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크리스마스 트리, 마이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특집 #5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환경이 달라졌고, 항상 옆에 있던 아빠, 엄마, 남동생이 아닌 단 한 사람이 언제나 내 옆, 앞,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연말이면 잦은 모임에 정신이 없었는데 이곳 휴스턴 외곽 주거단지에 오고 나서는 그런 모임을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도시는 차분하게 빛나고, 집집마다 각자의 취향에 따른 각기 다른 불빛, 장식으로 집을 꾸며 놓았다. 물론 그보다는 사람들의 개성에 더 놀라곤 한다. 비록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한정적이고, 동네에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더라도. 우리는 그저 서로를 보고 가끔 친구 커플을 만나 데킬라를 마시며 2018년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


어릴 땐 「나 홀로 집에」의 영향으로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황홀하기 그지없는 겨울왕국일 거라 상상했다. 안타깝게도 휴스턴엔 눈이 내리지 않는다. 우리는 2주 전에도 수영을 했다. (러닝을 하고 더운 몸을 식히기 위해 물에 뛰어든 것이지만.) 무엇보다 당황스러운 건 12월 중순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도 평균 기온이 14~15도 정도라는 것.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상상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미국은 워낙 광활한 곳이라 눈을 보고 싶으면 눈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면 된다. 하지만 올해는 얌전히 보내기로 암묵적 합의를 했기에 특별하거나 유난스러운 계획 없이 흐르는 시간을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오후 서너 시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수영을 하곤 했는데, 11월 말부터는 물 온도가 많이 낮아져 해 지기 전 조깅을 한다. 집 앞에 있는 작은 호수를 벗 삼아 하루에 3킬로 정도씩 뛰다 보니 오후가 되면 해가 보고 싶어서라도 꼭 문을 나선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동네의 풍경이 달라졌다. 작은 장식이 눈에 띄더니 집 앞을 초록과 노랑 조명으로 장식한 집들이 늘어났다. 어떤 집에선 커다란 인형이 춤을 추고, 어떤 집은 나무 전체에 눈이 내리는 것 같은 조명을 달아 놓았다. 우리도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았다. 매년 성탄절 즈음이면 엄마는 콧노래를 부르며 오래된 장식들을 꺼내 작은 아파트 한구석에 세워 놓고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날을 기념하곤 했다. 나 역시도 괜스레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신이 난 척 하진 않았다. 이제 난 다 큰 어른이니 어린아이들처럼 보이기 싫었던 탓일 거다.


올 해는 들뜬 엄마도, 눈도 없다. 따뜻한 날씨와 화려한 장식을 한 이웃집이 있을 뿐이다.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연이어 블랙 프라이데이가 시작되고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쇼핑을 나선다. 우리 역시 지난 몇 달 별러 온 오븐, 믹서 같은 물건들을 사놓고 하루는 감자를 튀겨먹고 하루는 스무디를 만들어 먹었다. 기다리던 것들을 직접 만나는 감격 같은 감정들이 연말 내내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아직도 이방인이자 관찰자니까.



"그 빛에서 전해지는 부드러움, 따뜻함."


두 주 전 일요일 아침. 그날은 마침 12월 1일이었다. 올해도 이제 마지막 한 달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침부터 나무를 사러 가야 한다는 말을 수십 번 반복한 끝에 남편의 손을 잡고 말 그대로 크리스마스 나무를 사러 갔다. 한 시간 정도 거리를 달려가면 지목한 나무를 직접 잘라주는 농장이 있다고 했지만, 크리스마스용 살아 있는 나무를 살 수 있는 곳은 거기 아니라도 집 가까이 어디에나 있었다. 나무만 전문적으로 파는 곳, 집을 수리하거나 보수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장비들을 파는 홈디포The Home Depot, 심지어 월마트에서도 살아 있는 나무가 있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을까. 12월 첫날, 홈디포에는 아이들과 함께 나무를 고르는 엄마아빠들부터 휠체어에 앉아 하나하나 손으로 잎을 만져보며 나무를 살피는 할머니들까지 미국의 온 가족이 모여 있었다. 나무를 파는 임시 천막에 들어서는 순간 송진 냄새와 함께 신선한 침엽수의 향이 기분 좋게 번졌다. 여기저기 신기한 망에 곱게 싸여 있는 나무를 보며 새삼 문화의 차이를 느꼈다.


