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 여행작가의 여행법][여행] 찐 호캉스, 칸쿤에서 코로나와 타코 먹으며 제대로 즐기다

2024-02-02

직딩 여행 작가의 여행법 #19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보이는 것만으로 우리는 쉽게 판단하곤 한다. 나의 화려한 SNS를 보는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너는 참 좋겠다. 늘 맛있는 것만 먹고, 좋은 호텔에서만 자고, 여행만 하니까” 하지만 과연 내 일상이 항상 그러할까? 그런 일은 사실 어쩌다 한 번이고, 나는 그걸 유지하기 위해 오리가 물 밑에서 계속 발을 젓는 것처럼 다른 일상을 포기하거나 쉴 틈 없이 일한다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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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랑에서


고급 호텔이나 좋은 여행지로 출장을 가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에게 여행의 설렘과 정보를 주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잠시도 쉬지 않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고 짬 날 때마다 정리를 하고 편집한 다음, 마음을 가다듬고 글을 써야 한 편의 내용물이 완성된다. 따뜻한 음식이 나와도 촬영을 마치고 나면 이미 다 식은 후. 랍스터나 스테이크 같은 경우는 덜 익혀야 먹음직스럽게 빨갛게 나오니까 그냥 그 상태로 촬영을 해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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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룽킹힌에서


하루에 여러 호텔을 다니다 보면 나중에는 호텔 이름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니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없는 현실이 된다. 간혹 내가 투숙하지 않은 호텔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도 받곤 한다. 호텔을 홍보해서 판매는 해야겠으니 여행 작가라는 나의 직업에 기대 의뢰를 하는 것. 이런 제안은 바로 거절한다. 여행은 경험이 전부인데, 사진만 보고 상상으로 쓰는 호텔 리뷰는 일반인이 쓴 호텔 투숙기보다 못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 이름 석 자를 달고 나가는 글을 그렇게 의미 없이 쓸 수는 없다. 내가 직접 체크인 하고, 침대에 누워보고, 부대시설을 이용하면서 느끼는 경험과 감성만이 내 글을 완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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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시즌스 텐티드 캠프 골든 트라이앵글 타일랜드에서


*    *    *


나는 지금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도시, 뉴욕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추위에 약한 나는 겨울이 되며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평소 휴양지 여행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모처럼 따뜻한 태양 아래 늘어지는 휴식이 필요했다. 나는 항공권 구매를 늘 주식과 비유하곤 한다. 가격은 언제나 천차만별,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고, 내가 구매하고 나면 늘 가격이 떨어지는 항공권! 그나마 뉴욕은 국적기도, 취항사도 많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좀 더 넓다는 것이 장점이 되려나.

 

구글과 스카이스캐너를 열심히 뒤져 한겨울 성수기에 떠나는 뉴욕발 칸쿤행 왕복 항공권을 300불에 거머쥐었다. 수하물을 부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룬 쾌거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화장품은 미리 샘플 사이즈로 준비해 두었고, 현지에서 입을 옷도 모두 얇아서 짐이 되지 않았다. 가장 부피가 큰 물건이 크록스 슬리퍼. 이쯤이면 큰 트렁크 없이도 얼마든지 휴양지에서 머물 수 있겠다고 자신했다.

 

0080409ac5974.jpg그랜드 피에스타 아메리카나 리조트 코랄 비치


20여 년 전 갔던 칸쿤의 기억은 희미했지만, 더듬어 떠올려 보니 세계적인 휴양지답게 호텔이 무수히 많았던 기억이 났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 평 좋은 호텔들을 찾아보는 데만 사흘이 후딱 지나갔다. 이번 여행의 콘셉트를 ‘호텔 밖 안 나가기’로 잡았기 때문에 특히 숙소가 중요했다. 칸쿤의 특성상 올 인클루시브 중에서도 바다가 가깝고 음식이 맛있는 곳을 원했다.

 

그렇게 최종 선택한 호텔은 ‘그랜드 피에스타 아메리카나 리조트 코랄 비치Grand Fiesta Americana Coral Beach Canun’. 고급 호텔이 즐비한 호텔 존 비치에 위치한 5성급 호텔로, 전 세계 럭셔리 라인의 독립 호텔들을 보유하고 있는 프리퍼드 호텔 앤 리조트(Preferred Hotels & Resorts)의 멤버이기도 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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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은 거대한 규모의 핑크 빛 건물에, 내부는 온통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직원들 덕분에 의사소통도 쉬웠다. 하루 세 끼에 디너 쇼나 공연 등을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이슬라 무헤레스섬 페리와 카누, 스노클링 등의 액티비티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는, 말 그대로 호텔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었다.

 

38f92c8838f1e.jpg호텔에서 즐긴 저녁 공연


새소리를 들으며 조식을 먹고, 마사지를 받고, 바닷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비치를 걸은 후 낮잠을 자고, 미리 예약해 둔 식당에서 공연을 보며 저녁 식사를 하는 일정이 진행되었다. 코로나 맥주와 타코는 매일 먹어줘야 하는 기본템이었다. 매일 반복해도 지루하지 않았고, 항상 다른 느낌이 들어 더 소중했던 시간들이 마구 흘러갔다.

 

f0e01463a79c7.jpg조식당과 호텔 내 식사


머무는 동안 자주 비가 왔고 대체로 날은 흐렸다. 맑은 날이 얼마 되지 않았어도 개의치 않았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게 날씨이고, 나는 그 안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라 마음먹었으니까. 즐기지 못해 봤자 나만 손해니까.

 

4797678f863ef.jpg매일 하나씩 놓아 준 초콜릿, 호텔 내 식사


젊었을 적, 전 재산을 탕진하며 미친 듯 전 세계로 찾아다녔던 클럽메드가 떠올랐다. 종일 먹고 마시고 현지 직원들과 노느라 정신없이 보내던 날들. 이곳에서의 시간이 모처럼 그러했다. 춥고 빡세기까지 했던 뉴욕에서의 현실은 새까맣게 잊은 채 오로지 눈앞의 일정에만 충실했다. 다음 끼니는 어느 식당을 갈까? 바닷가에서 뒹굴거릴까, 수영장을 들어갈까? 피나 콜라다와 데킬라 중 무엇을 마셔야 할까? 그 모든 고민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정이자 가장 중요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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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4a585ccf9ad.jpg7679bb5f5c11a.jpg호텔 수영장과 호텔 앞 바다


이렇게 놀다가 룸으로 들어가면 쥐도 새도 모르게 먹을 게 가득 채워져 있고, 쓰레기는 비워져 있다. 오후면 턴다운 서비스로 새로이 가운과 초콜릿이 놓여 있던 침대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룸에서 보이는 바다가 아름다워 하염없이 멍 때리기를 하는 것도 과분하게 행복했다. 그러니 호텔에 도착한 첫날 나는 직감했던 것이었다. “아, 이곳을 떠날 날이 되면 얼마나 슬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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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돈을 버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먹여 살릴 처자식도, 당장 내야 할 대학 등록금도 없는 내게는 조금 더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며 사는 것이 지금 인생 최대의 목표이다. 그런 내게 오랜만에 다시 향했던 칸쿤은 그 기대치를 최고로 만족시켜 주었다.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 잠시나마 스쳐 지나가는 바다의 모습도 놓치기 아쉬워 백만 년 만에 창가 자리에 앉아 칸쿤의 바다를 내 눈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다시 새겨놓았다. 그리곤 외쳤다. “돈 많이 벌어서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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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조은정(루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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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https://eiffel.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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