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애호가, 티셔츠 수집가, 『음악을 입다』의 백영훈 작가가 들려주는 티셔츠와 랜덤 플레이 리스트. 무작위, 우연, 계획되지 않은 흐름에서 발생하는 사건, 랜덤은 그래서 예상치 못한 선물이 되기도 합니다. 오래전 LP와 카세트테이프에서, 아이팟에서, 콘서트에서 듣던 팝과 록과 재즈를 태연하게 오늘의 일상에 랜덤으로 가져다 놓습니다. 인생의 헤아릴 수 없는 고민, 반복된 잡념을 오늘의 티셔츠와 플레이리스트로 잊어 보시기를. 적당한 스타일은 덤입니다. |
미셸 자우너(Michelle Zauner)와 피터 브래들리(Peter Bradley)의 김밥레코즈 공연 영상이 오늘의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떴다. 미셸은 미국의 인디 팝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의 프론트맨이자 보컬리스트고, 피터는 기타리스트다. 그리고 이 둘은 부부이기도 하다. 이 공연은 2024년 4월 20일, 홍대 김밥레코즈 매장의 작은 공간에서 30분가량 진행됐고, 뒤이어 사인회가 이어졌다. 이들은 새 앨범 <For Melancholy Brunettes (& Sad Women)>의 수록곡 <Magic Mountain>을 첫 곡으로 불렀다. 공연의 마지막 곡을 들려주기 전, 미셸이 한 해 동안 국내에 거주하며 열심히 공부했을 한국말로 말한다.
“피터랑 드라마 <나의 아저씨> 같이 봤어요. 이 노래 너무 재밌어서 특별한 노래로 커버송 준비했어요.”
노래는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 둘의 어쿠스틱 기타 반주가 구성지게 흘렀다.

이 작은 공연이 있었던 날짜를 기억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꼭 가보고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에 있었던 김사월의 공연을 보느라 아쉽게 놓쳤다. 두 번째는, 티셔츠 때문이다. 김밥레코즈는 이 작은 공연을 기념하기 위해 티셔츠를 한정 제작해 온라인으로도 판매했다. 공연을 놓친 나는 일종의 대체제로 삼자고 ‘광클’ 후 득템에 성공했다. 셔츠에는 레코드숍의 마스코트인 고양이 ‘김밥이’가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앨범 <주빌리(Jubilee)> 커버 디자인의 오브제인 홍시를 머리 위에 얹은 일러스트와 공연 날짜가 프린트돼 있었다. ‘2024.04.20. SAT’. 미셸의 솜씨라고 했다.
나는 미셸 자우너의 책 『H마트에서 울다』(2021)를 읽고 나서야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음악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다. 사실 밴드 이름 때문에, 당시 인디 씬에서 인기를 끌던 미츠키(Mitski)와 같은 또 다른 일본계 미국인 뮤지션일 거라 쉽게 단정하고 흘려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책을 읽고 나니, 음악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르게 사별해야만 했던 한국인 모친에 대한 끝나지 않은 그리움과 애수를 써 내려간 그녀의 필치는 독특했다. 어떠한 상투적인 표현이나 레퍼런스의 흔적 없이, 온전히 그녀만의 탄탄한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그것이 남기는 잔상이 오래 남았다.

책이 나온 해, 앨범 <주빌리>가 발표됐다. 미셸이 밝힌 것처럼, 슬픔에서 벗어나 앨범명 그대로 즐거움을 그리는 노래들이 담겨 있다. 2021년 팬데믹의 나날, 내게 가장 큰 ‘듣는 기쁨’을 안겨준 앨범이기도 했다. 새삼 다시 들어도, 수록된 열 곡 모두 빼어난 팝송이다. 미셸의 멜로디 감각과 이를 브라스와 현악 어레인지로 맛깔나게 버무린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이 앨범은 큰 성공을 거뒀고, 이들의 장르 앞에 붙던 ‘인디’라는 수식어를 떼어낼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미국의 주요 심야 토크쇼 무대와 피치포크(Pitchfork), 코첼라(Coachella) 같은 대형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고, 올해는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 페스티벌에서도 연주했다.
요즘은 <주빌리> 수록곡 가운데 <Kokomo, IN>이 유독 귀에 감긴다. 제목만 보면 ‘아, 코코모! 비치 보이스 히트곡의 리메이크인가?’ 싶지만, 전혀 다른 곡이다. 제목에 붙은 바와 같이 미국 인디애나 주의 도시 이름이다. 인구 6만 명 남짓의 평범한 소도시. 노랫말에는 이곳의 정경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묘사도 담겨 있지 않다. 널리 알려진 장소의 보편성보다는, 미셸 개인의 기억이 닿아 있는 개별성이 느껴진다. 그 이름에 실린 푸근한 음가(音價). 코코모, 인디애나.
