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미야][여행] 샌프란시스코, 내 마음을 두고 온 곳

2025-09-15

카페 미야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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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사람들, 활기찬 바이브, 알록달록 빅토리안 하우스들은 샌프란시스코의 시작에 불과했다. 대체 샌프란시스코에 모자란 게 무엇일까? 


도시와 딱 붙은 항구인 피셔맨 와프와 오션 비치는 샌프란시스칸에게 바다의 낭만도 한껏 만끽하게 한다. 피셔맨 와프는 경제적 측면으로 보면 부의 근원이지만, 여행객에게는 맛의 근원이다. 신선한 해산물 요리도, 쫀득한 사워 도우안에 담긴 클램 차우더 수프도 샌프란시스코에서 반드시 먹어야 되는 명물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Giants)의 홈구장인 오라클 파크(Oracle Park)도 피셔맨 와프에 있다. 지금은 MLB 시즌이라서 홈구장에서 경기가 열릴 때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동네를 배회한다. 사실 ‘야알못’이더라도 야구장 구경하는 맛이 좋다기에 To do list 넣어 놓았다. 마침 시카고 컵스(Chicago Cups)와 3연전이 벌어지던 중이라, 그중 하루를 잡아 볼까 싶어 챗 지피티에게 “오늘 경기에 이정후가 등판해?”라고 물었다. 2년 가까이 겸손하게 높임말을 써가며 공손한 비서로 근무 중이던 지피티가, 이정후 선수는 투수가 아니므로 ’등판’이라는 말은 맞지가 않다고 호되게 혼냈다. 


오라클 파크에 도착하자 건물 앞 엄청나게 커다란 포스터에 선수 세 명만이 등장해 있는데, 그중 동양인 한 명이 있기에 저게 바로 이정후인가 싶었다. 등번호가 51번이라는 것은 기념품 숍에서 유니폼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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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셋 중 하나는 이정후겠지 싶었다.


3:3 무승부를 이어가던 와중 9회말, 이정후가 타석에 들어서 끝내기 안타를 치고야 말았다. 참을 수 없이 얕은 야구 지식을 가진 내가 이런 엄청난 경기를 목도하고야 말았으니, 역시 화투 첫판은 초짜가 따는 것이다. 이정후가 타석에 설 때마다 꺄악 꺄악 소리가 나기에, 오늘 따라 한국인 관중이 많이 온 건가 했는데, 사실 이정후는 자이언츠의 핵심 타자, 슈퍼 루키로 현지인들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선수였다. 이정후의 끝내기 안타에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어나가 이정후를 엎치고 덮치고 물 양동이 쏟아 붓고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는 동안 관중석에서는 이정후 이름이 메아리쳤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자이언츠 팬들은 딱 한국인 얼굴을 하고 이정후를 목놓아 외치고 있는 나에게 ‘엄지척’을 선사하며 국뽕을 차오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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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기 세러머니


나파밸리 와인은 또 어떻고. 와인은 항상 머리가 깨지는 뒤끝을 주는 술이라 웬만하면 피해 왔다.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투어 차량에 몸을 실었더랬다. 피셔맨 와프를 떠난 지 1시간 만에 창밖에 끝없는 포도밭이 나타났다. 지금껏 내가 마신 와인은 대체 무엇이었던가. 지중해성 기후는 포도 알알이 달콤함을 채워 넣었고, 화이트, 로제, 레드 할 것 없이, 그 감미로움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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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 지역을 연상케 하는 나파밸리 와이너리에서의 테이스팅


포도밭을 바라보며 빨간 체크무늬 식탁보와 꼬마전구로 세팅된 와인 테이스팅은 눈물 나게 낭만적이라, 다시 한 번 내가 부자이길 갈망했다. 빅토리안 하우스를 한 채 사고, 전세기로 친구들 불러서 와이너리에서 파티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하나의 허황된 단꿈을 꾸었다. 


