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미야 #17
입국 게이트가 활짝 열린다.
아니, 이 특대 꽃다발을 든 사람들은 대체 뭐지? 혹시 내가 타고 온 비행기에 유명한 사람이라도 탔었나?
베트남에 홀딱 반한 것은, 공항 입국장에서부터였다. 게이트가 열릴 때마다 그 사람이 나올까 설레는 눈빛을 한 사람들. 꽃다발을 안기고, 서로 꽉 끌어안으며 반가워하는 사람들. 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데도 벅차오른다. 마치 2년 6개월의 코로나 우울증을 잘 견뎌낸 나에게 주는 선물 같았다.

지난 6월, 드디어 우리나라도 해외 입국자에 대한 자가 격리가 풀렸다. 현충일 연휴를 맞아 항공 예약앱을 뒤지며, 자가 격리가 없는 나라를 아무 데나 골랐다. 어디를 가느냐갸 중요한 것이 아니라 떠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스멀스멀, 사소한 마찰에도 분기가 하늘을 찌르고, 몸 안에는 나쁜 기운이 가득해 도저히 비워지지 않는 이것, 코로나 우울증이었다. 비행기 티켓을 사자마자, 바늘로 손톱 아래를 톡 따서 까만 피 쭉 짜낸 듯 묵직한 체기가 내려간다.

기찻길 거리에서 만난 고양이
이렇게 울컥 사버린 비행기는, 혼돈 속 질주하는 오토바이 사이를 건너는 짜릿함이 있는 하노이 행이었다. 불가마 더위 속에서도 여기 사람들은 마스크를 충실히도 쓴다. 이 더운 날씨에 어떻게들 버틸까. 보이지 않는 빗방울이 대기를 꽉 메운 것처럼 습도까지 높아 마스크 쓰고는 걷기도 힘들다. 수상 인형극을 보러 목숨 걸고 오토바이 사이를 헤치며 큰 사거리를 건너왔건만, 코로나 때문에 무기한 폐쇄 중이란다. 아직도 코시국이라 뭐 하나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없다.
그럼 또 그런대로 다니는 거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로 그만이다.
호안끼엠 호수를 걷는데, 빗방울이 툭툭 떨어진다. 아무래도 큰비가 내릴 조짐이다. 근처 맥주 거리에서 목이나 축여야겠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언제 또 비옷으로 싹 갈아입었나. 비가 쏟아지는데도 도저히 속도를 늦출 생각이 없다. 우물쭈물하다가는 평생 길을 못 건너겠다 싶어서 이판사판 거리로 뛰어들었더니, 전속력으로 달려와 코앞에서 나를 슉슉 피해 간다. 아찔한 순간의 연속이다.

빗방울은 장대비로 바뀌었다. 우르릉 천둥이 하늘을 두드리더니 번개가 쩍쩍 가른다. 이러다 대홍수가 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들이붓는다. 오늘 밤 야간 버스를 타고 사파로 떠나기로 했는데, 버스 정류장까지도 갈 수 있는 비가 아니다. 오도 가도 못하고 발이 묶였는데, 걱정되기는커녕 맥주 한 병 입에 물고는 될 대로 돼라. 예측불가 역시 여행의 매력이다.

