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는 것 #12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모이는 매력 많은 도시, 교토. 그렇기에 가고 싶은 마음도 커지지만, 과도하게 몰리는 소란스러움에 주저하는 마음도 많을 거라. 그럼에도 교토는 번잡한 일상과 거리두기를 하고 싶을 때 훌쩍 떠나기 좋은 도시 중 한 곳임에는 분명하다. 그중에서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색적인 면이 극대화되는 곳 ‘교토의 정원’을 돌아보면서 천년 고도에 깃든 고요함을 느껴보자.
1. 우주의 근원적 형태, 겐닌지建仁寺
겐닌지는 교토 기온 근처에 1202년 창건된,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임제종 선종(禪宗) 사찰이다. 이곳에는 3개의 고명한 정원이 있는데 흰 모래와 섬처럼 보이는 돌로 이루어진 가레산스이(枯山水) 형태의 방장(方丈, 선종 사원에서 승려의 거주지로 사용되던 곳. 나중에는 외부인을 상견(응접)하는 역할이 강해졌다.) 정원 「다이오우엔(大雄苑)」, 겐닌지 안뜰 사면이 방장과 복도로 이어져 있는 아담한 곳에 위치해 사방 어느 곳에서나 삼존석(三尊石)과 그 주변을 감싸는 이끼와 나무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든 「조온테이(潮音庭)」, 그리고 단순한 3개의 도형 ○△□으로 우주의 근원적 형태를 표현한 「○△□」 정원이 있다.
겐닌지 방장은 중국 백장산(百丈山)의 선찰을 본뜬 것이라 「다이오우엔(大雄苑)」도 백장산을 구현했다고 한다. 실내 복도를 지나 방장 구역으로 들어서면 전면에 시원하게 조성된 가레산스이 정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푸른 이끼와 돌 그 사이 흰 모래에 새겨진 무늬가 광활한 망망대해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다이오우엔
방장과 복도로 이어지는 대서원과 조그만 서원 사이에 위치한 「조온테이(潮音庭)」는 이끼로 덮인 아담한 뜰 중앙에 삼존불을 형상화한 돌이 놓여 있고 그 주위로 이끼와 단풍나무들이 둘러싸여 있다. 툇마루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정원 너머 서원 안 깊숙이 그려진 병풍과도 마주하게 된다. 장지문의 정교한 선들 그리고 정원의 초록빛 생명력이 더해져 벽면 가득 푸른색으로 그려진 수묵화에 깊이감을 더해준다.


조온테이
「○△□」 안에서는 3개의 도형을 찾아보자. ○△□는 선종의 사대 사상인 지수화풍(地水火風)중에 지(地), 수(水), 화(火)를 상징한다. 제한된 공간 안에 우주의 광활함과 대자연의 힘을 집약적으로 담아내고자 했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찾는 재미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통해 마치 작은 세계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 정원
겐닌지 정원에서 유독 인상 깊었던 것은 정원을 즐기던 사람들이었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데도 각자 자신만의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각자 마음에 드는 곳에 앉아 책을 읽거나 멍하니 한곳을 바라보며 응시하거나 함께 온 지인들과 사진을 찍고 담소를 나누거나. 혼자이든 여럿이든 이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감상하고 공간을 보내는 이들을 보면서 교토 정원의 미학이라 할 수 있는 여백을 채우는 충만함이 어쩌면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겐닌지
https://www.kenninji.jp/
2. 단풍의 에이칸도, 젠린지禅林寺


교토의 경치 좋은 히가시야마 지구에 자리한 젠린지(禅林寺)는 일반적으로 에이칸도(永観堂, 젠린지의 7대 주지였던 에이칸(영관) 영사의 이름을 따와 부르기 시작한 것이 그 유래)라고도 불리는데 "紅葉の永観堂 모미지노 에이칸도" 즉 "단풍의 에이칸도"라 불릴 정도로 이곳에는 약 3,000그루의 단풍나무가 경내에 펼쳐져 있다. 가을이면 선명한 빨강, 주황, 노랑으로 마치 살아있는 그림처럼 변해 가을이 되면 그 어느 곳보다 분주해진다. 그렇다고 가을에만 그 존재가 드러나는 곳이 아님을 미리 밝힌다. 다른 계절에 방문하면 가을의 화려함과는 또 다른 차분함을 느낄 수 있다.

