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음악을 입다][음악] 이처럼 민낯의 보위라니, 세우 조르제 <Rebel Rebel>, <Starman>
2026-03-27
애호가, 티셔츠 수집가, 『음악을 입다』의 백영훈 작가가 들려주는 티셔츠와 랜덤 플레이 리스트. 무작위, 우연, 계획되지 않은 흐름에서 발생하는 사건, 랜덤은 그래서 예상치 못한 선물이 되기도 합니다. 오래전 LP와 카세트테이프에서, 아이팟에서, 콘서트에서 듣던 팝과 록과 재즈를 태연하게 오늘의 일상에 랜덤으로 가져다 놓습니다. 인생의 헤아릴 수 없는 고민, 반복된 잡념을 오늘의 티셔츠와 플레이리스트로 잊어 보시기를. 적당한 스타일은 덤입니다.
살다 보면 어떤 날엔 묘한 공통점을 갖는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몇 년 만에 거리에서 전 직장 동료와 마주쳤는데, 그날 오후에 또 다른 전 직장 동료의 경조사 소식을 듣는다든지, 어제 저녁에 샤워를 하면서 갑자기 생각나 흥얼거렸던 노래가 있었는데, 다음 날 그 노래를 불렀던 가수의 사망 뉴스를 접했던 일이라든지. 그럴 때마다 내게 혹시나 신기(神氣)라도 있는게 아닌지 싶다가도, 주변 친구들의 유사한 경험을 듣고 나면, 정말이지 ‘온 우주의 기운’ 이라는 것은 빅뱅이나 국가의 명운이 걸린 거창한 이벤트에만 해당되는 건 아닌 듯싶다.
영화 <파반느>, 주인공 경록이 보위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최근 내게 전해진 그 ‘우주의 기운’은 데이빗 보위를 둘러싼 연쇄작용이었고, 그 시작은 지난 2월에 OTT에 공개된 영화 <파반느>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박민규 작가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이하 ‘파반느’)>가 원작이었다. 소설을 다시 읽고 영화를 봐야겠다고 책장을 뒤졌는데, 보이지 않았다. <파반느>뿐만 아니라 한참 재밌게 읽었던 <카스테라>도, 표절 논란 때문에 작가를 절필하게 했던 첫 장편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도 자취를 감췄다. 아무래도 잃어버린 물건들의 블랙홀이 있는 것 같다. 그 와중에 지인과 잠깐 통화를 나누다 그가 먼저 영화 <파반느>를 봤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짧게 운만 띄웠음에도 감흥이 전해졌다. 나는 책장 뒤지기를 멈추고 바로 OTT를 틀었다.
“오, 데이비드 보위? 너 내 친구네. 보위를 아는 놈 치고 나쁜 놈 없거든.”
영화 속 요한(변요한 분)이 처음 만난 경록(문상민 분)의 티셔츠를 보며 던지는 대사다. 둘의 티셔츠에는 보위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특히 경록은 내가 첫 책 『음악을 입다』 출간 기념 때 고심 끝에 골라 입었던 것과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보위의 페르소나 ‘알라딘 세인(Aladdin Sane)’ 초상이 그려진 흰 색 셔츠. 요한의 대사는 툭 던진 농담 같지만, 단번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선언이었다. 처음 보는 이가 요한과 같은 말을 건넸다면, 나는 “그러지 뭐!”라고 답하지 않았을까. 보위라는 이름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청춘의 ‘뽀대’와 자유, 노스탤지어 같은 것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난 후, 작품에 대한 후일담과 인터뷰를 찾아보려 유튜브를 켰다. 가장 상단에 올라온 영상은 브라질 가수 세우 조르제(Seu Jorge)가 웨스 앤더슨의 영화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The Life Aquatic with Steve Zissou, 2004)> 에 출연해 연주하고 노래했던 데이빗 보위 곡들을 다시 리메이크한 세션 공연이었다. 웨스 앤더슨 마니아들에게 숨겨진 보석처럼 평가받는 이 극 속에서 그는 지소 선장(빌 머레이 분)이 이끄는 ‘팀 지소(Team Zissou)’에서 배의 안전요원이자 음유시인인 ‘펠레 도스 산토스’역을 맡아 등장한다.
