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미야][여행] 인도네시아 브라스따기에서 화산에 오르다

2022-10-13

카페 미야 #19

 


※ 인도네시아 브라스따기로 가는 길 1편


“코로나 끝나면 제일 가고 싶은 곳이 어디야?”
“화산.”


이름도 생소한 인도네시아의 ‘브라스따기’까지 온 까닭은, 부글부글 끓는 살아있는 지구를 목도하면 코로나로 쌓인 울화가 풀릴 듯했기 때문이다. 오지에 몸을 던져 산으로 들로 뛰는 조랑말 같은 여행을 해야만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 일찍 화산 트래킹을 함께할 가이드를 기다리며 운동화 끈을 고쳐 맸다. 메신저로만 연락을 나누었던 ‘헨드라’는 허스키한 목소리의 소유자로 화산 관측사 아리프와 다르게 터프한 말씨였다.


오늘 오를 산은 시바약 화산. 활화산이기는 해도 폭발 조짐이 보이지 않아 많은 사람이 하이킹을 온다. 보통은 서넛이 같이 오르는데 오늘 산을 타기로 한 사람은 나밖에 없단다.


666c03ab31518.jpg시바약 산을 타다 사라진 각국의 행방불명자 명단. 돌아온 사람도 죽거나 영원히 실종된 사람도 있다.


입산 등록소까지 차로 산길을 오르는데, 아기 강아지 두 마리가 졸졸 내려오자 헨드라가 차를 세웠다. 


“어, 나 이 강아지들 아는데? 얘네들 왜 여기 있지?”


헨드라가 혀로 쯜쯜 강아지를 부른다. 곧이어 굽은 길을 돌아 어미 강아지가 나타난다.


“아, 저기 오고 있었구나.”


안심한 헨드라가 다시 차의 시동을 켰다. 그때 알았다. 이런 사람과 함께라면 산행이 즐거울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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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손흥민이 공항으로 토트넘 선수들 마중 나간 거 알죠? (몰랐다.) 그게 바로 아시아 문화잖아요.”
“블랙 핑크가 아시아인 최초로 롤링스톤 표지 모델 한 거 알죠?” (그녀들이 옆에 지나가도 모른다.)
“같은 아시아인으로 한국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그렇게까지?)


‘같은 아시아인’이라니. 그렇게 여행을 다니면서도 한 번도 그들과 나를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범주에 넣어본 적 없었는데, 이 인도네시아 청년은 호방하게 한국을 품는다.


“한국이랑 우리랑 독립 기념일이 같은 거 알아요?”


인도네시아는 340년간의 피눈물 나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식민 시대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한탄의 일본 점령기를 거친다. 실제 해방의 날은 1945년 8월 17일로 우리나라보다 이틀 늦었다.


“그땐 우리나라도 한국도 똑같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두 나라 수준이 너무 달라졌어요.”


자조 섞인 헨드라의 말에 나는 그건 한국 사람들이 특별하다기보다 인도네시아의 열악한 자연환경 때문이 아닐까 답했다. ‘불의 고리’에 놓인 인도네시아가 화산과 쓰나미, 홍수 등 끊임없는 자연재해를 딛고 일어서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으리라. 지금껏 만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그 어느 나라 사람보다도 자긍심이 강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47ac7832b9179.jpg브라스따기 마을에서 본 백마 탄 남자


이렇게 헨드라와 나는 아시안으로서의 뜻밖의 자긍심과 동지애를 불태우며 시바약 등산을 시작했다. 처음 30분 정도는 우리나라 여느 산행과 다름없었다. 다만 지대가 높아 숨이 조금 더 가빴다. 시바약 산의 정상은 해발 2,181m로 발걸음이 두 배는 무겁게 느껴졌다.


커다란 열대 나무가 공중에서 뿌리를 내려 만든 터널을 지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화산 산행이 시작되었다. 잎이 넓고 키가 큰 나무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 나무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이내 나무는 다 사라지고 이끼만 뒤덮은 산이 나타났다. 그마저도 없어지더니 회색빛의, 만지면 쉽게 바스러지는 바위산이 나타났다. 산이 보이기도 전에 달걀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b9e7f6fc7966c.jpg뿌리를 내려뜨린 나무


b9915f1248c16.jpg시바약 등산길의 이끼와 키 작은 나무


누가 구멍을 뽕뽕 뚫어놓은 것처럼 여기저기서 노란 연기가 피어오른다. 퓨슈슈슈! 곧 터질 것 같은 공포스러운 소리가 온 산에 메아리친다. 어떤 때는 소리가 너무 커서 ‘지옥의 비명 소리’라고도 불린단다. 이런 극한 환경에서도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는 인도네시아 청춘들이 있었다. 해발 1,300m 고지대라 늘 쾌적한 브라스따기를 찾아 주말이면 많은 사람이 놀러 온단다. 특히 시바약의 비박은 그중에서도 가장 핫한 레저였다.


b97877c45bf56.jpg비박하는 청춘들


지금은 건기라 칼데라 호수는 거의 말랐다. 즐거운 청춘들은 칼데라에 서로의 이름을 돌로 새기며 로맨스를 불태운다. 아래로 내려가 분화구를 가까이 바라보니 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수증기가 너무 뜨거워 데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헨드라는 네모 반듯한 돌이 있는 분화구 앞으로 나를 데려간다. 