호안끼엠의 맥주 거리에서
맥주를 두 병째 들이키며 신나게 비 구경을 한다. 늘 벌어지는 일인지, 가게 주인들은 신속하게 차양을 걷고 의자와 테이블을 착착 접어 가게 안쪽으로 넣는다. 비가 발목까지 차올라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변변한 테이블 하나 없어 의자를 테이블 삼아 맥주 마시는 커플 하나. 나처럼 비를 피해 온 사람들이었다. 한국인이라 더 반가워하며 합석. 이들도 나처럼 오늘 아침 인천을 출발해 하노이에 도착, 야간 버스를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저희는 하장으로 가요.”
사진을 보여주는데 입이 떡 벌어진다. 노르웨이의 피오르드가 부럽지 않은 산과 바위들. 아직 관광객 손때가 타지 않은 보석 같은 곳이란다. 오토바이를 빌려서 2박 3일 산을 타기로 했단다.
“같이 가요!” 하고 내 손목을 덥석 잡는데, 사파 가는 버스를 취소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사파에서 보낸 시간
현충일 연휴를 가까스로 만들어 튀어나온 직장인의 애환에 전우애를 느끼고, 꾹꾹 눌러왔던 여행 에너지가 폭발해서 도시 따위 안중에도 없이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같은 족속임을 알아봤다. 통성명도 안 한, 테이블에 앉은 지 10분 만에 공고히 쌓은 이 연대감을 어찌 설명할까. 이것마저 그토록 그리워했던 여행의 맛이었다.
하노이에서 사파까지는 버스로 6시간. 캐빈 버스라는, 좁은 방처럼 커튼을 치고 몸을 쫙 펴고 편히 누워서 가는 버스를 탔다. 하지만, 시설 좋은 버스도 열악한 도로 사정과 사정없이 덜덜대는 엔진의 굉음은 이기지를 못했다. 겨우 잠이 드는가 했더니 새벽 무렵 머리를 찧고, 아래로 쓸려가며 자는 둥 마는 둥. 그럴 만도 한 것이, 구불구불 산길을 타고 올라오니 이리저리 처박히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캐빈 버스
어젯밤 11시에 떠나온 버스는 충실히 달려 새벽 5시 사파에 도착했다. 운전사는 소리를 지르며 승객을 깨운다. 부스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 속에 한국 사람들도 있다. 모두 현충일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날아와 하노이에 엉덩이를 붙일세라 곧바로 깊숙한 시골로 넘어온 직장인들이다. 돌아가는 비행 일정도 똑같다. 하장 커플도 그렇고, 떠나는 날 계 모임이라도 할 기세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택시도 잡기 어려워 같이 시내까지 걸어갔다. 안개 자욱이 내려앉은 사파 호수, 비가 다소곳이 떨어진다. 고지대라 그런지 제법 으슬으슬하다. 이 새벽에도 쌀국수집은 성실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커다란 육수 냄비는 보글보글 흰 연기를 뿜어낸다. 한 그릇 후루룩 먹으며 몸을 덥히니 그제야 동이 트기 시작한다.
사파의 아침을 깨운 쌀국수와 커피
너무 이른 시간이라 차도 없고, 산 중턱에 있는 호텔까지 걸어가는데 땀이 뻘뻘 난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벌써부터 피곤하다. 이팔청춘도 아니고 너무 무리하면 안 되는데 싶지만, 2년 넘게 꿍쳐 왔던 여행 에너지는 제어가 안 된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시내로 내려가 택시를 빌려 라오차이 마을과 깟깟 마을을 함께 돌아보기로 했다. 영어가 짧은 운전사 아저씨는 손으로 지도를 쓱쓱 그려 “여기서 만나!” 하고는 휑하니 사라졌다.

택시 아저씨가 그려준 지도
과연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기에는 기력이 너무 없다. 될 대로 돼라지. 커피가 너무 당긴다. 이 아침에 문 연 식당이 있어 들어가서 한 잔 시켰더니, 커피 드리퍼째로 가져다주신다. 똑똑 떨어지는 커피는 한약처럼 진했다. 연유를 섞지 않고서는 도저히 마실 수 없을 정도다. 역시나 카페인 효과는 확실, 정신이 번쩍 든다.

라오차이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여행자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시골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마음이 포근해진다. 담 너머 학교 구경도 하고, 인간 승리의 현장인 다랑이에서 뾰족한 대나무 모자 쓰고 밭일 하는 사람들도 보다 보니 외갓집 동네를 걷는 듯했다. 얼룩덜룩한 큰 개들이 혀를 쭉 빼고 어슬렁대며 좁은 길을 점령하는 탓에 그들과 마주치는 순간이 유일하게 긴장하는 때였다. 과일 파는 아가씨와 좁은 길을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니 마을 끝이 보인다. 다리 너머에서 택시 아저씨가 손을 흔들며 반가워한다. 아저씨의 허술한 지도는 사실 너무나 정교한 지도였다.

깟깟
시골 마을 트래킹을 7시간을 했는데도, 겨우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다. 이 시골 동네는 의외로 밤이 화려했다. 맛있는 거 실컷 시켜먹고 계산하려는 찰나, 지갑을 호텔에 두고 와서 먹튀꾼으로 몰리는 대환장 파티가 벌어지기도 하고, 인도차이나의 지붕이라는 해발 3,143m의 판시판 정상까지 올라갔는데, 보이는 것은 오직 곰탕 수준의 아득한 전경뿐, 싸대기 날리는 비바람에 몸이 휘청대는 아수라장의 순간에도 아쉬운 마음이 하나 없었다.

말 그대로 날아갈 것 같았던 판시판
호텔 직원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하노이 행 버스에 극적으로 올라타기도 하고, 마가린 잔뜩 풀어 고기를 구워주는 식당 총각이 프라이팬에 땀을 뚝뚝 흘려 넣어도 오직 즐겁기만 했으니, 포스트 코로나 시대 여행자의 마음가짐이란 결국 이런 것이었다.