직접 고른 나무를 집에 가져가 예쁜 오너먼트를 달고 불을 밝히며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과 12월 24일 밤 친구들과 밤새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어디에나 나름의 문화가 있고, 한국에서 서양의 문화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어느 지점에선가 분명 왜곡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아주 짧게 스치다 금세 지워졌다.


나는 향이 좋고 우리 집 크기에 적당한 나무면 된다고 생각했다. 멀리서 봤을 땐 다 같은 나무였는데, 직접 만져 보고 세워 보니 여기에는 분명 내가 선택해야 할 부분들이 많았다. 손가락에 송진을 묻히며 나무들을 만져보았다. 손끝에서 번지는 향에서 떠오르는 기억.



함께 시장에 가거나 산책을 하거나 아빠를 마중하러 나가거나. 엄마와 함께 걷는 길은 내게 언제나 큰 즐거움이었다. 그날은 숲 속 공원에서 미술대회가 열린 날이었다. 엄마와 이모가 내 손을 잡았고, 우리는 높고 울창한 나무들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당시엔 재밌었겠지만,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와 이모의 얼굴을 올려다보면 얼굴 저 위에서 나무가 흔들리고 있었다. 내 머리 위로 흐르는 바람과 갸우뚱하며 나를 내려다보는 나무들, 어디에서 불어 온 바람일까,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아닌 묘한 감정들.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웃음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서글픈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움이 마구 샘솟는다. 그리고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나무를 살핀다. 결국 우리는 한 여름 계곡에서 만난 것처럼 생명력 넘치는 초록의 나무를 골랐다. 전구와 오너먼트 몇 개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나무를 고정시키고 물을 주었다. 나무는 뿌리가 잘렸지만 여전히 물을 흡수했다. 크리스마스까지 한 달, 가느다랗게 생명을 유지하며 서 있을 것이다. 초록색, 빨간색, 은색의 볼을 달고 200개의 전구를 가지 위에 올렸다. 불을 켜는 순간, 우리 둘은 다섯 살과 일곱 살 어린아이처럼 온 집안을 신나서 뛰어다녔다. 어두운 거실에 빛이 태어나고, 그 빛에서 전해지는 부드러움, 따뜻함.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은 튤립에 인사하며 물을 갈아주고, 물에 영양제를 섞어 크리스마스트리에 부어준다. 그리고 밤새 물을 얼마나 먹었는지 슬쩍 살펴본 뒤 나뭇가지를 살살 잡아당겨본다. 잎이 떨어지지 않으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기에. 꼭 밤사이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듯.


나 역시 아침이면 트리에 불을 밝힌 다음 나뭇잎 한가운데 코를 박고 킁킁 거리며 숲의 냄새를 맡는다. 질척한 흙바닥을 잘 피하며 엄마와 함께 산책하던 소나무숲길을 생각하고, 우리 둘 다 오늘도 살아 있으니 어디 한 번 잘 지내보자고 이야기한다.


이제 크리스마스까지 열흘. 콜롬비아 친구 웬디가 자기 가족은 나의 가족, 자기 집은 나의 집이나 마찬가지라며 가족 식사에 초대했다. 연말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 싫어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도 예매했다. 다운타운의 불빛들과 크리스마스 장식은 아름답지만, 아직은 춥지 않은 이곳에서 맞이하는 성탄절이 낯설다. 그래도 그럭저럭 기대하고 설레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그때까지 살아서 우리 집을 밝혀줄 크리스마스트리와 함께 말이다.






글/사진 별나

클래식 작곡 전공, 빌보드 코리아 기자, 예술 강사를 거쳐 이젠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선 (우아한) 몽상가. 수전 손택을 닮고 싶고, 그보단 소박하게 전 세계를 산책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미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이다.




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