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미야][여행] 샌프란시스코, 머리에 꽃을 달고 사랑의 축제를

2025-09-11

카페 미야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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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You’re gonna meet some gentle people there
For those who come to San Francisco, summer time will be a love-in there.

샌프란시스코에 가게 되면 머리에 꼭 꽃을 꽂고 가세요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샌프란시스코를 찾는 사람들에게, 이 여름은 사랑의 축제가 될 거예요

이 가사를 읽으면 바로 노래를 흥얼거릴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샌프란시스코가 대체 어떤 곳이기에, 어떤 사람들이 살기에 머리에 꽃을 꽂고 오라는 것인가. 스콧 맥캔지(Scott McKenzie)의 노래 <San Francisco> 도입부는 이토록 강렬하고 로맨틱해서, 항상 이 노래의 첫 소절에는 뭔지 모를 동경으로 가슴이 뛴다.


“매일 화창한 날을 100% 담보할 수 있는 곳에서 빈둥거리고 싶어” 


2주를 샌프란시스칸(San Franciscan)다운 주말 생활로 가득 채우리라 마음먹었다. 매일 늦잠, 아침은 대충, 카페에서 드립 커피 한 잔 사들고 동네 구경을 하다가 공원에서 광합성을 해야지. 그래서 언제든 자리 펴고 누울 수 있게 지하철에서 파는 얇고 시퍼런 매트도 사서 가방 속에 넣어 두었다. 


명색이 여름휴가인데, 하루에 한 개 정도의 일정은 소화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마련한 To do list. 현지 주민들이 안내하는 무료 워킹 투어 참가, 바람의 손자 이정후 선수 경기 보러가기, 친구들의 부러움 유발 용도로 나파밸리(Napa valley) 와이너리 다녀오기. 소싯적에는 휴가 기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려고 빈틈없이 루트를 짜고, 여행지의 문화 역사 공부에 매진하기도 했다. 이제는 이렇게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나는 여행도, 물론 시간과 기력의 차이에 원인이 있기도 했지만, 은근히 연애 초기 썸남의 취향과 버릇을 하나하나 알아 가는 듯한 신선함과 설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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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서 만난 ‘샌프란시스칸’들은 캘리포니아 지중해성 기후를 꼭 닮아 따뜻하고 쾌활했다. 길을 물으면 마치, 너에게 길을 가르쳐주기 위해 오늘 이 거리로 나섰노라, 사진을 부탁하면, 네 사진 찍어주려고 가던 길 멈추고 아까부터 너만 쳐다보고 있었노라, 연거푸 친절의 최고치를 경험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지중해성 기후는 사람들이 시니컬해지도록 놔두지 않는구나. 


그래도 요새 미국은 어디를 가든 마음을 굳게 먹어야 되는 것이 있다. 인간의 존엄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이런 철학적 고민까지 일으키는 노숙자와 마약 중독자들이 거리에 깔려 있다는 정보. 요새 샌프란시스코는 마약에 취해 기괴하게 몸을 틀며 배회하는 ‘마약 좀비’들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밑동이 까매진 플라스크를 들고 눈동자가 풀린 채 앉아있는 사람들에 점령된 거리. 구글 맵은 이런 광경을 아랑곳하지 않으니 빨리 걷거나 뛰어서 최대한 빨리 지나쳐야 한다. 일부 유튜버들이 조회수에 눈이 멀어 일부러 가장 위험한 곳, 텐더 로인(Tender loin)으로 달려가서 자극적인 영상을 찍는 탓도 있다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에 관광객이 많이 줄어들었을 정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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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온 스퀘어


샌프란시스코에 머무르는 동안 놀랍게도 마약 좀비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유니온 스퀘어(Union Square)를 중심으로 관광지마다 많은 경찰이 지키고 서 있었다. 유니온 스퀘어는 설립 목적 그대로 지역 주민들의 놀이터로 활용되고 있었다. (다른 도시의 ‘유니온 스퀘어’는 노숙인들에 점거되어 여행객이라면 피해야 할 장소이다.) 올해 1월 새로 취임한 시장이 마약 퇴치에 칼을 뽑아 들었단다. 펜타닐 비상사태를 선언하여 마약 거래 단속을 강화하고, 마약 중독자 치료 지원 체계도 마련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어두운 장막이 걷히고 반짝이는 지중해의 태양이 한낮의 도시를 채우고 있었다.


* * *


샌프란시스코를 가장 잘 즐기는 방법으로는 단연 무료 워킹 투어를 꼽겠다. 영어를 대충이라도 알아들을 자신이 있다면 꼭 참석해 보기를. 이웃들이 자기 동네를 매우 애정 어린 마음으로, 그것도 체계적으로 소개한다. 흥미로운 주제의 투어가 다양한데, 매일 어디를 갈지 즐거운 마음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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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헤이트 애쉬버리(Haight-Ashbury)라는 동네가 ‘힙’하다고 한다. 투어의 시작은 골든 게이트 공원과 프라이팬 손잡이처럼 연결된 팬 핸들 공원(Pan handle park)이다. 이름이 꽤 직관적이다. 


“이 공원은 1966년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LSD를 금지하자 Love Pageant Rally라는 집회를 열고,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와 같은 당대 최고 히피 밴드가 이 조치에 항의하는 공연을 열어,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퍼뜨렸던 곳이에요. 훗날 이 공연은 히피 운동(Hippie movement)의 상징이 되었지요.”