“언젠가 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면, 비록 네 발걸음이 어디에 닿아 있든, 그 순간이 잠시뿐이라 해도 기억해줘. 나는 여기에 남아, 너를 향한 그리움 속에 있을 거라는 걸.”
최근 한 유튜브 인터뷰에서 미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결국 살아보지 못할 삶들에 대해 애도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마치 기차를 타고 가다가, 창밖으로 아주 평화로운 시골 마을을 스쳐 지나가는 것과 비슷해요. 그곳이 정말 아름답다는 걸 알지만, 나는 그 마을에 결코 내려서 가보지 못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거죠. 그렇다고 그게 완전히 절망적이거나 파괴적인 감정은 아니에요.”
그녀의 음악 감성과 화두인 ‘멜랑콜리(melancholy)’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이런 감정은 어째서인지 익숙하다. 가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아련함. 슬픔의 긴 굴곡에서 벗어나 다다른 마음. 애써 미소 지으며 바라보는 추억의 정경. 예의 하드보일드한 필치로 벼려온 작가 김훈의 문장이 떠올라, 책장을 펼쳐본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 <바다의 기별> (2008, 생각의 나무) 중
김훈의 문장을 덮고 나서, 이 곡을 좋아했던 이의 또 다른 이름이 떠오른다. 윌코(Wilco)의 프론트맨 제프 트위디다. 그가 어쿠스틱 기타로 <Kokomo, IN>을 흥얼거리며 연주한 쇼츠 영상 또한 볼만하다. 미셸 또한 자신의 공연에서 종종 윌코의 곡 <Jesus, etc.>를 커버하고, 결국 제프 트위디를 무대에 초청해 함께 연주했다. 애수에 대한 감수성이 닮은 음악가들이 만났다. 나는 김훈의 글을 다시 펼쳐본다. 혼자 이들의 교차점을 그어보는 나와 같은 청자는, 조용히 귀를 기울일 뿐이다.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아련함의 암묵지. 그것이 주는 힘은, 세다.
글/사진 백영훈

1990년대의 팝과 록에 어지러이 매혹당하며, 장래 희망으로 FM 라디오 DJ를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어렸을 적 바람과는 달리 글로벌 IT기업에서 25년 이상 일을 해오고 있다. 전업의 시간 이편에서는 팝을 비롯한 대중문화 딜레탕트로서의 삶을 즐기며, 여전히 팝 키드로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음악을 입다』가 있다.
· 도서 정보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35274
미셸 자우너(Michelle Zauner)와 피터 브래들리(Peter Bradley)의 김밥레코즈 공연 영상이 오늘의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떴다. 미셸은 미국의 인디 팝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의 프론트맨이자 보컬리스트고, 피터는 기타리스트다. 그리고 이 둘은 부부이기도 하다. 이 공연은 2024년 4월 20일, 홍대 김밥레코즈 매장의 작은 공간에서 30분가량 진행됐고, 뒤이어 사인회가 이어졌다. 이들은 새 앨범 <For Melancholy Brunettes (& Sad Women)>의 수록곡 <Magic Mountain>을 첫 곡으로 불렀다. 공연의 마지막 곡을 들려주기 전, 미셸이 한 해 동안 국내에 거주하며 열심히 공부했을 한국말로 말한다.
“피터랑 드라마 <나의 아저씨> 같이 봤어요. 이 노래 너무 재밌어서 특별한 노래로 커버송 준비했어요.”
노래는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 둘의 어쿠스틱 기타 반주가 구성지게 흘렀다.
이 작은 공연이 있었던 날짜를 기억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꼭 가보고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에 있었던 김사월의 공연을 보느라 아쉽게 놓쳤다. 두 번째는, 티셔츠 때문이다. 김밥레코즈는 이 작은 공연을 기념하기 위해 티셔츠를 한정 제작해 온라인으로도 판매했다. 공연을 놓친 나는 일종의 대체제로 삼자고 ‘광클’ 후 득템에 성공했다. 셔츠에는 레코드숍의 마스코트인 고양이 ‘김밥이’가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앨범 <주빌리(Jubilee)> 커버 디자인의 오브제인 홍시를 머리 위에 얹은 일러스트와 공연 날짜가 프린트돼 있었다. ‘2024.04.20. SAT’. 미셸의 솜씨라고 했다.