영화 <스티브지소와의 해저 생활>
공연 영상의 설명에 그는 이렇게 취지를 밝혔다. “10년 전, 저는 영화에서처럼 보위의 곡들을 포르투갈어로 노래한 공연을 스트리밍했어요. 2026년, 보위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습니다. 그의 타계 10주년을 추모하기 위해 10년 전의 공연을 새롭게 편집해 선보입니다.”
시점이 묘하게 얽힌다. 2026년 2월에 OTT를 통해 개봉한 국내 영화, 그 원작이 된 지금은 절필한 작가의 2009년의 소설, 2026년 3월에 그 소설을 찾기 위한 나의 책장 뒤지기, 그리고 2004년에 개봉한 웨스 앤더슨의 흥행 실패 컬트영화와 그 작품에 출연했던 브라질 가수의 10년 전 한 추모 공연 영상이 공개된 2026년 1월. 이 잡다하게 얽힌 서사의 실타래를 보위라는 이름이 관통하고 있었다.
세우 조르제는 영화 속 장면처럼 스카이 블루 톤의 작업복에 붉은 비니를 쓰고 나일론 줄 어쿠스틱 기타를 잡고 앉았다. 이번에는 배의 갑판이 아닌 상파울루의 어느 해변 데크다. 그는 <Lady Stardust>를 시작으로 <Starman까지 50여 분에 걸쳐 총 15곡의 데이빗 보위 음악을 포르투갈어로 번안해 부른다.
이 공연 세션에서 보위의 음악 세계는 세우 조르제만의 스타일로 소화된다. 독창성의 빛과 강렬한 사운드로 번쩍이던 보위의 맥시멀 에너지는, 단출한 기타 반주 위에 낮게 읊조리는 흥얼거림과 간간히 지르는 샤우팅의 필터를 거쳐 브라질풍의 서정으로 탈바꿈한다.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 음악이다. 분명 다르지만, 닮아 있다, 보위의 음악을 다시 찾게 만드니 말이다.
세우 조르제의 음악 스타일은 보사노바와 닮아 있으면서도 결이 다르다. 그는 1960년대 중반에 등장한 ‘MPB (Música Popular Brasileira, 브라질 대중음악)’이라는 흐름을 잇는 뮤지션이다. 카에타노 벨로주(Caetano Veloso)나 질베르투 지우(Gilberto Gil)과 같은 거장 가수들이 정립한 MPB는 사회성을 담은 시적인 가사에 삼바의 리듬과 재즈의 화성이 어우러진 독창적인 브라질 대중음악이다.
세우 조르제의 데이빗 보위 세션은 영화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이 개봉된 다음 해인 2005년에 앨범으로도 발매되었다. 나는 영화 <파반느>를 보고 난 후 이 앨범을 하루에 한 번 이상 틀어놓고 세우의 흥얼거림에 동참했다. 전자 악기 세션의 기름기가 쫙 빠진 후의 구성진 흥얼거림을 듣고 있노라면, 새삼 께닫게 된다. 보위의 음악은 민낯으로도 이렇게 맛깔 나는구나. 멜로디의 위력은 물론이요, 전혀 이해되지 않는 포르투갈어 가사임에도 무슨 시를 읊는지 짐작할 수 있다. 보위 또한 세우 조르제의 커버가 아니었다면 그 곡들에서 이런 새로운 차원의 아름다움을 듣지 못했을 것이라는 찬사를 남겼다.
