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in there #17
아우슈비츠
크라쿠프 버스 터미널에서 오시비엥침Oświęcim행 버스를 타면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아우슈비츠 뮤지엄) 바로 앞에 내려준다. 폴란드의 평범한 도시였던 오시비엥침은 독일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하며 이곳에 수용소를 세운 뒤 독일어식인 아우슈비츠Auschwitz로 바꿔 불렸다. 기록된 역사로만 이곳에서 학살된 인원이 110만 명이다. 무서운 건 불과 몇십 년 전에 일어난 아주 가까운 역사라는 것이다. 인간에겐 이런 학살을 일으킬 수 있는 불씨가 있다. 사고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 그리고 잠깐, 내가 나고 자란 남쪽의 도시를 생각했다.
너무 어마어마한 역사지만 영화나 소설 등으로 익히 봐 왔기 때문에 ‘그’ 장소에 가 봤다는 자체의 의의로 생각했는데 웬걸. 무덤처럼 쌓은 여행 가방, 수십만 점의 신발, 몇십 킬로그램의 안경, 수십 동의 수용실, 좁은 가스실, 학살이 숫자와 무게, 공간으로 다가오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특히 의수, 의족, 목발이 수북이 쌓인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숨이 막힐 거 같았는데 그건 아마도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피부로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아, 이 땅은 묘비 없는 공동묘지구나.

제1, 2 수용소를 모두 돌아보는 데에 3시간 반이 걸린다고 안내 책자에 쓰여 있었는데 그건 전시 내용 자체보다 이 수용소의 규모 자체가 욕이 나올 만큼 넓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려고 만든 거대한 수용시설. 오래 곱씹으며 보기엔 날도 마음도 서늘해 2시간 정도로 마무리했다. (이곳의 여행 계획을 세울 예정이시라면 이 ‘넓음’에 대해 꼭 참조해주시기를). 수용소에서 가장 늦은 시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크라쿠프로 돌아왔다. 간간이 떨어지던 빗방울이 멈췄고 이대로 바로 방에 들어가긴 싫어 호텔 로비 바에서 칵테일을 주문했다. 여러 영혼을 얹고 왔나. 함께 마시는 사람이 많은 기분이다. 이대로 영원히 취하지 않을 것만 같다.
프라하에서 브로츠와프로 건너온 다음 폴란드 여행을 시작한다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올리고 얼마 있지 않아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았다. 본인의 나라인 폴란드에 여행을 와서 반갑다며, 이런 저런 정보를 전해주는 메시지였다. 그중 크라쿠프를 간다면 이곳이 최고의 빵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니 가보라고 알려 준 곳이 있었다.

Zaczyn
비스와 강가에 있는 카페 겸 빵집 Zaczyn엔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아주 북적이고 있었다. 전부 다 맛있을 것 같은 메뉴 중 맡김 차림 스타일의 클래식 플레이트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크라쿠프 최고의 빵집이라는 게 과언이 아닌가 싶게 빵과 치즈, 버터가 전부 맛있었는데 사이드 메뉴로 함께 나온 오이 무침이 말 그대로 우리의 오이소박이와 맛이 똑같아서 특히 더 맛있게 먹었다. 기념품 가게에 들러 조카에게 줄 선물과 나를 위한 마그넷 몇 개를 사고 오후 산책을 마쳤다.
많은 것들에 여행이란 핑계를 대고는 하지만 적당한 가격대로 즐기는 파인 다이닝의 긴 식사야말로 여행의 좋은 구실이다. 크라쿠프엔 도시 규모에 비해 비교적 많은 수의 미슐랭 식당이 있었고, 그중 5코스 메뉴에 와인 페어링까지 제공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에 무엇보다 호텔과 가까운 곳인 Filipa 18를 크라쿠프 마지막 저녁 식사 장소로 선택했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의 미슐랭 현판이 붙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잘 꾸민 가정집 다이닝 룸이 아닐까 싶은 작은 규모의 식당이 나타났다.