49ca5ddd3e509.jpg칼데라에서 본, 돌멩이로 새겨진 이름들


“이 분화구는 좀 특별한 곳이에요. 숲에 영혼을 빼앗긴 사냥꾼들을 데리고 와 굿을 하던 곳이거든요.”


옛날 사냥을 업으로 삼던 시절, 가끔 말도 안 하고 넋을 잃는 사냥꾼들이 생기곤 했단다. 당시 사람들은 그들이 숲에서 나쁜 일을 해서 영혼을 빼앗겼다고 믿었다. 그래서 무당이 이 분화구로 데려와 돌 위에 음식을 차리고 굿을 하면 정신을 차렸다고 했다. 지금도 그 풍습은 남아 이 자리에서 굿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4c86eab659d36.jpg연기가 피어오르는 분화구


헨드라는 지난주 목격담을 들려주었다. 서른이 넘도록 독신인 딸이 걱정된 부모가 부디 딸이 결혼하게 해주십사 무당을 데려와 소원을 비는 중이었다고. 청혼한 남자가 다섯 명이나 됐는데 다들 갑자기 사라지거나 죽거나 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 인도네시아에서는 오십이면 손주를 보는 나이다. 28세 헨드라의 엄마도 올해 오십이 되었단다. 한 세대가 20년밖에 안 되는 셈이다.

 

헨드라는 “기도하세요. 결혼하게 해달라고.” 하며 혀를 쏙 빼고 웃었다. 


“설마 저 위까지 가는 건 아니죠?”


0e568eea72fa4.jpg유황이 묻은 분화구


이게 끝이 아니었다. 칼데라 호수에서 보이는 저 높은 산봉우리까지 가장 험한 코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온통 마른 흙에 돌멩이 굴러다니는 길이다. 자칫하면 미끄러질 수 있어 발끝만 보고 걸었다. 고소공포증을 느낄 새도 없었다. 정상을 앞두고는 너무 가팔라 숫제 네 발로 기어 올라갔다. 밀어주고 당겨가며 엉금엉금 타올라 마지막 발을 내디뎠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아아. 내가 이거 보려고 산 넘고 물 건너 여기까지 왔지!


4c250d6d9f67d.jpg정상에서 본 풍경


브라스따기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우뚝 솟은 시나봉 화산은 아우라 대방출, 새하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2년 반 동안 쌓인 울화가 말끔히 날아갔다. 아리프는 오늘도 열심히 관측하고 있겠지?


헨드라는 정상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VIP석으로 나를 이끌었다. 내가 입을 쩍쩍 벌리며 감탄하는 동안 언제 가져왔는지 가방에서 사과를 꺼내 깎는다. 짠맛이 적당히 밴 사과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ba9b9bc3cc0de.jpg사과 깎아주는 남자 헨드라


둘만 가면 어색하지 않을까 싶던 고민이 무색하게 트래킹 하는 내내 목이 쉬도록 수다를 떨어대고, 정치 얘기를 할 때에는 아예 걸음을 멈추고 맞장구를 쳐가며 쌍욕 삼매경에 빠지기도 했다. 울창했던 나무가 사라져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바위산을 걸을 때는 쓰고 있던 모자를 내게 푹 씌워주며 수마트라 남자 특유의 터프한 매력을 발산하기도 했다. 산행을 마치고 출발점으로 돌아왔을 즈음 우리 둘은 죽이 잘 맞는 친구가 되어있었다. 


328446fe04a4e.jpg헨드라와 함께


헨드라는 잘 아는 식당이 있다며 나를 이끌었다. 이 식당은 밥도 맛있지만 커피가 최고란다. 과연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자 두 눈이 띠용.


“세상에! 이런 커피 매일 마시고 살아요?”


너무 감동해서 밥도 나오기 전에 잔을 비웠다.


헨드라는 호주에서 일하고 싶어서 취업 비자를 신청해놓고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란다. 이십 대 초반에 허송세월한 것이 너무 후회된다고 한탄하는데, ‘이보게~’ 소리가 절로 나온다.


735dfcef17068.jpg브라스따기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그건 이십 대 때만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아요. 지금은 허송세월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내 안에 쌓이고 쌓여 돌아보면 희미했던 나를 진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더라고요. 조급해할 필요 없어요. 지금 너무 잘하고 있어요.”


꼰대 소리가 자꾸 흘러나오는 거 보면 나도 나이를 먹었나 보다. 내 눈에 헨드라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반짝반짝한 사람이다. 그 나이 때 나도 저렇게 빛났나 돌아볼 만큼 아름다워서 자꾸 기운을 북돋아 주고 싶다. 그렇지만 이런 것도 적당히 할 줄 아는 연습도 필요하다. 꼰대가 되지 않는 길은 참 멀고도 험하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입은 닫고 지갑은 여는 미덕을 발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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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mi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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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옥스퍼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서울 체류자. 대륙을 가리지 않고 오지를 휘젓고 다녔지만, 이제는 카페에 나른하게 앉아 일기를 쓰고 엽서를 쓴다. 창밖을 바라보는 맛이 더욱 좋아져 걷기도 싫어져 버린. 아니, 아니, 나이 때문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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