교토 제일의 단풍을 즐기려 모인 사람들
젠린지 내부는 지형을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높이에 건물과 정원. 연못이 이어져 있다. 마치 중심이 지형인 것처럼 산비탈을 따라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는 형상이다. 그렇기에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회랑을 따라 걸으며 천천히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시야가 한 번에 확 트이는 게 아니라 시선에 따라서 풍광이 각기 다르게 바뀌는 독특한 공간 구조라 충분히 걷고, 쉬고, 눈길을 주면 더 많은 것들을 음미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단순한 공간임에도 전혀 지루함이 없다. 산비탈 경사면을 따라 걸으며 울창한 숲을 바라보고 그 안에 인간의 손으로 세심히 가꾼 정원의 계산된 치밀함까지 즐기다 보면 자연의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순응하며 공존하고자 하는 젠린지만의 특별함도 느낄 수 있다.


젠린지 경내 밖으로 나오면 큰 연못과 다리가 나타나는데 찬찬히 그 주위를 걷다 보면 수면에 수놓아진 시간과 계절의 변화도 느낄 수 있다. 물을 가득 담은 연못 주위로 풍경을 끌어들이는 차경의 정원은 걸을수록 표정이 달라진다.


젠린지
https://www.eikando.or.jp/
3. 네 개의 얼굴을 가진, 도후쿠지 東福寺

교토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선종 사찰인 도후쿠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최대 크기의 삼문(三門, 불교에서 깨달음으로 향하는 세 가지 해탈의 문(三解脫門)을 의미)과 3개의 긴 목조 다리, 그리고 동서남북 4면 각기 다른 테마로 배치한 방장 정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방장 정원은 근대 정원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시게모리 미레이(重森三玲)가 조성한 것으로 전통적인 선종 정원의 배치와 현대적인 조형미가 독특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방장을 중심으로 한 바퀴를 천천히 돌며 동서남북 각 면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구성을 감상하다 보면 방향마다 그리고 멈춰 서는 위치에 따라 그 인상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동쪽 정원. 원기둥 형태의 돌들로 북두칠성을, 그 안 모래는 구름무늬로 형상화했다.
서쪽 정원은 흰 모래 위에 철쭉을 큰 바둑판 무늬로 조경해 질서 정연하게 배치했다. 사각형으로 다듬어진 나무들에서 절제된 인상이 느껴진다.

남쪽 정원은 넓은 모래 위에 거친 바위들을 배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과 파도를 형상했다. 선종의 영향을 받은 전통적인 가레산스이 정원이다.
북쪽 정원은 남쪽 은사 문안에 있던 포석을 이용하여 이끼 위에 이치마츠(체크무늬) 문양을 배치했다. 현대적인 요소가 강하게 느껴진다.
장식을 최소화하고 물 대신 모래와 돌을 사용하여 극도의 절제와 간결함을 추구한 텅 빈 듯한 공간은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에 따라 그 안에 또 다른 풍경을 제공한다. 돌과 돌 사이, 흰 모래에 새겨진 무늬 안에서 완벽하게 채워진 아름다움이 아닌 여백 속 아름다움을 들여다보게 한다.
3개의 긴 목조 다리 중 방장 정원으로 들어가는 츠텐바시(通天橋, 하늘로 통하는 다리)에서 바라보는 계곡은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긴 복도 회랑을 걸으면서 다리 아래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와 나무 사이로 스미는 바람을 느껴보자. 츠텐바시 끝에 자리 잡은 가이산도(開山堂 개산당) 앞마당에도 모래 정원이 있다.

