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음악을 입다][음악] 혁명은 안 되고 방을 바꾸었다, 게이트 플라워즈 <예비역>

2026-02-13


음악 애호가, 티셔츠 수집가, 『음악을 입다』의 백영훈 작가가 들려주는 티셔츠와 랜덤 플레이 리스트.
무작위, 우연, 계획되지 않은 흐름에서 발생하는 사건, 랜덤은 그래서 예상치 못한 선물이 되기도 합니다.
오래전 LP와 카세트테이프에서, 아이팟에서, 콘서트에서 듣던 팝과 록과 재즈를
태연하게 오늘의 일상에 랜덤으로 가져다 놓습니다.
인생의 헤아릴 수 없는 고민, 반복된 잡념을 오늘의 티셔츠와 플레이리스트로 잊어 보시기를.
적당한 스타일은 덤입니다.


2026년의 입춘(立春)인 오늘, 낮 기온 영하 4도. 봄기운은 희미한 신호조차 가늠할 수 없다. 저녁 식사 후 동네 산책의 루틴을 시작한다. 춥고 흐린 날에는 빠른 속도로 팔을 흔들며 걷는 ‘파워워킹’의 발열이 필요하다. 두툼한 헤드폰을 끼고 재생 목록에서 랜덤으로 뜬 첫 곡을 누른다. 게이트 플라워즈의 <예비역>. 도입부의 몇 초만으로도 내면의 무엇인가가 덥혀진다. 인적이 드문 길, 나는 한 손을 작게 휘두르며 에어 드럼을 친다. 이 곡을 들을 때면 늘 한결같은 느낌에 이른다.

 

‘이들은 어떻게 초기부터 이러한 완성형의 곡을 만들었을까?’ 


종반부에 보컬 박근홍이 ‘후~! 후~!’하는 스캣으로 곡을 마무리할 때면, 여전히 찌릿하다. 비유하자면, 한 야구 경기에서 이미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한 괴물 타자가 9회 마지막 타석에서조차 담담한 모습으로 장쾌한 홈런을 쳐내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오늘은 그 감흥이 유난하여 이 곡에 대해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보컬리스트 박근홍에게 던졌다. 나의 전작 에세이집 『음악을 입다』를 쓰면서 맺은 개인적인 인연 덕분이다.


“TV 프로그램 <탑밴드> 경연의 결선에서 이 곡을 연주하지 않았던 사연이 있을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일단 노래 자체가 6분이 넘기 때문에 방송에서 연주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만약 결승에 진출했다면 선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준결승에서 떨어져버렸네요. 최종 결선 이후에 촬영했던 뒤풀이 방송에서 <예비역>을 연주하긴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던 곡은 김광석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의 리메이크 연주였다. 하지만 <예비역>은 그 못지않게, 이를테면 게이트 플라워즈의 <Creep>이나 <Don’t Look Back In Anger>라 불러도 좋을 만큼의 지명도를 지닌 곡이다. 그렇기에 국내 지상파 밴드 경연 프로그램의 원조 격이었던 <탑밴드> 메인 무대에서 이 곡의 연주를 끝내 보지 못했던 상황이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자양분 위에서 한 세대를 건너 도착한 2010년대 초입에, 시대 저항의 이면을 토로하던 이 새로운 ‘날 것’은 더 많은 관객에게 보여졌어야 했다. 그 ‘날 것’이 완성형 사운드로 빚어지는 진경(眞景)이 펼쳐졌다면, 이 밴드의 역사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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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이라는 말은, 대한민국 성인 남성에겐 그리 달갑게 소환되는 단어가 아니다. 국가 공동체는 병역 복무 부여에 ‘신성한 의무’라든가, ‘전우애’ 등의 낯 간지러운 수사를 끌어오기도 한다. 획일화되고 꽉 닫힌 조직과 위계의 체계를 맞닥뜨리며 겪는 현실이 일종의 부조리임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노래 속 화자가 메타포로서의 <예비역>이 마주하게 된 조직과 사회, 시스템의 굴레 속 투쟁을 호소하는 것이리라 관성적으로 짐작했지만, 박근홍은 이렇게 답했다.  


