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in there #18

여행 중에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올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란을 통해 ‘왜 폴란드를 여행지로 선택했냐’는 질문이 여럿 들어왔다. 계기가 명확하니 빠르게 답을 남겼다. “구독하여 볼 정도로 좋아하는 K팝 커버 댄스 팀이 영상을 찍는 예쁜 배경이 바르샤바란 것을 알고 나서요.” 폴란드가 치안이 좋고 여행하기 좋은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언젠가 한 번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가 봐야지 하던 다짐까지 떠오르자 그렇다면 당연히 폴란드여야 했다.
네이버에 바르샤바를 검색하면 단 한 문장으로 이 도시를 설명하고 있다. 쇼팽의 음악이 흐르는 도시. 바르샤바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기차 안내 음악으로 쇼팽의 녹턴이 흐르는 곳. 드디어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바르샤바 중앙역을 나오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영향권이었던 폴란드에 스탈린이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세운 건물인 문화과학궁전이 바로 보였다. 날이 잔뜩 흐렸고, 몸이 움츠러들게 찬바람이 부는 탓인지 바르샤바의 첫인상은 꼭 모스크바 같았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모스크바임에도 그랬다.

문화과학 궁전
짐을 호텔에 두고 나오자마자 쇼팽 박물관으로 향했다. 응당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거대한 쇼팽 벽화가 그려져 있는 쇼팽 연구소와 바르샤바 음악원을 지나 쇼팽 박물관이 있었다. 지도 표시론 바로 건너편에 있다고 했는데. 다 와서 조금 헤맸다. 박물관이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는 건물이 아닌, 조금 큰 정도의 저택 한 동이었기 때문이다. 쇼팽 박물관이라는 이름도 아주 작게 쓰여 있어 이곳이 쇼팽 박물관이라는 걸 미리 알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칠 곳이었다. 박물관 자체에 내성적이고 섬세했다는 쇼팽의 성정이 담겨있는 듯했다.

쇼팽 박물관
자필 악보, 소유했던 피아노, 여행 가방, 편지 등의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는 일부 공간을 제외하곤 대부분 쇼팽 음악을 직접 듣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한국어 지원이 가능한 모니터를 활용해 몇 곡을 연달아 들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영웅 폴로레즈>는 지금도 자주 찾아들을 정도로 좋아하는데, 폴로네즈Polonaise가 ‘폴란드의, 폴란드풍의’란 뜻으로 폴란드 전통 무곡을 가리키며 폴란드의 민족적 정체성을 담은 것이라는 걸 이곳 설명을 통해 알게 됐다. 기념품숍엔 조성진과 관련된 상품이 여럿 있었고 그걸 즐겁게 들여다보는 한국인 관광객이 있었다. 바르샤바에 오니 한국어가 들리는구나. 뭔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쇼팽의 심장
스무 살에 파리로 건너간 쇼팽은 이후 프랑스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고국인 폴란드로 한 번도 돌아가 보지 못했다. 쇼팽은 자신의 심장을 고국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쇼팽의 누나는 장례 후 쇼팽의 심장을 챙겨 바르샤바로 돌아왔다. 쇼팽의 유해는 파리의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묻혔지만, 쇼팽의 심장은 바르샤바 성 십자가 교회 기둥 속에 봉인되었다. 성 십자가 교회에 들어섰더니 미사가 진행 중이라 쇼팽의 흉상과 함께 심장이 묻혀 있음을 알리는 조각만 멀리서 보고 나왔다. 교회 건너편에 놓인 등받이 없는 벤치 중 하나는 쇼팽의 곡을 들을 수 있는 벤치였다. 바르샤바에는 쇼팽과 직접 관련이 있는 장소에 총 15개의 쇼팽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아쉽게도 꽤 굵은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해 벤치에 앉아보진 못했다.

