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음악을 입다][음악] 콩콩콩콩, 두두두두, 복작복작, 쾅, 프린스 <Sign O’ The Times>

2026-03-20


음악 애호가, 티셔츠 수집가, 『음악을 입다』의 백영훈 작가가 들려주는 티셔츠와 랜덤 플레이 리스트.
무작위, 우연, 계획되지 않은 흐름에서 발생하는 사건, 랜덤은 그래서 예상치 못한 선물이 되기도 합니다.
오래전 LP와 카세트테이프에서, 아이팟에서, 콘서트에서 듣던 팝과 록과 재즈를
태연하게 오늘의 일상에 랜덤으로 가져다 놓습니다.
인생의 헤아릴 수 없는 고민, 반복된 잡념을 오늘의 티셔츠와 플레이리스트로 잊어 보시기를.
적당한 스타일은 덤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내 옆자리 친구는 멋쟁이였다. 꽤 신경을 쓴 헤어 스타일에 당시 유행했던 일본의 남성 패션잡지에서 본 듯한 프레피 룩 스타일이 늘 한결같았다. “깔쌈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는데, 그가 늘 즐겨 듣던 음악도 그런 이미지에 찰떡같이 어울렸다. 무려 듀란듀란과 프린스! 당시 ‘헤비메탈 부심’으로 세고 강한 것에만 절어 있던 내게 그 두 음악은 모름지기 ‘사나이의 음악’이 아니었다.


딱 너다운 것만 듣는구나, 여자애들이나 좋아할 얌채 같이 복작복작거리는 음악이 제대로 된 음악이냐? 쟤들 생김새 좀 봐봐. 간지럽고 남새스럽지 않아?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무지하고 편견 일색인 말들만 퍼부었던 것이다. 이 무지막지한 취향 드잡이를 묵묵히 받아냈던 친구는 그저 씩 미소만 지었을 뿐, 애써 대꾸하지 않았다. 혹시나 그 친구가 “야, 얘네 음악 제대로 들어보기나 했어? 그랬다면 그런 말 함부로 못 할걸?”이라며 당차게 맞섰다면 나의 십대 팝송 취향이 조금이나마 바뀌었을까?


대망의 <Purple Rain>이나 <When Doves Cry>, <Kiss>, <1999> 같은 히트곡들은 논외로 치자. 이 곡들은 프린스 마니아가 아닌 이들도 거부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훌륭했으니. 30대에 접어들고 나서야 나는 ‘찐 프린스표’ 곡들을 찾아들었다. 퀸시 존스와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를 ‘팝의 모차르트’라고 칭했음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 것도, 무엇보다 ‘깔쌈했던’ 그 친구의 음악 취향을 이해하게 된 것도 그때다.


얼마 전 미국 미네아폴리스에서 발생한 ICE(이민세관단속국)의 무고한 시민 총격 진압 사건을 보며 문득 프린스를 떠올렸다. 미네아폴리스는 프린스의 고장이다. 그가 나고 자랐으며, 음악 정체성이 뿌리내린 곳이다. 소셜 미디어에서 많은 사람들이 올렸던 메시지가 단박에 시선을 붙들었다. 


 “What would Prince say? (프린스가 살아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거대한 부조리극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2026년의 미국. 미네아폴리스 시민들에게는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 이어지고 계속되고 있다. 서민과 노동자를 위해 노래해온 ‘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Streets of Minneapolis>라는 곡을 바로 써서 발표했다. 분노와 추모,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가 예의 그 힘찬 목소리로 전해진다. 그 곡을 듣고 난 후, 프린스의 <Sign O’ The Times>를 다시 듣는다. 발표된 지 거의 40년이 되어가지만, 우리가 지금 지켜보고 있는 오늘의 저 나라 위정자들이 빚어낸 혼란에 맞닿아 있어 더 울림이 있다. 



<Sign O’ The Times>는 음악적 구성 면에서 매우 미니멀하다. 곡의 뼈대는 드럼 머신이 만드는 일정하고 건조한 박동이다. 콩콩거리다 두두대며 전개되는 이 단조로운 리듬의 공명 위에 아주 세밀한 악기들이 배치되는데, 매우 정교하고 밀도가 높다. 그 후 사운드는 복작복작거리며 쪼개져 전개된다. 그리고 프린스의 새침하며 정제된 보컬이 얹어진다. 


