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음악을 입다][음악] 12월 3일 그 밤, 센 강을 건너며, 다이애나 크롤 <Devil May Care>
2026-02-10
음악 애호가, 티셔츠 수집가, 『음악을 입다』의 백영훈 작가가 들려주는 티셔츠와 랜덤 플레이 리스트. 무작위, 우연, 계획되지 않은 흐름에서 발생하는 사건, 랜덤은 그래서 예상치 못한 선물이 되기도 합니다. 오래전 LP와 카세트테이프에서, 아이팟에서, 콘서트에서 듣던 팝과 록과 재즈를 태연하게 오늘의 일상에 랜덤으로 가져다 놓습니다. 인생의 헤아릴 수 없는 고민, 반복된 잡념을 오늘의 티셔츠와 플레이리스트로 잊어 보시기를. 적당한 스타일은 덤입니다.
2024년 12월 3일 저녁, 파리 오페라 구역의 백화점에서 윈도우 쇼핑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틀 후 귀국이라 친지들에게 건넬 파리의 기념품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휴대폰의 진동 알람이 울렸다. 화면에 포털 뉴스의 긴급 헤드라인이 떴다. “비상계엄 선포.” 곧이어 가족과 친지들의 카톡이 이어졌고, 머릿속 회로는 과부하가 걸려 하얗게 방전되어 버렸다. 다리가 풀렸고 욕지기가 솟았다. 식당가로 자리를 옮겨 두 시간 넘게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보며 하염없이 뉴스 새로 고침을 반복했다.
파리로 오기 전날 밤, 런던에서 우버를 탔을 때였다. 어쩌다 드라이버와 서로의 나라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한국의 사정에 대해 꽤 잘 알고 있었다. 궁금해하는 그에게 최근의 분위기를 전했다.
“요즘 우리 정치 상황이 꽤 아슬아슬해. 특검과 탄핵 주장 때문에, 심지어 계엄 가능성도 나오고 있어.”
스몰 토크였지만, 돌이켜보면 그 다음 날 벌어질 엄청난 사태에 대해 우연히 복선을 깔았던 셈이었다.
“국회에 사람들이 많이 갔대. 곧 해제되겠지. 우리는 왜 하필 이럴 때 파리에 왔을까?”
아내와 나는 애써 사필귀정의 희망을 말하고, 얄궂게 된 여행 시기를 두고 푸념했다. 오페라 지역에서 출발해 퐁데자르(Pont des Arts) 다리를 건너 파리 좌안(Rive Gauche)에 있는 숙소까지 걸어갔다. 길 초입에서 공연장 올랭피아(L’Olympia)를 지나쳤다. 불안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조명이 켜진 올랭피아의 붉은 간판은 그 밤에 유난히 더 빛났다.
숙소로 돌아온 뒤 CNN 뉴스와 휴대폰을 번갈아 지켜보며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녘, 국회 앞에 운집한 시민들을 배경으로 계엄령 해제 의결 소식을 전하는 특파원의 리포트를 보고나서야 잠이 들었다. 외신들에겐 군인들이 동원된 저 무시무시한 ‘마셜 로(martial law)’가 여섯 시간 만에 종료된 일이 일종의 해프닝처럼 보이는 듯했다.
날이 밝은 후, CNN에서 국회 앞 시민들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다. 급발진한 비정상에 더 빠르게 반응했던 상식과 정상의 집념들. 숙고의 주저함 따위란. 정상화까지 비록 갈 길이 어렵고 먼 시간이 앞에 놓였다는 건 자명했지만, 우리 내외는 다시 오페라로 향했다. 못다 한 쇼핑을 마무리했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나서 평판 좋은 디저트집에 들러 에클레어와 크레페, 핫 초콜릿를 먹었다. 짧았던 위안과 자축 뒤, 걱정은 다시 찾아왔다. 국회 앞으로 달려간 이들과, 불안했을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얹어졌다.
