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 여행작가의 여행법][여행] 고즈넉한 중세를 즐기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직딩 여행작가의 여행법 #9



대영제국 혹은 영국연합왕국이라고도 불리는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 이렇게 4개의 작은 국가가 연합되어 있다. 여행자들이 처음 유럽여행을 시작할 땐 불문율처럼 런던으로 들어가 유럽 대륙을 돌고 마지막에 파리로 나오는 루트를 이용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 시기를 지났기에 이번 여행은 런던과 에든버러를 집중적으로 즐겼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에든버러 중심가인 웨이벌리Waverly역에 내렸다. 런던 시내에서도 흔히 마주쳤었던 저렴한 체인 카페 코스타COSTA가 보이니 반가운 마음에 긴장이 풀어졌다. 런던에서 에든버러로 올 때 야간 기차 침대칸을 예약했건만 탑승할 때는 등을 살짝 뉠 수 있는 칸이 내 좌석이라고 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침대칸으로 옮길 수 있었다.



어릴 땐 밤새 이동하며 숙박비를 버는 장한(?) 일을 자주 저지르기도 했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 예전엔 도시 스케일이 클수록 힘이 나기도 했다. 도시를 정복하겠다는 정복자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작은 도시가 좋다. 타박타박 내 발로 걸으며 골목 하나씩 들어설 때마다 예상치 못한 재미를 발견하는 게 좋고, 한 바퀴 금방 휘저어 걸으며 동네 사람과 눈인사 한 번, 말 몇 마디 나눌 수 있는 아기자기함이 좋다. 런던이 전자라면, 에든버러는 후자에 속했다. 무엇보다 런던 사람들보다 에든버러 사람들이 훨씬 친절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게 마음에 들었다. 내가 마주쳤던 런던 사람들은 마치 뉴요커처럼 진심 몹시 바쁘다는 표정이 온 얼굴에 드러났고, 넘쳐나는 관광객 따위는 지겹다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에든버러 사람들은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에 온화함이 느껴져서 길 가는 그 누구에게든 말을 걸기가 쉬웠다.



영국 사람들의 국민 간식이라 할 수 있는 스콘에 클로티드 크림을 잔뜩 발라먹는 호사를 누리며 매일 여유롭게 카페 놀이를 즐기고, 밥을 먹고, 그들이 제조한 다양한 생맥주에 취했다. 특히 엘러펀트 하우스The Elephant House라는 카페는 입구부터 문전성시를 이루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영국 출신의 작가인 조앤 K. 롤링이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집필한 곳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눈에 띄는 예쁜 빨간 색으로 도배가 된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녀를 추종하는 팬들의 열기가 후끈 전해졌다. 그녀가 앉았던 좌석, 그녀가 인터뷰 때 언급했던 카페 이야기를 벽에 붙여둔 잡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돈 없던 이혼녀 시절 끈기를 가지고 집필해 지금의 성공을 이룬 그녀의 일대기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돈 없는 미혼 작가인 나는 언제쯤 조앤 K. 롤링처럼 전 세계를 뒤흔들 명작을 쓸 수 있고, 내가 다녀간 카페들이 길이길이 후대에 남아 빛을 볼 수 있을까. 잠시 그런 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음을 부끄럽게 고백해 본다.



에든버러 성에 올라 시내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스카치위스키 박물관에 들러 쓰디쓴 독주의 맛도 본 후, 국립 스코틀랜드 미술관에 들러 세잔, 렘브란트, 드가, 고흐 등의 작품 외에도 이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로댕의 <키스> 앞에 섰다. 섬세하고도 강렬한 그의 작품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조각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몇 시간씩 그림을 그리고 사색을 하며 메모를 하던 사람들……. 어릴 때부터 예술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그들의 교육환경이 다시 한번 부러웠다.



스코틀랜드 여행의 마무리는 칼튼 힐에서 했다. 제주도의 오름 혹은 하와이의 조용한 섬 같은 느낌의 그곳은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전망이 특히 좋았다. 나폴레옹과의 전쟁 후 전사한 병사들을 위해 만든 그리스 아테네 양식의 신전과 함께 드넓은 평원이 펼쳐져 잠시나마 위안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마침 해 질 녘에 올라가서일까. 에든버러의 번화가인 로열 마일과 랜드마크인 에든버러 성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내 귓가를 울리던 바람 소리와 녹색 풀들의 향연, 그리고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고요함만이 나를 감싸던 그곳. 여행을 다녀온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칼튼 힐이 떠오를 만큼 내겐 가장 인상 깊은 곳이었다.



번잡한 일상을 벗어나 고전 영화에 나올법한 아름답고도 고즈넉한 중세시대로의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에든버러. 살아있는 박물관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소중한 여행이었다.





글/사진 루꼴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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