가이산도(開山堂 개산당)
도후쿠지 삼문(三門) 앞 연못에 연꽃이 만발해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그 규모 또한 가장 크다고 한다. 2층 구조로 되어 있는 삼문은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도후쿠지
https://tofukuji.jp/
4. 오하라 자연 속 지장보살상의 웃는 얼굴이 반겨주는, 산젠인 三千院
이번에는 교토 시내를 벗어나 좀 더 자연 풍경을 가득 채운 정원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교토 북부에 위치한 오하라는 한적한 산골 마을로 교토 시내에서 직행 버스를 이용하면 환승 없이 약 70분 내외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이다. 오하라에는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사찰과 정원이 많은데 그중 이끼의 풍경으로 유명한 산젠인을 소개하려 한다. 산젠인에는 크게 두 개의 정원, 지천 관상식인 「슈헤키엔(聚碧園)」과 지천 회유식 정원인 「유세이엔(有清園)」이 있다.
지천 관상식은 지천(池泉, 정원에 핀 연못)을 관상한다는 뜻으로 별도의 입장료에 포함된 차와 다식을 먹으면서 다석에 앉아 경관을 바라보는 정원을 말한다. 농후한 말차 한 모금에 고개를 올려보면 마치 액자 속에 담긴 그림을 바라보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정원 너머 오하라의 아름다운 풍경 또한 그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져 작은 정원도 끝없이 펼쳐진 숲처럼 느껴진다.


「슈헤키엔」이 바라보는 정원이라면 「유세이엔」은 물과 이끼의 풍경을 벗 삼아 걷는 정원이라 할 수 있다. 지천 회유식(回遊式) (연못 산책형 정원)은 정원의 중심에 연못을 두고 그 주변으로 산책로를 만들어 걸으면서 변하는 경치를 감상하도록 만든 정원인데 마치 한 폭의 그림 속을 걸어 다니는 듯한 즐거움이 있다.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시원스레 뻗어있는 커다란 삼나무 사이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깊은 평온함에 이르게 된다.
「유세이엔」을 산책하다 보면 와라베 지조(동자 지장보살)라 하는 귀여운 얼굴의 지장보살 동상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지장보살의 다양한 표정이 마치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채워진 우리 삶 같다. 풍경에 쉼표를 만들어 주는 이런 작고 섬세한 장치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이 외에도 3,000여 그루의 수국이 피는 수국 후원도 있다. 산젠인 곳곳에 펼쳐진 다양한 꽃들과 사계절 푸른 이끼들로 인해 어느 계절에 방문해도 다양한 표정을 즐길 수 있다.


「유세이엔」에서 만난 동자 지장보살들
산젠인
https://www.sanzenin.or.jp/
* * *
툇마루에 가만히 앉아 하얀 모래 위에 그려진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일상 속 여백을 느껴본다. 나무와 그 아래 이끼들이 만들어 내는 음영을 따라 걸으며 자연이 주는 색과 질감을 통해 계절과 시간의 변화 또한 느껴본다. 바라보는 정원도 산책하면서 둘러보는 정원도 각기 다른 매력이다.
벚꽃이나 단풍 시기만이 매력은 아니다. 고개를 들어 정원 전체를 살피고 발 아래 이끼, 돌의 그림자 연못에 비친 모습들 작은 요소에도 눈을 돌려보자. 여름에는 시원하게 뚫려 있는 마루를 맨발로 걷는 경험도 해보자.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구석구석 공들여 관리해 반질반질 윤이 난다. 정원의 다양한 표정 속에서 시간의 유속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 그 가치와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본다. 돌, 모래, 이끼, 나무 최소한의 것들로 우주와 자연을 표현하고 그 사이에 여백을 둔다. 의도한 빈 공간을 정원의 일부로 남겨 모든 공간을 채우는 것만이 완전한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이 아님을 말한다.
‘와비사비(わびさび)' 곧, 미완의 상태에 깃든 아름다움이다.
簡素に生きることが、一番の贅沢.
간소하게 살 수 있는 것이 가장 사치.
満足の上限をおさえれば、心穏やかでいられます.
만족의 상한선을 낮추면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다.
- 겐닌지 관장 小堀泰巖(오호리 야스미)
글·사진 | 한수정