이 세션 앨범은 통째로 들어야 제 맛이지만, 그 중에서도 <Rebel Rebel>과 <Starman>은 특히 중독적이다. 도발적인 원곡을 나지막하게 들려주는 ‘반항아’ 버전과 기가 막히게 구성진 ‘행성인’의 서사를 듣고 있자니, 이런 조합을 상상하고 구현한 웨스 앤더슨의 감식안에 감탄하게 된다. 지금 그 영화를 돌이켜보면 스토리는 가물가물해도, 갑판 위에 앉아 보위의 노래를 부르던 세우 조르제의 모습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웨스 앤더슨과 데이빗 보위는 당대 최고의 비주얼리스트라는 공통점이 있다. 분명 결은 다르지만, 이들이 구축한 이미지들은 바로 캐릭터들의 패션으로 직결된다. 영화 속 ‘팀 지소’의 스카이 블루 유니폼과 빨간 색 비니, 그리고 흰색 스니커즈의 조합은 유독 인상적이었다. 나는 한때 아디다스에서 한정판으로 만든 그 흰색 스니커즈 ‘롬 지소(Rom Zissou)’를 손에 넣기 위해 이베이를 며칠씩 뒤지기도 했다. 웨스 앤더슨의 세계관이 일상복의 욕망으로 번져 나와 같은 팬들의 좌절감을 양산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결국 그 스니커즈를 얻지는 못했지만, 작년 오사카의 어느 편집숍에서 세우 조르제의 보위 세션 앨범 커버가 그려진 셔츠를 구매했다. 고맙게도 스카이 블루 색상이었다. 욕망을 적절히 유지하고 있다면, 한정판 스니커즈까지는 아니어도 티셔츠의 득템 정도의 행운에는 이르게 해준다. 무릇, 미시 개인사에 이런 행운을 안겨주는 ‘온 우주의 기운’은 언제든 환영이다.
글/사진 백영훈
1990년대의 팝과 록에 어지러이 매혹당하며, 장래 희망으로 FM 라디오 DJ를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어렸을 적 바람과는 달리 글로벌 IT기업에서 25년 이상 일을 해오고 있다. 전업의 시간 이편에서는 팝을 비롯한 대중문화 딜레탕트로서의 삶을 즐기며, 여전히 팝 키드로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음악을 입다』가 있다. · 도서 정보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35274
애호가, 티셔츠 수집가, 『음악을 입다』의 백영훈 작가가 들려주는 티셔츠와 랜덤 플레이 리스트.
무작위, 우연, 계획되지 않은 흐름에서 발생하는 사건, 랜덤은 그래서 예상치 못한 선물이 되기도 합니다.
오래전 LP와 카세트테이프에서, 아이팟에서, 콘서트에서 듣던 팝과 록과 재즈를
태연하게 오늘의 일상에 랜덤으로 가져다 놓습니다.
인생의 헤아릴 수 없는 고민, 반복된 잡념을 오늘의 티셔츠와 플레이리스트로 잊어 보시기를.
적당한 스타일은 덤입니다.
살다 보면 어떤 날엔 묘한 공통점을 갖는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몇 년 만에 거리에서 전 직장 동료와 마주쳤는데, 그날 오후에 또 다른 전 직장 동료의 경조사 소식을 듣는다든지, 어제 저녁에 샤워를 하면서 갑자기 생각나 흥얼거렸던 노래가 있었는데, 다음 날 그 노래를 불렀던 가수의 사망 뉴스를 접했던 일이라든지. 그럴 때마다 내게 혹시나 신기(神氣)라도 있는게 아닌지 싶다가도, 주변 친구들의 유사한 경험을 듣고 나면, 정말이지 ‘온 우주의 기운’ 이라는 것은 빅뱅이나 국가의 명운이 걸린 거창한 이벤트에만 해당되는 건 아닌 듯싶다.