이 곡에는 히트곡 제작 공식에 기댄 멜로디나 훅이 없다. 절제된 사운드와 여백, 후반부에 프린스의 날카로운 기타 연주가 신경질적으로 공간을 찢고 나오고, 이내 전매특허 앙칼진 보컬 악센트가 정적인 흐름을 깨뜨린다. 


이 곡의 프로듀서 수잔 로저스에 따르면, 프린스는 당시 신문 기사들을 읽으며 에이즈, 마약, 빈곤 등 사회적 비극을 담담하게 가사로 옮겼다고 한다. 감정을 과잉해서 드러내기보다 부조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방식이다. 농밀하게 완성된 음악에 담은 시대유감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곡을 80년대 대중음악사의 걸작으로 꼽는다. 사회 비판의 메시지와 실험적인 미니멀리즘 사운드를 완벽하게 결합했다는 점이 그 주된 이유다. 프린스의 음악은 겉으로 보기에 미시적이고 스케일이 좁은 듯 느껴질 수 있다. 천재적 재능과 감각을 갖춘 이 ‘팝의 모차르트’가 혼자서 모든 악기를 다루며 어떤 고유한 우주를 만들어 내지만, 사운드의 세부적인 입자에 집착한 미시적 우주에 한정되어 있다고 보는 의견들이다.  


“모름지기 음악이란 호방한 스케일에 선이 굵은 것이 최고”라는 한 때의 편견이 그런 선입견에 더해져 나를 시험했던 시절, 그 첫 인상을 겁 없이, 본능적으로 넘어 서서 그 미시 우주에 그득하던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다는 게 아쉽다. ‘깔쌈했던’ 그 친구처럼 말이다. 


콩콩콩콩, 두두두두, 리듬머신의 공명과, 복작복작 대는 기타로 옴팡지게 뽑아내는 그 치밀한 연주 시퀀스, 깍쟁이처럼 앙칼지면서도 곳곳에서 구성진 비브라토 보컬이 꼼꼼하게, 때로는 툭툭, 그러한 결이 순차적으로 겹치고 흘러간 후에 마주치는 인상은, ‘쾅!’하며 다가오는 타격감이다. <Sign O’The Times>뿐 아니라 프린스 음악 세계의 많은 부분이 이러한 양상으로 직조되어 있다. 익숙하고 쉬운 팝 음악에 안주해 있던 나의 감각을 새삼 깨우는 소리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 <Sign O’The Times>의 커버 아트는 여느 프린스의 앨범과 좀 다르다. 그의 관능적인 모습이나 아이코닉한 초상이 전면에 내세워졌던 디자인과는 달리, 자신의 개인 스튜디오 ‘페이즐리 파크(Paisley Park)’ 내부 스케치다. 그의 밴드였던 “더 레볼루션(The Revolution)”과 함께했던 마지막 투어 무대 세트들의 잔해를 보여준다. 이런 이미지는 앨범 음악 자체의 미니멀리즘과 대비되는 맥시멀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섹시가이’ 이미지가 흐릿하게 디포커스되어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그동안 프린스의 티셔츠를 두 벌 들였는데, 하나는 그가 고유색인 로얄 퍼플과 이름을 버리고 그저 기호로써만 자신을 내세웠던 시절, 그 기호가 금색으로 프린트된 후디, 다른 하나는 <Sign O'The Times> 앨범 커버 디자인이 프린트된 반팔 티셔츠다. 왠지 이 선택만으로도 주로 ‘퍼플레인’ 티셔츠를 입는 여타의 팬들과 차별화될 수 있다는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늦깎이 프린스 마니아의 나름 세심한 티셔츠 큐레이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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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백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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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의 팝과 록에 어지러이 매혹당하며, 장래 희망으로 FM 라디오 DJ를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어렸을 적 바람과는 달리 글로벌 IT기업에서 25년 이상 일을 해오고 있다. 전업의 시간 이편에서는 팝을 비롯한 대중문화 딜레탕트로서의 삶을 즐기며, 여전히 팝 키드로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음악을 입다』가 있다.
· 도서 정보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35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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