우아한 삶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관념과 현실을 분리시킨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혼자 떠나는 여행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규슈단편>을 함께 썼습니다.
www.instagram.com/vov_sj
본다는 것 #12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모이는 매력 많은 도시, 교토. 그렇기에 가고 싶은 마음도 커지지만, 과도하게 몰리는 소란스러움에 주저하는 마음도 많을 거라. 그럼에도 교토는 번잡한 일상과 거리두기를 하고 싶을 때 훌쩍 떠나기 좋은 도시 중 한 곳임에는 분명하다. 그중에서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색적인 면이 극대화되는 곳 ‘교토의 정원’을 돌아보면서 천년 고도에 깃든 고요함을 느껴보자.
1. 우주의 근원적 형태, 겐닌지建仁寺
겐닌지는 교토 기온 근처에 1202년 창건된,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임제종 선종(禪宗) 사찰이다. 이곳에는 3개의 고명한 정원이 있는데 흰 모래와 섬처럼 보이는 돌로 이루어진 가레산스이(枯山水) 형태의 방장(方丈, 선종 사원에서 승려의 거주지로 사용되던 곳. 나중에는 외부인을 상견(응접)하는 역할이 강해졌다.) 정원 「다이오우엔(大雄苑)」, 겐닌지 안뜰 사면이 방장과 복도로 이어져 있는 아담한 곳에 위치해 사방 어느 곳에서나 삼존석(三尊石)과 그 주변을 감싸는 이끼와 나무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든 「조온테이(潮音庭)」, 그리고 단순한 3개의 도형 ○△□으로 우주의 근원적 형태를 표현한 「○△□」 정원이 있다.
겐닌지 방장은 중국 백장산(百丈山)의 선찰을 본뜬 것이라 「다이오우엔(大雄苑)」도 백장산을 구현했다고 한다. 실내 복도를 지나 방장 구역으로 들어서면 전면에 시원하게 조성된 가레산스이 정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푸른 이끼와 돌 그 사이 흰 모래에 새겨진 무늬가 광활한 망망대해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다이오우엔
방장과 복도로 이어지는 대서원과 조그만 서원 사이에 위치한 「조온테이(潮音庭)」는 이끼로 덮인 아담한 뜰 중앙에 삼존불을 형상화한 돌이 놓여 있고 그 주위로 이끼와 단풍나무들이 둘러싸여 있다. 툇마루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정원 너머 서원 안 깊숙이 그려진 병풍과도 마주하게 된다. 장지문의 정교한 선들 그리고 정원의 초록빛 생명력이 더해져 벽면 가득 푸른색으로 그려진 수묵화에 깊이감을 더해준다.
조온테이
「○△□」 안에서는 3개의 도형을 찾아보자. ○△□는 선종의 사대 사상인 지수화풍(地水火風)중에 지(地), 수(水), 화(火)를 상징한다. 제한된 공간 안에 우주의 광활함과 대자연의 힘을 집약적으로 담아내고자 했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찾는 재미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통해 마치 작은 세계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 정원
겐닌지 정원에서 유독 인상 깊었던 것은 정원을 즐기던 사람들이었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데도 각자 자신만의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각자 마음에 드는 곳에 앉아 책을 읽거나 멍하니 한곳을 바라보며 응시하거나 함께 온 지인들과 사진을 찍고 담소를 나누거나. 혼자이든 여럿이든 이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감상하고 공간을 보내는 이들을 보면서 교토 정원의 미학이라 할 수 있는 여백을 채우는 충만함이 어쩌면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2. 단풍의 에이칸도, 젠린지禅林寺
교토의 경치 좋은 히가시야마 지구에 자리한 젠린지(禅林寺)는 일반적으로 에이칸도(永観堂, 젠린지의 7대 주지였던 에이칸(영관) 영사의 이름을 따와 부르기 시작한 것이 그 유래)라고도 불리는데 "紅葉の永観堂 모미지노 에이칸도" 즉 "단풍의 에이칸도"라 불릴 정도로 이곳에는 약 3,000그루의 단풍나무가 경내에 펼쳐져 있다. 가을이면 선명한 빨강, 주황, 노랑으로 마치 살아있는 그림처럼 변해 가을이 되면 그 어느 곳보다 분주해진다. 그렇다고 가을에만 그 존재가 드러나는 곳이 아님을 미리 밝힌다. 다른 계절에 방문하면 가을의 화려함과는 또 다른 차분함을 느낄 수 있다.