역세권보다 팍세권이 중요하다고 부르짖던 나. 사실 구글 맵에서 골든 게이트 파크를 발견했을 때, 나의 이번 여행의 완성은 여기겠구나 했었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보다 더 큰 (반드시 강조해 주어야 한다) 골든 게이트 파크는 샌프란시스칸들에게는 소중한 안식처다. 공원 안에는 보타니컬 가든(Botanical Garden), 일본 차 정원(Japanese Tea Garden), 꽃 온실(Conservatory of Flowers) 등 아름다운 정원에서부터 아쿠아리움, 플래닛타리움, 열대 우림 돔이 있는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California Academy of Sciences)에 현대 미술 전시관인 드 영 미술관(de Young Museum) 까지, 없는 게 없는 정말 완벽한 공원이다. 공원이 너무 넓어 셔틀 버스까지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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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영 미술관 조각 정원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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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게이트 파크 보타닉 가든 


드 영 미술관의 작품도 좋지만, 조각 정원의 카페테라스가 아름다워 차 한 잔 하며 쉬어가기 좋다. 과학 아카데미 중에서도 플래니타리움은 미국의 최첨단 디지털 프로젝션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플래니타리움에서 지구와 우주의 모습을 보는 것에 환장하는 나. 총 3편의 영상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봤으니 박물관의 비싼 티켓 값은 이걸로 회수했다. 


공원에는 메모리얼 벤치(Memorial Bench)를 두어 생전에 이곳을 사랑했던 친구와 가족을 추모하고, 공원 이용객들에게는 작은 휴식을 주기도 한다. 스토우 호숫가를 거닐다 한 메모리얼 벤치에 카네이션이 꽂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따뜻한 마음에 젖어 꽃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할머니 한 분이 “이 꽃이 맘에 드니?”라고 물으신다. 이 벤치의 주인인 친구가 그리워 가져다 놓은 꽃이하고 한다. 할머니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이 벤치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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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얼 벤치에서 만난 새 박사님 낸시 할머니와 보기에는 귀여운 라쿤


낸시 할머니는 새 박사님이셨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한국에는 회색 왜가리가 산다고 알려 주신다. “이 공원에는 푸른 왜가리가 살고 있어. 뒤쪽 호수에 가면 볼 수 있지.”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무에서 살금살금 내려온 라쿤이 할머니 앞에서 번쩍 일어난다. “이 녀석이 자꾸 새들을 공격해서 나타날 때마다 매번 쫓아 버리는데, 이 영특한 녀석이 나를 알아보고 항상 다가온다우”라고 하신다. 라쿤의 행동이 낸시 할머니에 대한 공격의 의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영락없이 안아주세요~ 하는 모습이다. 와락 끌어 안아주고 싶었다. “원래 이 녀석들은 밤에 나와야 되는데 지금 나오는 건 조금 이상한거야. 잘못하면 토끼처럼 물 수가 있으니까 조심해야 돼”라고 하셨다. 할머니가 친구 벤치에 앉아 따스한 오후의 햇살을 만끽하시는 동안 호수 건너 저편에서는 음악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떼창 소리가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다. 


샌프란시스코에 머무는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골든 게이트 공원을 찾아와 나의 여행의 목표였던 “화창한 날을 100% 담보할 수 있는 곳에서 빈둥거리기”기를 달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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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 와인에, 공원에, 조금 넓혀보면 요세미티 국립공원까지 있으니, 샌프란시스칸들이여, 당신들은 천국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동안 미국을 여기저기 다녀봤어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든 도시는 이곳이 처음이었다. 2주일 간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다. 한국에 돌아와 보름이 돼 가는 오늘도 가장 싼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 티켓을 뒤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이 샌프란시스코 앓이는 아무래도 한동안 지속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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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시티 가이드 투어 : https://sfcityguides.org/




글/사진 mi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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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옥스퍼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서울 체류자. 대륙을 가리지 않고 오지를 휘젓고 다녔지만, 이제는 카페에 나른하게 앉아 일기를 쓰고 엽서를 쓴다. 창밖을 바라보는 맛이 더욱 좋아져 걷기도 싫어져 버린. 아니, 아니, 나이 때문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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