영화 <파반느>, 주인공 경록이 보위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최근 내게 전해진 그 ‘우주의 기운’은 데이빗 보위를 둘러싼 연쇄작용이었고, 그 시작은 지난 2월에 OTT에 공개된 영화 <파반느>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박민규 작가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이하 ‘파반느’)>가 원작이었다. 소설을 다시 읽고 영화를 봐야겠다고 책장을 뒤졌는데, 보이지 않았다. <파반느>뿐만 아니라 한참 재밌게 읽었던 <카스테라>도, 표절 논란 때문에 작가를 절필하게 했던 첫 장편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도 자취를 감췄다. 아무래도 잃어버린 물건들의 블랙홀이 있는 것 같다. 그 와중에 지인과 잠깐 통화를 나누다 그가 먼저 영화 <파반느>를 봤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짧게 운만 띄웠음에도 감흥이 전해졌다. 나는 책장 뒤지기를 멈추고 바로 OTT를 틀었다.
“오, 데이비드 보위? 너 내 친구네. 보위를 아는 놈 치고 나쁜 놈 없거든.”
영화 속 요한(변요한 분)이 처음 만난 경록(문상민 분)의 티셔츠를 보며 던지는 대사다. 둘의 티셔츠에는 보위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특히 경록은 내가 첫 책 『음악을 입다』 출간 기념 때 고심 끝에 골라 입었던 것과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보위의 페르소나 ‘알라딘 세인(Aladdin Sane)’ 초상이 그려진 흰 색 셔츠. 요한의 대사는 툭 던진 농담 같지만, 단번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선언이었다. 처음 보는 이가 요한과 같은 말을 건넸다면, 나는 “그러지 뭐!”라고 답하지 않았을까. 보위라는 이름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청춘의 ‘뽀대’와 자유, 노스탤지어 같은 것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난 후, 작품에 대한 후일담과 인터뷰를 찾아보려 유튜브를 켰다. 가장 상단에 올라온 영상은 브라질 가수 세우 조르제(Seu Jorge)가 웨스 앤더슨의 영화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The Life Aquatic with Steve Zissou, 2004)> 에 출연해 연주하고 노래했던 데이빗 보위 곡들을 다시 리메이크한 세션 공연이었다. 웨스 앤더슨 마니아들에게 숨겨진 보석처럼 평가받는 이 극 속에서 그는 지소 선장(빌 머레이 분)이 이끄는 ‘팀 지소(Team Zissou)’에서 배의 안전요원이자 음유시인인 ‘펠레 도스 산토스’역을 맡아 등장한다.
영화 <스티브지소와의 해저 생활>
공연 영상의 설명에 그는 이렇게 취지를 밝혔다. “10년 전, 저는 영화에서처럼 보위의 곡들을 포르투갈어로 노래한 공연을 스트리밍했어요. 2026년, 보위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습니다. 그의 타계 10주년을 추모하기 위해 10년 전의 공연을 새롭게 편집해 선보입니다.”
시점이 묘하게 얽힌다. 2026년 2월에 OTT를 통해 개봉한 국내 영화, 그 원작이 된 지금은 절필한 작가의 2009년의 소설, 2026년 3월에 그 소설을 찾기 위한 나의 책장 뒤지기, 그리고 2004년에 개봉한 웨스 앤더슨의 흥행 실패 컬트영화와 그 작품에 출연했던 브라질 가수의 10년 전 한 추모 공연 영상이 공개된 2026년 1월. 이 잡다하게 얽힌 서사의 실타래를 보위라는 이름이 관통하고 있었다.
세우 조르제는 영화 속 장면처럼 스카이 블루 톤의 작업복에 붉은 비니를 쓰고 나일론 줄 어쿠스틱 기타를 잡고 앉았다. 이번에는 배의 갑판이 아닌 상파울루의 어느 해변 데크다. 그는 <Lady Stardust>를 시작으로 <Starman까지 50여 분에 걸쳐 총 15곡의 데이빗 보위 음악을 포르투갈어로 번안해 부른다.
이 공연 세션에서 보위의 음악 세계는 세우 조르제만의 스타일로 소화된다. 독창성의 빛과 강렬한 사운드로 번쩍이던 보위의 맥시멀 에너지는, 단출한 기타 반주 위에 낮게 읊조리는 흥얼거림과 간간히 지르는 샤우팅의 필터를 거쳐 브라질풍의 서정으로 탈바꿈한다.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 음악이다. 분명 다르지만, 닮아 있다, 보위의 음악을 다시 찾게 만드니 말이다.