교토 제일의 단풍을 즐기려 모인 사람들
젠린지 내부는 지형을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높이에 건물과 정원. 연못이 이어져 있다. 마치 중심이 지형인 것처럼 산비탈을 따라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는 형상이다. 그렇기에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회랑을 따라 걸으며 천천히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시야가 한 번에 확 트이는 게 아니라 시선에 따라서 풍광이 각기 다르게 바뀌는 독특한 공간 구조라 충분히 걷고, 쉬고, 눈길을 주면 더 많은 것들을 음미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단순한 공간임에도 전혀 지루함이 없다. 산비탈 경사면을 따라 걸으며 울창한 숲을 바라보고 그 안에 인간의 손으로 세심히 가꾼 정원의 계산된 치밀함까지 즐기다 보면 자연의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순응하며 공존하고자 하는 젠린지만의 특별함도 느낄 수 있다.
젠린지 경내 밖으로 나오면 큰 연못과 다리가 나타나는데 찬찬히 그 주위를 걷다 보면 수면에 수놓아진 시간과 계절의 변화도 느낄 수 있다. 물을 가득 담은 연못 주위로 풍경을 끌어들이는 차경의 정원은 걸을수록 표정이 달라진다.
3. 네 개의 얼굴을 가진, 도후쿠지 東福寺
교토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선종 사찰인 도후쿠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최대 크기의 삼문(三門, 불교에서 깨달음으로 향하는 세 가지 해탈의 문(三解脫門)을 의미)과 3개의 긴 목조 다리, 그리고 동서남북 4면 각기 다른 테마로 배치한 방장 정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방장 정원은 근대 정원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시게모리 미레이(重森三玲)가 조성한 것으로 전통적인 선종 정원의 배치와 현대적인 조형미가 독특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방장을 중심으로 한 바퀴를 천천히 돌며 동서남북 각 면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구성을 감상하다 보면 방향마다 그리고 멈춰 서는 위치에 따라 그 인상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동쪽 정원. 원기둥 형태의 돌들로 북두칠성을, 그 안 모래는 구름무늬로 형상화했다.
남쪽 정원은 넓은 모래 위에 거친 바위들을 배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과 파도를 형상했다. 선종의 영향을 받은 전통적인 가레산스이 정원이다.
장식을 최소화하고 물 대신 모래와 돌을 사용하여 극도의 절제와 간결함을 추구한 텅 빈 듯한 공간은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에 따라 그 안에 또 다른 풍경을 제공한다. 돌과 돌 사이, 흰 모래에 새겨진 무늬 안에서 완벽하게 채워진 아름다움이 아닌 여백 속 아름다움을 들여다보게 한다.
3개의 긴 목조 다리 중 방장 정원으로 들어가는 츠텐바시(通天橋, 하늘로 통하는 다리)에서 바라보는 계곡은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긴 복도 회랑을 걸으면서 다리 아래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와 나무 사이로 스미는 바람을 느껴보자. 츠텐바시 끝에 자리 잡은 가이산도(開山堂 개산당) 앞마당에도 모래 정원이 있다.
가이산도(開山堂 개산당)
도후쿠지 삼문(三門) 앞 연못에 연꽃이 만발해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그 규모 또한 가장 크다고 한다. 2층 구조로 되어 있는 삼문은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4. 오하라 자연 속 지장보살상의 웃는 얼굴이 반겨주는, 산젠인 三千院