생선으로 고른 코스 요리에 맞춰 다양한 화이트 와인이 제공되었다. 일행과 함께인 다른 손님들과 달리 혼자인 나는 말 대신 휴대폰 메모장에 글을 써가며 식사를 했다. 지금 마시는 와인의 이름이나 맛에 대해, 강가 벤치에 앉아 있던 어느 노부부의 뒷모습에 대해, 크라쿠프의 인상에 대해. 그러다 어느 게시물에서 챗gpt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물으면 예상 밖 흥미로운 답을 들을 수 있다는 내용을 보았다. 바로 검색해 봤더니 “당신은 자기 성찰에 대한 갈망이 크고,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가진 복잡하면서도 솔직한 사람입니다“라는 대답이 나왔다. 알쏭달쏭 모호한 답을 곱씹다 보니 어느덧 디저트가 나올 차례였다.
1978년 크라쿠프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이나 '바다의 눈'이라는 뜻을 가진 모르스키에 오코 호수가 있는 자코피네는 크라쿠프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당일치기 관광지다. 그러나 나는 늘 그렇듯 그저 내내 올드타운을 중심으로 산책만 했다. 농담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진짜인, '한 해 써야하는 체력이 있다면 평소 한참을 아끼다 여행지에서 폭발적으로 쓰는’ 힘으로 내내 걸어서 여행했다.

누군가는 여행을 경험의 범주로 볼 수 있냐고 하지만 나는 여행을 하지 않았을 나를 상상할 수 없다. 내가 살아 온 삶의 방식, 그 방식을 결정한 사회적 함의와 합의 등이 이곳에선 당연한 기준이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여행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몰랐을 사람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내게 여행은 무한한 경험의 총체라고.
갑자기 기온이 20도 아래로 뚝 떨어진 아침. 챙겨온 옷 중 그나마 도톰한 옷으로 갈아입고 오전 산책을 마쳤다. 그리고 다시 중앙역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자못 익숙해진 폴란드식 지명 표기를 어렵지 않게 확인하고 플랫폼에 섰다. 브로츠와프도 크라쿠프도 상상했던 수준을 뛰어 넘는 도시였는데 과연 폴란드 제1의 도시는 어떠할까. 별 수 있나. 직접 가서 보는 수밖에.
글/사진 백지은

지역 방송국에서 일하며 덕질하는 게 유일한 취미인 3n살 덕후. 종종 여행하고, 가끔 글을 씁니다. 『보라하라,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을 쓰고, 『규슈단편』을 함께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antabile.j
『보라하라,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2159791
제이 in there #17
아우슈비츠
크라쿠프 버스 터미널에서 오시비엥침Oświęcim행 버스를 타면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아우슈비츠 뮤지엄) 바로 앞에 내려준다. 폴란드의 평범한 도시였던 오시비엥침은 독일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하며 이곳에 수용소를 세운 뒤 독일어식인 아우슈비츠Auschwitz로 바꿔 불렸다. 기록된 역사로만 이곳에서 학살된 인원이 110만 명이다. 무서운 건 불과 몇십 년 전에 일어난 아주 가까운 역사라는 것이다. 인간에겐 이런 학살을 일으킬 수 있는 불씨가 있다. 사고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 그리고 잠깐, 내가 나고 자란 남쪽의 도시를 생각했다.
너무 어마어마한 역사지만 영화나 소설 등으로 익히 봐 왔기 때문에 ‘그’ 장소에 가 봤다는 자체의 의의로 생각했는데 웬걸. 무덤처럼 쌓은 여행 가방, 수십만 점의 신발, 몇십 킬로그램의 안경, 수십 동의 수용실, 좁은 가스실, 학살이 숫자와 무게, 공간으로 다가오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특히 의수, 의족, 목발이 수북이 쌓인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숨이 막힐 거 같았는데 그건 아마도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피부로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아, 이 땅은 묘비 없는 공동묘지구나.
제1, 2 수용소를 모두 돌아보는 데에 3시간 반이 걸린다고 안내 책자에 쓰여 있었는데 그건 전시 내용 자체보다 이 수용소의 규모 자체가 욕이 나올 만큼 넓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려고 만든 거대한 수용시설. 오래 곱씹으며 보기엔 날도 마음도 서늘해 2시간 정도로 마무리했다. (이곳의 여행 계획을 세울 예정이시라면 이 ‘넓음’에 대해 꼭 참조해주시기를). 수용소에서 가장 늦은 시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크라쿠프로 돌아왔다. 간간이 떨어지던 빗방울이 멈췄고 이대로 바로 방에 들어가긴 싫어 호텔 로비 바에서 칵테일을 주문했다. 여러 영혼을 얹고 왔나. 함께 마시는 사람이 많은 기분이다. 이대로 영원히 취하지 않을 것만 같다.