세우 조르제의 음악 스타일은 보사노바와 닮아 있으면서도 결이 다르다. 그는 1960년대 중반에 등장한 ‘MPB (Música Popular Brasileira, 브라질 대중음악)’이라는 흐름을 잇는 뮤지션이다. 카에타노 벨로주(Caetano Veloso)나 질베르투 지우(Gilberto Gil)과 같은 거장 가수들이 정립한 MPB는 사회성을 담은 시적인 가사에 삼바의 리듬과 재즈의 화성이 어우러진 독창적인 브라질 대중음악이다.
세우 조르제의 데이빗 보위 세션은 영화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이 개봉된 다음 해인 2005년에 앨범으로도 발매되었다. 나는 영화 <파반느>를 보고 난 후 이 앨범을 하루에 한 번 이상 틀어놓고 세우의 흥얼거림에 동참했다. 전자 악기 세션의 기름기가 쫙 빠진 후의 구성진 흥얼거림을 듣고 있노라면, 새삼 께닫게 된다. 보위의 음악은 민낯으로도 이렇게 맛깔 나는구나. 멜로디의 위력은 물론이요, 전혀 이해되지 않는 포르투갈어 가사임에도 무슨 시를 읊는지 짐작할 수 있다. 보위 또한 세우 조르제의 커버가 아니었다면 그 곡들에서 이런 새로운 차원의 아름다움을 듣지 못했을 것이라는 찬사를 남겼다.
이 세션 앨범은 통째로 들어야 제 맛이지만, 그 중에서도 <Rebel Rebel>과 <Starman>은 특히 중독적이다. 도발적인 원곡을 나지막하게 들려주는 ‘반항아’ 버전과 기가 막히게 구성진 ‘행성인’의 서사를 듣고 있자니, 이런 조합을 상상하고 구현한 웨스 앤더슨의 감식안에 감탄하게 된다. 지금 그 영화를 돌이켜보면 스토리는 가물가물해도, 갑판 위에 앉아 보위의 노래를 부르던 세우 조르제의 모습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웨스 앤더슨과 데이빗 보위는 당대 최고의 비주얼리스트라는 공통점이 있다. 분명 결은 다르지만, 이들이 구축한 이미지들은 바로 캐릭터들의 패션으로 직결된다. 영화 속 ‘팀 지소’의 스카이 블루 유니폼과 빨간 색 비니, 그리고 흰색 스니커즈의 조합은 유독 인상적이었다. 나는 한때 아디다스에서 한정판으로 만든 그 흰색 스니커즈 ‘롬 지소(Rom Zissou)’를 손에 넣기 위해 이베이를 며칠씩 뒤지기도 했다. 웨스 앤더슨의 세계관이 일상복의 욕망으로 번져 나와 같은 팬들의 좌절감을 양산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결국 그 스니커즈를 얻지는 못했지만, 작년 오사카의 어느 편집숍에서 세우 조르제의 보위 세션 앨범 커버가 그려진 셔츠를 구매했다. 고맙게도 스카이 블루 색상이었다. 욕망을 적절히 유지하고 있다면, 한정판 스니커즈까지는 아니어도 티셔츠의 득템 정도의 행운에는 이르게 해준다. 무릇, 미시 개인사에 이런 행운을 안겨주는 ‘온 우주의 기운’은 언제든 환영이다.
글/사진 백영훈
1990년대의 팝과 록에 어지러이 매혹당하며, 장래 희망으로 FM 라디오 DJ를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어렸을 적 바람과는 달리 글로벌 IT기업에서 25년 이상 일을 해오고 있다. 전업의 시간 이편에서는 팝을 비롯한 대중문화 딜레탕트로서의 삶을 즐기며, 여전히 팝 키드로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음악을 입다』가 있다.
· 도서 정보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35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