‘그래도 좋은 생각만 하자.’ 오페라에서 카푸신 거리(Boulevard des Capucines)쪽으로 걸었다. 올랭피아 앞에 도착했다. 여기서 딱 23년 전 다이애나 크롤이 공연을 했다. 아내에게 발길의 맥락을 설명했다. “그때 레코딩한 실황 앨범이 내 최애 앨범 중 하나야. 여기를 꼭 직접 와보고 싶었어.” 올랭피아를 떠나며 아내와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누어 끼고, 다이애나 크롤의 파리 실황 앨범을 들었다. 첫 곡 <I Love Here Being With You>가 끝날 때쯤 마들렌 성당을 끼고 콩코드 광장으로 향했다. 다시 폰데자르 다리 위로 세느강을 건널 때는 <Devil May Care>가 흘러 나왔다.
나는 다이애나 크롤의 이 공연을 영상으로 처음 접했다. 지금은 사라진, 건대 앞의 작은 레코드 가게였다. 종종 들르던 곳이었는데, 주인장은 막 발매된 이 공연 실황 DVD를 틀어놓고 연신 ‘크~’하며 감탄하고 있었다. 매장의 커다란 TV화면엔 다이애나 크롤이 예의 냉랭함과 진중함이 함께 깃든 모습으로 피아노 리더 연주에 들어간 모습이 클로즈업 됐다. 곧 이어 그녀 바로 뒤에서, 배우 존 굿맨을 닮은 드러머 제프 해밀턴(Jeff Hamilton)이 브러쉬를 쥐고 곡의 절정부인 드럼 솔로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주인장의 탄식이 또 터졌다. “캬~!” 그의 즉물적 반응을 눈살 찌푸리며 바라보는 나의 입 또한 벌어져 있었다. “아~!” 재즈 문외한에게도 바로 치고 들어오는 멋진 스윙이었다.
이 곡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나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사전적으로만 보면, ‘악마 정도만 신경 쓸 것.’ 이 관용구는 ‘되는 대로 되라’, 혹은 ‘아무 상관없다’ 식의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그날 밤, 적어도 내겐 체념이나 냉소의 뉘앙스가 아니었다.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찌 되었든 삶은 앞으로 흘러갈 것이고, 우당탕거림에도 결국은 괜찮아질 거라는 쪽에 더 가깝게 들렸다. 애써 낙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관에 주저앉지도 않는 상태. 그날 밤 내 마음은 그 지점에 닿아 있었다.
퐁데자르의 중간쯤에서 우리는 잠시 걸음을 늦췄다. 올랭피아 극장의 붉은 간판, 센 강 위의 찬 겨울 공기, 빙빙 돌고 있는 에펠탑의 밤 조명, 그리고 이틀 간 모든 신경을 잡아먹었던 뉴스 화면들이 한꺼번에 겹쳐졌다. <Devil May Care>의 파리 실황 버전이 특별한 이유는, 다이애나 크롤의 보컬이나 피아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녀는 스윙을 이끌지만, 앞서 나가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곳을 짚어내며 절묘하게 나아간다. 그녀의 리드를 받쳐주는 연주자들의 합이 내는 균형감에 매력이 있다. 연주가 끝난 직후 다이애나가 각 연주자들을 호명할 때 마다, 나는 그녀와 함께 그들의 이름을 같이 부른다. “폴리뉴 다 코스타(퍼커션), 앤소니 윌슨(기타), 존 클레이튼(베이스), 그리고 제프 해밀턴!” 그리고 마음속으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마치 23년 전 올랭피아의 관객석에 앉아 공연을 지켜본 것마냥.