글/사진 miya

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옥스퍼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서울 체류자. 대륙을 가리지 않고 오지를 휘젓고 다녔지만, 이제는 카페에 나른하게 앉아 일기를 쓰고 엽서를 쓴다. 창밖을 바라보는 맛이 더욱 좋아져 걷기도 싫어져 버린. 아니, 아니, 나이 때문은 아니라고.
카페 미야 #17
입국 게이트가 활짝 열린다.
아니, 이 특대 꽃다발을 든 사람들은 대체 뭐지? 혹시 내가 타고 온 비행기에 유명한 사람이라도 탔었나?
베트남에 홀딱 반한 것은, 공항 입국장에서부터였다. 게이트가 열릴 때마다 그 사람이 나올까 설레는 눈빛을 한 사람들. 꽃다발을 안기고, 서로 꽉 끌어안으며 반가워하는 사람들. 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데도 벅차오른다. 마치 2년 6개월의 코로나 우울증을 잘 견뎌낸 나에게 주는 선물 같았다.
지난 6월, 드디어 우리나라도 해외 입국자에 대한 자가 격리가 풀렸다. 현충일 연휴를 맞아 항공 예약앱을 뒤지며, 자가 격리가 없는 나라를 아무 데나 골랐다. 어디를 가느냐갸 중요한 것이 아니라 떠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스멀스멀, 사소한 마찰에도 분기가 하늘을 찌르고, 몸 안에는 나쁜 기운이 가득해 도저히 비워지지 않는 이것, 코로나 우울증이었다. 비행기 티켓을 사자마자, 바늘로 손톱 아래를 톡 따서 까만 피 쭉 짜낸 듯 묵직한 체기가 내려간다.
기찻길 거리에서 만난 고양이
이렇게 울컥 사버린 비행기는, 혼돈 속 질주하는 오토바이 사이를 건너는 짜릿함이 있는 하노이 행이었다. 불가마 더위 속에서도 여기 사람들은 마스크를 충실히도 쓴다. 이 더운 날씨에 어떻게들 버틸까. 보이지 않는 빗방울이 대기를 꽉 메운 것처럼 습도까지 높아 마스크 쓰고는 걷기도 힘들다. 수상 인형극을 보러 목숨 걸고 오토바이 사이를 헤치며 큰 사거리를 건너왔건만, 코로나 때문에 무기한 폐쇄 중이란다. 아직도 코시국이라 뭐 하나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없다.
그럼 또 그런대로 다니는 거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로 그만이다.
호안끼엠 호수를 걷는데, 빗방울이 툭툭 떨어진다. 아무래도 큰비가 내릴 조짐이다. 근처 맥주 거리에서 목이나 축여야겠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언제 또 비옷으로 싹 갈아입었나. 비가 쏟아지는데도 도저히 속도를 늦출 생각이 없다. 우물쭈물하다가는 평생 길을 못 건너겠다 싶어서 이판사판 거리로 뛰어들었더니, 전속력으로 달려와 코앞에서 나를 슉슉 피해 간다. 아찔한 순간의 연속이다.
빗방울은 장대비로 바뀌었다. 우르릉 천둥이 하늘을 두드리더니 번개가 쩍쩍 가른다. 이러다 대홍수가 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들이붓는다. 오늘 밤 야간 버스를 타고 사파로 떠나기로 했는데, 버스 정류장까지도 갈 수 있는 비가 아니다. 오도 가도 못하고 발이 묶였는데, 걱정되기는커녕 맥주 한 병 입에 물고는 될 대로 돼라. 예측불가 역시 여행의 매력이다.
호안끼엠의 맥주 거리에서
맥주를 두 병째 들이키며 신나게 비 구경을 한다. 늘 벌어지는 일인지, 가게 주인들은 신속하게 차양을 걷고 의자와 테이블을 착착 접어 가게 안쪽으로 넣는다. 비가 발목까지 차올라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변변한 테이블 하나 없어 의자를 테이블 삼아 맥주 마시는 커플 하나. 나처럼 비를 피해 온 사람들이었다. 한국인이라 더 반가워하며 합석. 이들도 나처럼 오늘 아침 인천을 출발해 하노이에 도착, 야간 버스를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저희는 하장으로 가요.”
사진을 보여주는데 입이 떡 벌어진다. 노르웨이의 피오르드가 부럽지 않은 산과 바위들. 아직 관광객 손때가 타지 않은 보석 같은 곳이란다. 오토바이를 빌려서 2박 3일 산을 타기로 했단다.
“같이 가요!” 하고 내 손목을 덥석 잡는데, 사파 가는 버스를 취소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사파에서 보낸 시간
현충일 연휴를 가까스로 만들어 튀어나온 직장인의 애환에 전우애를 느끼고, 꾹꾹 눌러왔던 여행 에너지가 폭발해서 도시 따위 안중에도 없이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같은 족속임을 알아봤다. 통성명도 안 한, 테이블에 앉은 지 10분 만에 공고히 쌓은 이 연대감을 어찌 설명할까. 이것마저 그토록 그리워했던 여행의 맛이었다.