내가 지금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나? 투어 시작부터 LSD다. 게다가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어째서 마약이 사랑과 평화의 상징을 대변하는 것인가? 오늘의 투어는 그저 힙하고 예쁜 동네를 걷는 게 아니라 미국 히피 문화의 근원지를 찾고 그 안에서 마약이 어떻게 히피 운동의 흥망성쇠를 이끌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1960년대 히피 운동을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발로만 읽기에는 그들의 진지함이 자못 깊다. 히피 운동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 사랑, 자유를 중시하며, 공동체 생활로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실현하고자 반문화 운동(Counterculture Movement)에 뿌리를 두었다. 미국의 젊은 예술가, 음악가들은 월세가 싼 헤이트 애쉬버리로 몰려들었다. 음악과 패션으로 자아를 표현하고, 동양적 명상과 LSD와 같은 환각제로 의식을 확장하려고 했다. 사실 LSD는 1960년대에 초중반만 하더라도 심리 치료·의학 연구에도 사용되었고, 샌프란시스코의 반문화 예술가들 사이에서 ‘의식 확장’ 도구로 각광받으며 합법의 테두리 안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동네의 벽화와 상점 디스플레이가 온통 알록달록 버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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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캐서린은 허리춤에 작은 스피커를 매달고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당시 대표적인 히피 음악을 틀며 그 시대의 흥취를 우리에게 전했다. 그레이트풀 데드의 사이키델릭한 실험적 음악은 평화와 자유, 공동체적인 삶의 모습을 담아내며 히피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들의 음악을 들어보기도 전에 이미 헤이트 애쉬버리의 벽화와 작은 음악상, 서점, 빈티지 숍, 온 사방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들이 이 지역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캐서린은 이 동네가 예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누가 살았었는지를 알려주는데, 하이라이트는 히피의 아이콘 그레이트풀 데드, 제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이 살던 집을 방문하여 그들과 얽힌 일화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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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풀 데드가 살던 집과 전시관


“그레이트풀 데드가 살던 집은 팬들에게도 항상 열려있는 공간이었어요. 음식을 나눠먹고, 음악이 끊이지 않는 히피 공동체 생활 그 자체였어요. 맞은 편 집에는 악명 높은 오토바이 갱단 두목이 살고 있었는데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어느 날 밴드의 막내가 대마초 범죄 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의 급습을 피해 그 집으로 피신했는데, 거기서 한참 은신해 있으면서 경찰이 오가는 걸 염탐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캐서린은 이 동네에서 20년을 넘게 살았다고 한다. 이곳 토박이인 옆집 할머니가 젊었을 적 제니스 조플린을 직접 만났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제니스 조플린에게 ‘운전할 때 차에서 어떤 음악을 들어요?’ 하고 물었더니, 제니스가 ‘항상 마약에 취해 있어서 무슨 음악을 들었는지 기억이 안 나.’라고 했다네요.”


과연 짧은 일화에도 히피스러움이 뚝뚝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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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 조플린이 살던 집


평범해 보이는 한 집을 지나친다. 


“이 집은 게릴라 단체가 언론 재벌의 손녀를 유괴해서 은신처로 사용했던 집이에요. 이 집에서 몇 년을 살았는데 아무도 몰랐대요. 그런데 이 소녀가 납치범에게 완전히 세뇌 당해서 은행 강도질도 같이 하게 되어, 그녀가 체포당했을 때에는 재벌 손녀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대요. 이 사건은 스톡홀롬 신드롬의 사례로 자주 등장해요. 네, 맞아요, 헤이트 애쉬버리에는 모든 것이 있답니다.”


투어는 헤이트 애쉬버리 무료 진료소(Haight-Ashbury Free Clinic)에서 끝이 났다.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라는 의사는 이 지역의 젊은이들이 마약 과다 복용, 정신 질환, 성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치료에 대한 접근이 어려움을 인지했다. 의료는 특권이 아닌 권리임을 주장하며 공공 의료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특히 중독을 도덕적 타락이 아닌 질병으로 접근했다. 중독에 대한 치료 방식과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치며 그는 미국 ‘자유 진료소의 아버지’로 이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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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 문화는 주류 문화에 편승하기를 거부하고, 청년들이 다채로운 문화를 주도하며 어찌 보면 혼란스럽고 한편으로는 순진하기도 했던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환경 운동과 여성 운동이 갈라져 나왔으니,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아닐까 싶다. 캐서린의 가이드는 중독이 인간의 정신과 삶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재고하고, 히피 운동이 이토록 짧게 꽃피우고 무너진 원인이 다름 아닌 마약이었음을 강조하며 끝났다.


샌프란시스코는 역사적으로 관용과 다양성의 도시로 알려져 있었으며 자유와 평화를 찾는 이들에게 이들은 유토피아와 같은 곳이었다. 1967년 여름, 히피 문화가 꽃을 피울 때, 젊은이들이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을 찾아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 애쉬버리로 향할 때, 그 열기에 불을 지핀 것은 바로 스콧 맥킨지의 노래 <San Francisco>였다.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듯 나의 본능은 샌프란시스코의 히피 감성을 낚아챈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싱숭생숭, 샌프란시스코에 다시 가야만 할 것 같다.




글/사진 mi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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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옥스퍼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서울 체류자. 대륙을 가리지 않고 오지를 휘젓고 다녔지만, 이제는 카페에 나른하게 앉아 일기를 쓰고 엽서를 쓴다. 창밖을 바라보는 맛이 더욱 좋아져 걷기도 싫어져 버린. 아니, 아니, 나이 때문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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