“원래 제목은 ‘투항’이었습니다. 초판 EP의 가사지에는 미처 수정을 못 해서 ‘투항’이라는 제목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멤버들이 그 제목을 너무 싫어해서 결국 ‘예비역’이 됐죠. 사실 이 노래는 체제의 부조리나 굴레에 대한 투쟁가라기보다는 그런 투쟁을 강요하는 이들에게 “타는 심장도, 따가운 시선도, 흐르는 눈물도 이제 아무 소용 없”으니 나를 내버려두라는 허무주의적 독백인 셈이죠. 갖다 붙이자면 신해철 님의 ‘고뇌하는 비겁자’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의 답을 듣고 앨범의 가사지가 아닌, 김수영의 시집 <거대한 뿌리>를 꺼내 들었다. 「그 방을 생각하며(1960)」의 다음 시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나는 시인의 언어를 빌려, ‘그 방의 벽’앞에서 여전히 절규하는 이를 그려본다. 그 절규의 독백은 <예비역>에서 빼어난 록 사운드의 카타르시스로 형질 변경을 한다. 박근홍은 “아무 소용없”음을 노래했지만, 그 무기력의 호소에는 여전히 울림이 있다. 짐짓 저항과 투쟁의 록 스피릿을 지켜 본 대리 경험만으로 한 시절을 채웠던 나와 같은 청자들에게 말이다. 그러니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라는 시 구절은 각별하게 다가온다. “아무 소용은”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나는 이 곡을 같은 방 안에서 반복되는 무위의 투덜거림이 아닌, “안되”는 “혁명”을 꿈꿔본 이가 방을 바꿔본 시도 후에 맞닥뜨린 상황과 좌절을 승화한 하나의 비가(悲歌)로 받아들인다.



게이트 플라워즈의 1집 앨범엔 데뷔 앨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생생한 것들이 담겨 있다. <예비역>은 물론 <불편한 진실>, <F.M.> 같은 곡들은 이미 <탑밴드> 경연을 통해 이미 진가를 입증한 작품들이다. 오늘은 <후퇴>에 꽂혀 반복해서 듣는다. 노래 속 화자는 <예비역>의 좌절을 뒤로 하고, “방만 바꾸”어서 서울 시내 거리를 방황하는데, 나는 그 모습에서 어떤 ‘나아감’을 읽는다.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들 / 난 한 번도 의심을 가져 본 기억은 없었어 / 변하는 세상과 상관없는 절대적 믿음으로 / 모든 게 예전과 다르지 않기를 바라 / 절망의 끝에서 다시 절망으로

            

지난 2023년, 게이트 플라워즈는 홍대 벨로주에서 몇 년 만에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마지막 곡은 예상했던 대로 <예비역>이었다. “난 돌아가지 않아~ 뒤 돌아보지 않아~” 라는 코러스를 함께 따라 부르는 관객들의 뜨거운 기세. 나 또한 그 기세에 한 목소리 보탰다. 당일엔 고맙게도 이들의 로고가 금색으로 프린트된 티셔츠를 판매했다. 반가운 마음에 가장 큰 라지 사이즈를 주저함 없이 장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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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입어보니 그 ‘라지’사이즈의 티셔츠는 가히 ‘쫄티’ 수준이었다. 한때 디올 옴므의 수석 디자이너로서 남성의 슬림룩 유행을 이끌었던 에디 슬리만이 생각난다. 슬림룩을 통해 ‘남성성’을 다시 쓰려 했던 그는, 1990년대의 근육질 남성 이상을 떠나 더 가늘고, 양성적이며, 록의 기운을 머금은 미감을 추구했다. 참고로 에디 슬리먼이 염두에 두었던 아이콘은 데이빗 보위이고, 국내에선 배우 강동원 정도(?)가 그 미감에 동참했었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나의 경우 그 ‘록의 기운을 머금은 미감’을 걸치기 위해선 최소 10kg이상의 몸무게를 줄여야 한다. 각설하고, ‘쫄티’ 충격에 게이트 플라워즈의 로고 티셔츠는 한동안 관상용 컬렉션으로 간직할 것이다. 아쉽지만 말이다. 



글/사진 백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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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의 팝과 록에 어지러이 매혹당하며, 장래 희망으로 FM 라디오 DJ를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어렸을 적 바람과는 달리 글로벌 IT기업에서 25년 이상 일을 해오고 있다. 전업의 시간 이편에서는 팝을 비롯한 대중문화 딜레탕트로서의 삶을 즐기며, 여전히 팝 키드로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음악을 입다』가 있다.
· 도서 정보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35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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