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음악을 입다][음악] 훵크 록이 전하는 곡성, 펑카델릭의 <Maggot Brain>

2026-01-16


음악 애호가, 티셔츠 수집가, 『음악을 입다』의 백영훈 작가가 들려주는 티셔츠와 랜덤 플레이 리스트.
무작위, 우연, 계획되지 않은 흐름에서 발생하는 사건, 랜덤은 그래서 예상치 못한 선물이 되기도 합니다.
오래전 LP와 카세트테이프에서, 아이팟에서, 콘서트에서 듣던 팝과 록과 재즈를
태연하게 오늘의 일상에 랜덤으로 가져다 놓습니다.
인생의 헤아릴 수 없는 고민, 반복된 잡념을 오늘의 티셔츠와 플레이리스트로 잊어 보시기를.
적당한 스타일은 덤입니다.


한밤의 유튜브는 건강한 수면의 적이다. 어젯밤의 적은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베이시스트 플리(Flea)였다. 노랑머리로 염색한 그가 오렌지색 점프수트 차림으로 낮은 산의 능선 위에 서 있다. 익숙한 MR 사운드가 장엄하게 깔리자, 그는 기타 제조사 펜더(Fender)가 자신의 이름을 붙여 제작한 시그니처 베이스를 주물러댄다. 그리스인 조르바에게 베이스를 쥐여줬다면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마디로, ‘플리가 플리했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팬이라면 이 표현만으로도 그의 모습을 쉽게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2분 44초짜리 영상. ‘요거 하나만 보고 자자’고 했지만, 제시간 취침은 물 건너갔다. 곧장 침대에서 내려와 헤드폰을 쓰고, 산 위의 노랑머리—록의 조르바가 연주한 그 원곡을 새삼 찾아 듣는다. 펑카델릭(Funkadelic)의 ‘마고 브레인(Maggot Brain)’. 펑크 록(funk rock)의 전설적인 걸작이자, 기타 솔로 연주로 듣는 이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기로 정평이 난 10분이 넘는 대곡이다.


“어머니가 막 세상을 떠났다고 상상하며 연주해줘. 그날을 머릿속에 그려봐. 그 순간 느껴질 감정이 어떨지, 앞으로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그 상황 속에서 네 안에 담긴 모든 것을 느끼고 헤아리면서 연주해 보자.”



<마고 브레인>의 녹음을 앞두고, 펑카델릭의 리더이자 펑크 음악의 레전드 프로듀서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이 LSD에 취한 상태로 그룹의 기타리스트 에디 헤이즐(Eddie Hazel)에게 건넸다고 전해지는 주문이다. 이미 잘 알려진 일화지만, 결과는 명확했다. 에디의 감정 이입은 성공했고, 녹음은 단 한 번의 테이크로 끝났다. 그의 연주는 단순한 감정 이입의 단계를 훌쩍 넘는다. 조지가 주문했던 슬픔의 모든 것을 헤아리며, 마치 작두를 타듯 위험한 균형 위에서 질주한다. 기타는 끓어오르며 분열하듯 들린다. 비브라토는 안정되지 않은 채 흔들리고 떤다. 펑크 록이 전형적으로 들려주는 그루브나 쾌감은 없다. 대신 깊고 낮은 울부짖음만이 남는다. 이는 곡성(哭聲)에 가깝다.


음악이 시작되면 잠깐의 총성 효과음과 함께 다음과 같은 나레이션이 흘러나온다.


“대지의 어머니는 세 번째로 임신했다 / 너희가 그렇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 나는 우주의 정신 속에 있는 구더기들을 맛보았다 / 그러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 그 모든 것 위로 올라서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내 자신의 오물 속에 빠져 익사하고 말 테니까.”


