는 중이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봉이 씨가 그리운 날이면, 봉이 씨의 유골을 뿌린 뒷산을 올랐다. 봉이 씨는 내게 모든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대나무숲 같은 존재였는데, 이제는 봉이 씨 나무 앞에서 나의 일상을 전한다. 그러면서 점점 나는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봉이 씨에 대한 슬픔만이 온전히 남아 있음을 느낀다.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다가도, 어떤 날은 슬픔이 유난히 짙어진다. 다만 이 슬픔이 알맹이 없는 것이 아닌 봉이 씨와 나눈 깊은 애정이 남긴 흔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내 삶이 오직 봉이 씨를 향한 슬픔만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는 것도 안다. 이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지금도 내 곁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밥을 든든히 챙겨먹고 삶을 뚜벅뚜벅 살아가려 한다.


봉이 씨가 투병할 때, 내 다리에 남긴 할퀸 자국은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 있다. 자기를 오래도록 잊지 말라고 남겨 둔 표식이겠지. 비록 봉이 씨의 마지막이 투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웠지만, 나와 함께 지냈던 11년이라는 시간이 조금이나마 봉이 씨에게 즐겁고, 평안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봉이 씨를 오래도록 “멋지고 용감하며 담대한 고양이 봉이 씨”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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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이 씨




글/사진 황주(chant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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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집을 옮겨 다니며 삽니다. 글을 쓰고, 요가를 하며 호기심 많은 할머니로 늙고 싶습니다. 『할 말은 하고 살게 1』, 『 할 말은 하고 살게 2』 , 『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공저)』 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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