2016년, 다이애나 크롤은 <Wallflowers>앨범을 발표하고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 공연을 했다. 그 자리에서 <Devil May Care>를 들려주길 바랐지만, 그녀에겐 불러야 할 신곡들이 너무 많았다. 조니 미첼의 곡 <A Case of You>의 리메이크가 어느 정도 감동을 대신했지만, 티셔츠의 부재를 대신해 줄 만한 건 부재했다. 아무래도 재즈 스타에게 티셔츠 MD는 음반만큼 중요한 건 아니었나 보다.
파리 그 밤으로부터 1년. 실패한 내란과 파리의 정경에 뒤섞여 어지러이 지새웠던 그 밤을 티셔츠로 기념하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다이애나 크롤의 올랭피아 공연과, 퐁데자르 위의 풍경, <Devil May Care>의 가사 한 구절. 그런 티셔츠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AI 조수에게 올랭피아의 붉은 색 간판 사진과 퐁데자르에서 찍은 사진, 발췌한 곡 가사를 전달하고 DIY 티셔츠를 만들기로 했다. 프롬트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1. 티셔츠 앞면 이미지: 올랭피아의 조명이 켜진 간판 위에는 다이애나의 이름을 메인으로, 세션 뮤지션들의 이름을 위에 함께 넣어 당시 공연의 간판을 재현한 이미지를 만들어줘.
2. 티셔츠 뒷면 이미지: 퐁데자르의 사진 밑에 곡의 유튜브 링크를 QR코드로 만들어 배치해주고, 다음 가사 구절을 포함해줘.
Live love today, let come tomorrow what may.
Don't even stop for a sigh, it doesn't help if you cry.
(오늘은 사랑하며 살고, 내일은 어떻게 되든 오게 두자. 한숨을 쉰다고 달라질 건 없고, 울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글/사진 백영훈
1990년대의 팝과 록에 어지러이 매혹당하며, 장래 희망으로 FM 라디오 DJ를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어렸을 적 바람과는 달리 글로벌 IT기업에서 25년 이상 일을 해오고 있다. 전업의 시간 이편에서는 팝을 비롯한 대중문화 딜레탕트로서의 삶을 즐기며, 여전히 팝 키드로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음악을 입다』가 있다. · 도서 정보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35274
음악 애호가, 티셔츠 수집가, 『음악을 입다』의 백영훈 작가가 들려주는 티셔츠와 랜덤 플레이 리스트.
무작위, 우연, 계획되지 않은 흐름에서 발생하는 사건, 랜덤은 그래서 예상치 못한 선물이 되기도 합니다.
오래전 LP와 카세트테이프에서, 아이팟에서, 콘서트에서 듣던 팝과 록과 재즈를
태연하게 오늘의 일상에 랜덤으로 가져다 놓습니다.
인생의 헤아릴 수 없는 고민, 반복된 잡념을 오늘의 티셔츠와 플레이리스트로 잊어 보시기를.
적당한 스타일은 덤입니다.
2024년 12월 3일 저녁, 파리 오페라 구역의 백화점에서 윈도우 쇼핑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틀 후 귀국이라 친지들에게 건넬 파리의 기념품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휴대폰의 진동 알람이 울렸다. 화면에 포털 뉴스의 긴급 헤드라인이 떴다. “비상계엄 선포.” 곧이어 가족과 친지들의 카톡이 이어졌고, 머릿속 회로는 과부하가 걸려 하얗게 방전되어 버렸다. 다리가 풀렸고 욕지기가 솟았다. 식당가로 자리를 옮겨 두 시간 넘게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보며 하염없이 뉴스 새로 고침을 반복했다.
파리로 오기 전날 밤, 런던에서 우버를 탔을 때였다. 어쩌다 드라이버와 서로의 나라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한국의 사정에 대해 꽤 잘 알고 있었다. 궁금해하는 그에게 최근의 분위기를 전했다.
“요즘 우리 정치 상황이 꽤 아슬아슬해. 특검과 탄핵 주장 때문에, 심지어 계엄 가능성도 나오고 있어.”