조지 클린턴은 훗날 자신의 회고록 『Brothas Be, Yo Like George…』에서 ‘마고 브레인’을 통해 “미국이 과연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가, 1960년대 후반의 약속은 사라졌는가와 같은 질문을 흑인 음악 그룹이 잘 가지 않던 방식으로 던졌다”고 밝혔다. 암울함과 두려움이 깔려 있던 시대에, 전형적인 방식의 답습으로는 음악을 만들 수 없었던 아티스트의 고민이었을 것이다. “대지의 어머니가 세 번째로 임신”한 이 세계에서 “구더기를 맛보”거나 “오물 속에 빠져 익사”하지 않기 위해, 차라리 내가 직접 ‘구더기 뇌(maggot brain)’가 되어 맞서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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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브레인’을 처음 접한 곳은 런던의 어느 레코드숍이었다. 아니, 레코드숍들이라고 해야겠다. 소호와 캠든 마켓, 브릭 레인—레코드와 CD 보물찾기 장마당이 즐비한 그 지역의 숍들. 그 매장들의 눈에 잘 띄는, 이른바 ‘에센셜(Essentials)’ 매대에는 예외 없이 펑카델릭의 <Maggot Brain>이 걸려 있었다. ‘음악 좀 듣는 손님들이라면 당연히 갖고 있겠지요. 처음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이걸로 가세요.’라는 말 없는 추천처럼. 무엇보다 내겐 ‘마고 브레인’이라는 앨범명이 유난히 세게 다가왔다. ‘앨범 제목이 구더기 뇌라고?’ 게다가 커버에는 검은 땅에 파묻힌 채 비명을 지르는 듯한 아프로 헤어의 흑인 여성 얼굴이 정면으로 등장한다. 뒷면에서는 같은 구도 속 얼굴이 백골로 바뀐다. 친절하게 다가오는 종류의 음반은 아니었다. 친절하지 않기에 호기심이 생겼고, 결국 앨범을 샀다. 


조지 클린턴이라는 이름은 펑카델릭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팔라먼트(Parliament)에까지 닿게 했다. 두왑과 소울에서 출발해 사이키델릭 록과 펑크를 결합한 이들의 음악 세계는, 단순한 장르 구분을 넘어 열린 상상력을 보여준다. 팔라먼트가 유쾌하고 현란한 펑크의 외연을 확장했다면, 펑카델릭은 그 방향을 더 어둡고 내면적인 쪽으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가 바로 앨범 <마고 브레인> 같은 작품이었다.


플리가 짧은 연주로 보여준 해석도 그렇고, 서울전자음악단이 유튜브에 올린 버전을 두루 듣다 보니, <마고 브레인>은 어쩌면 재즈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의 기본 라인과 정조 위에서, 뮤지션들의 자유로운 해석이 닮은 듯 닮지 않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플리는 앞서 말한 것처럼 조르바 같은 자유인의 애드리브로 이 곡을 풀어낸다. 반면 서울전자음악단은 신윤철 특유의 퍼즈(fuzz) 톤으로 에디 헤이즐과는 다른, 보다 명징한 사이키델릭 기타 솔로를 들려준다. 동시에 베이스와 드럼의 합은 한층 정돈된 인상을 준다. 공교롭게도, 이 둘 모두 지미 헨드릭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지난 봄, 도쿄의 한 디스크 유니언 매장에서 펑카델릭의 열 번째 스튜디오 앨범 <One Nation Under a Groove> 디자인이 들어간 티셔츠를 장만했다. 강렬한 <마고 브레인> 앨범의 커버 아트가 프린트된 티셔츠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 내린 선택이다. 차마 “우주의 정신 속에 있는 구더기들을 맛볼” 배포는 아직 부족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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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백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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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의 팝과 록에 어지러이 매혹당하며, 장래 희망으로 FM 라디오 DJ를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어렸을 적 바람과는 달리 글로벌 IT기업에서 25년 이상 일을 해오고 있다. 전업의 시간 이편에서는 팝을 비롯한 대중문화 딜레탕트로서의 삶을 즐기며, 여전히 팝 키드로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음악을 입다』가 있다.
· 도서 정보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35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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