하노이에서 사파까지는 버스로 6시간. 캐빈 버스라는, 좁은 방처럼 커튼을 치고 몸을 쫙 펴고 편히 누워서 가는 버스를 탔다. 하지만, 시설 좋은 버스도 열악한 도로 사정과 사정없이 덜덜대는 엔진의 굉음은 이기지를 못했다. 겨우 잠이 드는가 했더니 새벽 무렵 머리를 찧고, 아래로 쓸려가며 자는 둥 마는 둥. 그럴 만도 한 것이, 구불구불 산길을 타고 올라오니 이리저리 처박히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캐빈 버스
어젯밤 11시에 떠나온 버스는 충실히 달려 새벽 5시 사파에 도착했다. 운전사는 소리를 지르며 승객을 깨운다. 부스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 속에 한국 사람들도 있다. 모두 현충일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날아와 하노이에 엉덩이를 붙일세라 곧바로 깊숙한 시골로 넘어온 직장인들이다. 돌아가는 비행 일정도 똑같다. 하장 커플도 그렇고, 떠나는 날 계 모임이라도 할 기세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택시도 잡기 어려워 같이 시내까지 걸어갔다. 안개 자욱이 내려앉은 사파 호수, 비가 다소곳이 떨어진다. 고지대라 그런지 제법 으슬으슬하다. 이 새벽에도 쌀국수집은 성실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커다란 육수 냄비는 보글보글 흰 연기를 뿜어낸다. 한 그릇 후루룩 먹으며 몸을 덥히니 그제야 동이 트기 시작한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차도 없고, 산 중턱에 있는 호텔까지 걸어가는데 땀이 뻘뻘 난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벌써부터 피곤하다. 이팔청춘도 아니고 너무 무리하면 안 되는데 싶지만, 2년 넘게 꿍쳐 왔던 여행 에너지는 제어가 안 된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시내로 내려가 택시를 빌려 라오차이 마을과 깟깟 마을을 함께 돌아보기로 했다. 영어가 짧은 운전사 아저씨는 손으로 지도를 쓱쓱 그려 “여기서 만나!” 하고는 휑하니 사라졌다.
택시 아저씨가 그려준 지도
과연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기에는 기력이 너무 없다. 될 대로 돼라지. 커피가 너무 당긴다. 이 아침에 문 연 식당이 있어 들어가서 한 잔 시켰더니, 커피 드리퍼째로 가져다주신다. 똑똑 떨어지는 커피는 한약처럼 진했다. 연유를 섞지 않고서는 도저히 마실 수 없을 정도다. 역시나 카페인 효과는 확실, 정신이 번쩍 든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여행자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시골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마음이 포근해진다. 담 너머 학교 구경도 하고, 인간 승리의 현장인 다랑이에서 뾰족한 대나무 모자 쓰고 밭일 하는 사람들도 보다 보니 외갓집 동네를 걷는 듯했다. 얼룩덜룩한 큰 개들이 혀를 쭉 빼고 어슬렁대며 좁은 길을 점령하는 탓에 그들과 마주치는 순간이 유일하게 긴장하는 때였다. 과일 파는 아가씨와 좁은 길을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니 마을 끝이 보인다. 다리 너머에서 택시 아저씨가 손을 흔들며 반가워한다. 아저씨의 허술한 지도는 사실 너무나 정교한 지도였다.
깟깟
시골 마을 트래킹을 7시간을 했는데도, 겨우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다. 이 시골 동네는 의외로 밤이 화려했다. 맛있는 거 실컷 시켜먹고 계산하려는 찰나, 지갑을 호텔에 두고 와서 먹튀꾼으로 몰리는 대환장 파티가 벌어지기도 하고, 인도차이나의 지붕이라는 해발 3,143m의 판시판 정상까지 올라갔는데, 보이는 것은 오직 곰탕 수준의 아득한 전경뿐, 싸대기 날리는 비바람에 몸이 휘청대는 아수라장의 순간에도 아쉬운 마음이 하나 없었다.
말 그대로 날아갈 것 같았던 판시판
호텔 직원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하노이 행 버스에 극적으로 올라타기도 하고, 마가린 잔뜩 풀어 고기를 구워주는 식당 총각이 프라이팬에 땀을 뚝뚝 흘려 넣어도 오직 즐겁기만 했으니, 포스트 코로나 시대 여행자의 마음가짐이란 결국 이런 것이었다.
글/사진 miya
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옥스퍼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서울 체류자. 대륙을 가리지 않고 오지를 휘젓고 다녔지만, 이제는 카페에 나른하게 앉아 일기를 쓰고 엽서를 쓴다. 창밖을 바라보는 맛이 더욱 좋아져 걷기도 싫어져 버린. 아니, 아니, 나이 때문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