나는 미셸 자우너의 책 『H마트에서 울다』(2021)를 읽고 나서야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음악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다. 사실 밴드 이름 때문에, 당시 인디 씬에서 인기를 끌던 미츠키(Mitski)와 같은 또 다른 일본계 미국인 뮤지션일 거라 쉽게 단정하고 흘려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책을 읽고 나니, 음악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르게 사별해야만 했던 한국인 모친에 대한 끝나지 않은 그리움과 애수를 써 내려간 그녀의 필치는 독특했다. 어떠한 상투적인 표현이나 레퍼런스의 흔적 없이, 온전히 그녀만의 탄탄한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그것이 남기는 잔상이 오래 남았다.
책이 나온 해, 앨범 <주빌리>가 발표됐다. 미셸이 밝힌 것처럼, 슬픔에서 벗어나 앨범명 그대로 즐거움을 그리는 노래들이 담겨 있다. 2021년 팬데믹의 나날, 내게 가장 큰 ‘듣는 기쁨’을 안겨준 앨범이기도 했다. 새삼 다시 들어도, 수록된 열 곡 모두 빼어난 팝송이다. 미셸의 멜로디 감각과 이를 브라스와 현악 어레인지로 맛깔나게 버무린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이 앨범은 큰 성공을 거뒀고, 이들의 장르 앞에 붙던 ‘인디’라는 수식어를 떼어낼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미국의 주요 심야 토크쇼 무대와 피치포크(Pitchfork), 코첼라(Coachella) 같은 대형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고, 올해는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 페스티벌에서도 연주했다.
요즘은 <주빌리> 수록곡 가운데 <Kokomo, IN>이 유독 귀에 감긴다. 제목만 보면 ‘아, 코코모! 비치 보이스 히트곡의 리메이크인가?’ 싶지만, 전혀 다른 곡이다. 제목에 붙은 바와 같이 미국 인디애나 주의 도시 이름이다. 인구 6만 명 남짓의 평범한 소도시. 노랫말에는 이곳의 정경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묘사도 담겨 있지 않다. 널리 알려진 장소의 보편성보다는, 미셸 개인의 기억이 닿아 있는 개별성이 느껴진다. 그 이름에 실린 푸근한 음가(音價). 코코모, 인디애나.
“언젠가 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면, 비록 네 발걸음이 어디에 닿아 있든, 그 순간이 잠시뿐이라 해도 기억해줘. 나는 여기에 남아, 너를 향한 그리움 속에 있을 거라는 걸.”
최근 한 유튜브 인터뷰에서 미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결국 살아보지 못할 삶들에 대해 애도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마치 기차를 타고 가다가, 창밖으로 아주 평화로운 시골 마을을 스쳐 지나가는 것과 비슷해요. 그곳이 정말 아름답다는 걸 알지만, 나는 그 마을에 결코 내려서 가보지 못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거죠. 그렇다고 그게 완전히 절망적이거나 파괴적인 감정은 아니에요.”
그녀의 음악 감성과 화두인 ‘멜랑콜리(melancholy)’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이런 감정은 어째서인지 익숙하다. 가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아련함. 슬픔의 긴 굴곡에서 벗어나 다다른 마음. 애써 미소 지으며 바라보는 추억의 정경. 예의 하드보일드한 필치로 벼려온 작가 김훈의 문장이 떠올라, 책장을 펼쳐본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 <바다의 기별> (2008, 생각의 나무) 중
김훈의 문장을 덮고 나서, 이 곡을 좋아했던 이의 또 다른 이름이 떠오른다. 윌코(Wilco)의 프론트맨 제프 트위디다. 그가 어쿠스틱 기타로 <Kokomo, IN>을 흥얼거리며 연주한 쇼츠 영상 또한 볼만하다. 미셸 또한 자신의 공연에서 종종 윌코의 곡 <Jesus, etc.>를 커버하고, 결국 제프 트위디를 무대에 초청해 함께 연주했다. 애수에 대한 감수성이 닮은 음악가들이 만났다. 나는 김훈의 글을 다시 펼쳐본다. 혼자 이들의 교차점을 그어보는 나와 같은 청자는, 조용히 귀를 기울일 뿐이다.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아련함의 암묵지. 그것이 주는 힘은, 세다.
글/사진 백영훈
1990년대의 팝과 록에 어지러이 매혹당하며, 장래 희망으로 FM 라디오 DJ를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어렸을 적 바람과는 달리 글로벌 IT기업에서 25년 이상 일을 해오고 있다. 전업의 시간 이편에서는 팝을 비롯한 대중문화 딜레탕트로서의 삶을 즐기며, 여전히 팝 키드로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음악을 입다』가 있다.
· 도서 정보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35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