프라하에서 브로츠와프로 건너온 다음 폴란드 여행을 시작한다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올리고 얼마 있지 않아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았다. 본인의 나라인 폴란드에 여행을 와서 반갑다며, 이런 저런 정보를 전해주는 메시지였다. 그중 크라쿠프를 간다면 이곳이 최고의 빵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니 가보라고 알려 준 곳이 있었다.
Zaczyn
비스와 강가에 있는 카페 겸 빵집 Zaczyn엔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아주 북적이고 있었다. 전부 다 맛있을 것 같은 메뉴 중 맡김 차림 스타일의 클래식 플레이트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크라쿠프 최고의 빵집이라는 게 과언이 아닌가 싶게 빵과 치즈, 버터가 전부 맛있었는데 사이드 메뉴로 함께 나온 오이 무침이 말 그대로 우리의 오이소박이와 맛이 똑같아서 특히 더 맛있게 먹었다. 기념품 가게에 들러 조카에게 줄 선물과 나를 위한 마그넷 몇 개를 사고 오후 산책을 마쳤다.
많은 것들에 여행이란 핑계를 대고는 하지만 적당한 가격대로 즐기는 파인 다이닝의 긴 식사야말로 여행의 좋은 구실이다. 크라쿠프엔 도시 규모에 비해 비교적 많은 수의 미슐랭 식당이 있었고, 그중 5코스 메뉴에 와인 페어링까지 제공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에 무엇보다 호텔과 가까운 곳인 Filipa 18를 크라쿠프 마지막 저녁 식사 장소로 선택했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의 미슐랭 현판이 붙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잘 꾸민 가정집 다이닝 룸이 아닐까 싶은 작은 규모의 식당이 나타났다.
생선으로 고른 코스 요리에 맞춰 다양한 화이트 와인이 제공되었다. 일행과 함께인 다른 손님들과 달리 혼자인 나는 말 대신 휴대폰 메모장에 글을 써가며 식사를 했다. 지금 마시는 와인의 이름이나 맛에 대해, 강가 벤치에 앉아 있던 어느 노부부의 뒷모습에 대해, 크라쿠프의 인상에 대해. 그러다 어느 게시물에서 챗gpt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물으면 예상 밖 흥미로운 답을 들을 수 있다는 내용을 보았다. 바로 검색해 봤더니 “당신은 자기 성찰에 대한 갈망이 크고,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가진 복잡하면서도 솔직한 사람입니다“라는 대답이 나왔다. 알쏭달쏭 모호한 답을 곱씹다 보니 어느덧 디저트가 나올 차례였다.
1978년 크라쿠프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이나 '바다의 눈'이라는 뜻을 가진 모르스키에 오코 호수가 있는 자코피네는 크라쿠프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당일치기 관광지다. 그러나 나는 늘 그렇듯 그저 내내 올드타운을 중심으로 산책만 했다. 농담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진짜인, '한 해 써야하는 체력이 있다면 평소 한참을 아끼다 여행지에서 폭발적으로 쓰는’ 힘으로 내내 걸어서 여행했다.
누군가는 여행을 경험의 범주로 볼 수 있냐고 하지만 나는 여행을 하지 않았을 나를 상상할 수 없다. 내가 살아 온 삶의 방식, 그 방식을 결정한 사회적 함의와 합의 등이 이곳에선 당연한 기준이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여행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몰랐을 사람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내게 여행은 무한한 경험의 총체라고.
갑자기 기온이 20도 아래로 뚝 떨어진 아침. 챙겨온 옷 중 그나마 도톰한 옷으로 갈아입고 오전 산책을 마쳤다. 그리고 다시 중앙역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자못 익숙해진 폴란드식 지명 표기를 어렵지 않게 확인하고 플랫폼에 섰다. 브로츠와프도 크라쿠프도 상상했던 수준을 뛰어 넘는 도시였는데 과연 폴란드 제1의 도시는 어떠할까. 별 수 있나. 직접 가서 보는 수밖에.
글/사진 백지은
지역 방송국에서 일하며 덕질하는 게 유일한 취미인 3n살 덕후. 종종 여행하고, 가끔 글을 씁니다. 『보라하라,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을 쓰고, 『규슈단편』을 함께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antabile.j
『보라하라,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2159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