이번에는 교토 시내를 벗어나 좀 더 자연 풍경을 가득 채운 정원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교토 북부에 위치한 오하라는 한적한 산골 마을로 교토 시내에서 직행 버스를 이용하면 환승 없이 약 70분 내외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이다. 오하라에는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사찰과 정원이 많은데 그중 이끼의 풍경으로 유명한 산젠인을 소개하려 한다. 산젠인에는 크게 두 개의 정원, 지천 관상식인 「슈헤키엔(聚碧園)」과 지천 회유식 정원인 「유세이엔(有清園)」이 있다.
지천 관상식은 지천(池泉, 정원에 핀 연못)을 관상한다는 뜻으로 별도의 입장료에 포함된 차와 다식을 먹으면서 다석에 앉아 경관을 바라보는 정원을 말한다. 농후한 말차 한 모금에 고개를 올려보면 마치 액자 속에 담긴 그림을 바라보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정원 너머 오하라의 아름다운 풍경 또한 그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져 작은 정원도 끝없이 펼쳐진 숲처럼 느껴진다.
「슈헤키엔」이 바라보는 정원이라면 「유세이엔」은 물과 이끼의 풍경을 벗 삼아 걷는 정원이라 할 수 있다. 지천 회유식(回遊式) (연못 산책형 정원)은 정원의 중심에 연못을 두고 그 주변으로 산책로를 만들어 걸으면서 변하는 경치를 감상하도록 만든 정원인데 마치 한 폭의 그림 속을 걸어 다니는 듯한 즐거움이 있다.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시원스레 뻗어있는 커다란 삼나무 사이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깊은 평온함에 이르게 된다.
「유세이엔」을 산책하다 보면 와라베 지조(동자 지장보살)라 하는 귀여운 얼굴의 지장보살 동상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지장보살의 다양한 표정이 마치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채워진 우리 삶 같다. 풍경에 쉼표를 만들어 주는 이런 작고 섬세한 장치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이 외에도 3,000여 그루의 수국이 피는 수국 후원도 있다. 산젠인 곳곳에 펼쳐진 다양한 꽃들과 사계절 푸른 이끼들로 인해 어느 계절에 방문해도 다양한 표정을 즐길 수 있다.
「유세이엔」에서 만난 동자 지장보살들
* * *
툇마루에 가만히 앉아 하얀 모래 위에 그려진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일상 속 여백을 느껴본다. 나무와 그 아래 이끼들이 만들어 내는 음영을 따라 걸으며 자연이 주는 색과 질감을 통해 계절과 시간의 변화 또한 느껴본다. 바라보는 정원도 산책하면서 둘러보는 정원도 각기 다른 매력이다.
벚꽃이나 단풍 시기만이 매력은 아니다. 고개를 들어 정원 전체를 살피고 발 아래 이끼, 돌의 그림자 연못에 비친 모습들 작은 요소에도 눈을 돌려보자. 여름에는 시원하게 뚫려 있는 마루를 맨발로 걷는 경험도 해보자.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구석구석 공들여 관리해 반질반질 윤이 난다. 정원의 다양한 표정 속에서 시간의 유속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 그 가치와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본다. 돌, 모래, 이끼, 나무 최소한의 것들로 우주와 자연을 표현하고 그 사이에 여백을 둔다. 의도한 빈 공간을 정원의 일부로 남겨 모든 공간을 채우는 것만이 완전한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이 아님을 말한다.
‘와비사비(わびさび)' 곧, 미완의 상태에 깃든 아름다움이다.
簡素に生きることが、一番の贅沢.
간소하게 살 수 있는 것이 가장 사치.
満足の上限をおさえれば、心穏やかでいられます.
만족의 상한선을 낮추면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다.
- 겐닌지 관장 小堀泰巖(오호리 야스미)
글·사진 | 한수정
우아한 삶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관념과 현실을 분리시킨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혼자 떠나는 여행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규슈단편>을 함께 썼습니다.
www.instagram.com/vov_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