스몰 토크였지만, 돌이켜보면 그 다음 날 벌어질 엄청난 사태에 대해 우연히 복선을 깔았던 셈이었다.
“국회에 사람들이 많이 갔대. 곧 해제되겠지. 우리는 왜 하필 이럴 때 파리에 왔을까?”
아내와 나는 애써 사필귀정의 희망을 말하고, 얄궂게 된 여행 시기를 두고 푸념했다. 오페라 지역에서 출발해 퐁데자르(Pont des Arts) 다리를 건너 파리 좌안(Rive Gauche)에 있는 숙소까지 걸어갔다. 길 초입에서 공연장 올랭피아(L’Olympia)를 지나쳤다. 불안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조명이 켜진 올랭피아의 붉은 간판은 그 밤에 유난히 더 빛났다.
숙소로 돌아온 뒤 CNN 뉴스와 휴대폰을 번갈아 지켜보며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녘, 국회 앞에 운집한 시민들을 배경으로 계엄령 해제 의결 소식을 전하는 특파원의 리포트를 보고나서야 잠이 들었다. 외신들에겐 군인들이 동원된 저 무시무시한 ‘마셜 로(martial law)’가 여섯 시간 만에 종료된 일이 일종의 해프닝처럼 보이는 듯했다.
날이 밝은 후, CNN에서 국회 앞 시민들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다. 급발진한 비정상에 더 빠르게 반응했던 상식과 정상의 집념들. 숙고의 주저함 따위란. 정상화까지 비록 갈 길이 어렵고 먼 시간이 앞에 놓였다는 건 자명했지만, 우리 내외는 다시 오페라로 향했다. 못다 한 쇼핑을 마무리했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나서 평판 좋은 디저트집에 들러 에클레어와 크레페, 핫 초콜릿를 먹었다. 짧았던 위안과 자축 뒤, 걱정은 다시 찾아왔다. 국회 앞으로 달려간 이들과, 불안했을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얹어졌다.
‘그래도 좋은 생각만 하자.’ 오페라에서 카푸신 거리(Boulevard des Capucines)쪽으로 걸었다. 올랭피아 앞에 도착했다. 여기서 딱 23년 전 다이애나 크롤이 공연을 했다. 아내에게 발길의 맥락을 설명했다. “그때 레코딩한 실황 앨범이 내 최애 앨범 중 하나야. 여기를 꼭 직접 와보고 싶었어.” 올랭피아를 떠나며 아내와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누어 끼고, 다이애나 크롤의 파리 실황 앨범을 들었다. 첫 곡 <I Love Here Being With You>가 끝날 때쯤 마들렌 성당을 끼고 콩코드 광장으로 향했다. 다시 폰데자르 다리 위로 세느강을 건널 때는 <Devil May Care>가 흘러 나왔다.
나는 다이애나 크롤의 이 공연을 영상으로 처음 접했다. 지금은 사라진, 건대 앞의 작은 레코드 가게였다. 종종 들르던 곳이었는데, 주인장은 막 발매된 이 공연 실황 DVD를 틀어놓고 연신 ‘크~’하며 감탄하고 있었다. 매장의 커다란 TV화면엔 다이애나 크롤이 예의 냉랭함과 진중함이 함께 깃든 모습으로 피아노 리더 연주에 들어간 모습이 클로즈업 됐다. 곧 이어 그녀 바로 뒤에서, 배우 존 굿맨을 닮은 드러머 제프 해밀턴(Jeff Hamilton)이 브러쉬를 쥐고 곡의 절정부인 드럼 솔로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주인장의 탄식이 또 터졌다. “캬~!” 그의 즉물적 반응을 눈살 찌푸리며 바라보는 나의 입 또한 벌어져 있었다. “아~!” 재즈 문외한에게도 바로 치고 들어오는 멋진 스윙이었다.