글/사진 백지은

지역 방송국에서 일하며 덕질하는 게 유일한 취미인 3n살 덕후. 종종 여행하고, 가끔 글을 씁니다. 『보라하라,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을 쓰고, 『규슈단편』을 함께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antabile.j
『보라하라,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2159791
제이 in there #18
여행 중에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올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란을 통해 ‘왜 폴란드를 여행지로 선택했냐’는 질문이 여럿 들어왔다. 계기가 명확하니 빠르게 답을 남겼다. “구독하여 볼 정도로 좋아하는 K팝 커버 댄스 팀이 영상을 찍는 예쁜 배경이 바르샤바란 것을 알고 나서요.” 폴란드가 치안이 좋고 여행하기 좋은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언젠가 한 번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가 봐야지 하던 다짐까지 떠오르자 그렇다면 당연히 폴란드여야 했다.
네이버에 바르샤바를 검색하면 단 한 문장으로 이 도시를 설명하고 있다. 쇼팽의 음악이 흐르는 도시. 바르샤바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기차 안내 음악으로 쇼팽의 녹턴이 흐르는 곳. 드디어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바르샤바 중앙역을 나오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영향권이었던 폴란드에 스탈린이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세운 건물인 문화과학궁전이 바로 보였다. 날이 잔뜩 흐렸고, 몸이 움츠러들게 찬바람이 부는 탓인지 바르샤바의 첫인상은 꼭 모스크바 같았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모스크바임에도 그랬다.
문화과학 궁전
짐을 호텔에 두고 나오자마자 쇼팽 박물관으로 향했다. 응당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거대한 쇼팽 벽화가 그려져 있는 쇼팽 연구소와 바르샤바 음악원을 지나 쇼팽 박물관이 있었다. 지도 표시론 바로 건너편에 있다고 했는데. 다 와서 조금 헤맸다. 박물관이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는 건물이 아닌, 조금 큰 정도의 저택 한 동이었기 때문이다. 쇼팽 박물관이라는 이름도 아주 작게 쓰여 있어 이곳이 쇼팽 박물관이라는 걸 미리 알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칠 곳이었다. 박물관 자체에 내성적이고 섬세했다는 쇼팽의 성정이 담겨있는 듯했다.
쇼팽 박물관
자필 악보, 소유했던 피아노, 여행 가방, 편지 등의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는 일부 공간을 제외하곤 대부분 쇼팽 음악을 직접 듣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한국어 지원이 가능한 모니터를 활용해 몇 곡을 연달아 들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영웅 폴로레즈>는 지금도 자주 찾아들을 정도로 좋아하는데, 폴로네즈Polonaise가 ‘폴란드의, 폴란드풍의’란 뜻으로 폴란드 전통 무곡을 가리키며 폴란드의 민족적 정체성을 담은 것이라는 걸 이곳 설명을 통해 알게 됐다. 기념품숍엔 조성진과 관련된 상품이 여럿 있었고 그걸 즐겁게 들여다보는 한국인 관광객이 있었다. 바르샤바에 오니 한국어가 들리는구나. 뭔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쇼팽의 심장
스무 살에 파리로 건너간 쇼팽은 이후 프랑스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고국인 폴란드로 한 번도 돌아가 보지 못했다. 쇼팽은 자신의 심장을 고국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쇼팽의 누나는 장례 후 쇼팽의 심장을 챙겨 바르샤바로 돌아왔다. 쇼팽의 유해는 파리의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묻혔지만, 쇼팽의 심장은 바르샤바 성 십자가 교회 기둥 속에 봉인되었다. 성 십자가 교회에 들어섰더니 미사가 진행 중이라 쇼팽의 흉상과 함께 심장이 묻혀 있음을 알리는 조각만 멀리서 보고 나왔다. 교회 건너편에 놓인 등받이 없는 벤치 중 하나는 쇼팽의 곡을 들을 수 있는 벤치였다. 바르샤바에는 쇼팽과 직접 관련이 있는 장소에 총 15개의 쇼팽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아쉽게도 꽤 굵은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해 벤치에 앉아보진 못했다.
글/사진 백지은
지역 방송국에서 일하며 덕질하는 게 유일한 취미인 3n살 덕후. 종종 여행하고, 가끔 글을 씁니다. 『보라하라,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을 쓰고, 『규슈단편』을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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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하라,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2159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