이 곡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나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사전적으로만 보면, ‘악마 정도만 신경 쓸 것.’ 이 관용구는 ‘되는 대로 되라’, 혹은 ‘아무 상관없다’ 식의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그날 밤, 적어도 내겐 체념이나 냉소의 뉘앙스가 아니었다.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찌 되었든 삶은 앞으로 흘러갈 것이고, 우당탕거림에도 결국은 괜찮아질 거라는 쪽에 더 가깝게 들렸다. 애써 낙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관에 주저앉지도 않는 상태. 그날 밤 내 마음은 그 지점에 닿아 있었다.
퐁데자르의 중간쯤에서 우리는 잠시 걸음을 늦췄다. 올랭피아 극장의 붉은 간판, 센 강 위의 찬 겨울 공기, 빙빙 돌고 있는 에펠탑의 밤 조명, 그리고 이틀 간 모든 신경을 잡아먹었던 뉴스 화면들이 한꺼번에 겹쳐졌다. <Devil May Care>의 파리 실황 버전이 특별한 이유는, 다이애나 크롤의 보컬이나 피아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녀는 스윙을 이끌지만, 앞서 나가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곳을 짚어내며 절묘하게 나아간다. 그녀의 리드를 받쳐주는 연주자들의 합이 내는 균형감에 매력이 있다. 연주가 끝난 직후 다이애나가 각 연주자들을 호명할 때 마다, 나는 그녀와 함께 그들의 이름을 같이 부른다. “폴리뉴 다 코스타(퍼커션), 앤소니 윌슨(기타), 존 클레이튼(베이스), 그리고 제프 해밀턴!” 그리고 마음속으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마치 23년 전 올랭피아의 관객석에 앉아 공연을 지켜본 것마냥.
2016년, 다이애나 크롤은 <Wallflowers>앨범을 발표하고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 공연을 했다. 그 자리에서 <Devil May Care>를 들려주길 바랐지만, 그녀에겐 불러야 할 신곡들이 너무 많았다. 조니 미첼의 곡 <A Case of You>의 리메이크가 어느 정도 감동을 대신했지만, 티셔츠의 부재를 대신해 줄 만한 건 부재했다. 아무래도 재즈 스타에게 티셔츠 MD는 음반만큼 중요한 건 아니었나 보다.
파리 그 밤으로부터 1년. 실패한 내란과 파리의 정경에 뒤섞여 어지러이 지새웠던 그 밤을 티셔츠로 기념하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다이애나 크롤의 올랭피아 공연과, 퐁데자르 위의 풍경, <Devil May Care>의 가사 한 구절. 그런 티셔츠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AI 조수에게 올랭피아의 붉은 색 간판 사진과 퐁데자르에서 찍은 사진, 발췌한 곡 가사를 전달하고 DIY 티셔츠를 만들기로 했다. 프롬트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1. 티셔츠 앞면 이미지: 올랭피아의 조명이 켜진 간판 위에는 다이애나의 이름을 메인으로, 세션 뮤지션들의 이름을 위에 함께 넣어 당시 공연의 간판을 재현한 이미지를 만들어줘.
2. 티셔츠 뒷면 이미지: 퐁데자르의 사진 밑에 곡의 유튜브 링크를 QR코드로 만들어 배치해주고, 다음 가사 구절을 포함해줘.
Live love today, let come tomorrow what may.
Don't even stop for a sigh, it doesn't help if you cry.
(오늘은 사랑하며 살고, 내일은 어떻게 되든 오게 두자. 한숨을 쉰다고 달라질 건 없고, 울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글/사진 백영훈
1990년대의 팝과 록에 어지러이 매혹당하며, 장래 희망으로 FM 라디오 DJ를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어렸을 적 바람과는 달리 글로벌 IT기업에서 25년 이상 일을 해오고 있다. 전업의 시간 이편에서는 팝을 비롯한 대중문화 딜레탕트로서의 삶을 즐기며, 여전히 팝 키드로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음악을 입다』가 있다.
· 도서 정보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35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