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으로 기억하는 여행 #2



와인 때문에 프랑스에 빠지게 되었지만, 프랑스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나라가 가진 일종의 불변성이다. 추억을 남기고 돌아온 그 장소가 다시 가도 그대로 있다는 것. 파리에 도착해 낯익은 풍경을 지나 들어가는 와인바는 잘해야 1년에 한 번 방문하는 나라에 향수를 느끼게 만든다. 


파리의 한 와인바


새벽녘 파리를 떠나 다시 만난 2013년의 부르고뉴. 여전히 변하지 않은 포도밭의 싱그러움. 눈부시게 푸른 하늘과 짙은 녹음의 포도밭이 강렬하게 눈에 새겨진다. 


부르고뉴 전경


부르고뉴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다짐이 현실이 되어 두근거리고, 오늘의 만남이 궁금했다. 피노누아로 만든 와인은 화려하지만 까다롭다. 여는 병마다 향과 맛의 편차가 크고,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이날 방문하기로 한 와이너리의 와인은 마실 때마다 맛이 달라서 참 까다롭기도 하다 생각했던 곳이다. 그렇다면, 만드는 사람은 꽤 예민하고 깐깐한 사람이 아닐까하는 상상.


눈에 띄지 않아 헤매다가 찾아낸 와이너리는 작은 간판이 달려있는 소박한 건물. 한적한 부르고뉴 뉘생조르쥬Nuit-Saint-Geourges 마을의 도멘 앙리 구주Domaine Henri Gouges에 도착했다. 푸른빛이 입혀진 작은 간판이 쨍한 여름햇빛과 어우러진다.

 도멘 앙리 구주


도멘 앙리 구주는 원래도 유서 깊은 와이너리이긴 하지만, 만화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며 크게 유명해진 곳이다. 유명세에 비해 와이너리는 마을의 여느 집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내부도 단출하다. 


습한 곰팡이 냄새, 오크통과 포도향이 퍼지는 작은 저장고에서 양조자 중 한명인 크리스티앙 구주Christian Gouges를 만났다. 분명 까다로운 사람일거야 하는 상상이 무색하게 푸근한 미소를 짓는 아저씨가 맞아주었다. 


크리스티앙 구주


도멘 그로 프레르 에 쇠르Domaine Gros frère et soeur를 방문했을 때와는 다르게 상당히 자세하게 본인의 양조 철학에 대하여 들을 수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수확과 양조과정에서 포도를 가능한 다치지 않게 한다는 것. 오크통에서 숙성중인 와인과 병입 후 숙성중인 와인을 함께 마셔보는 내내 들려준 그의 이야기에는 포도와 밭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담겨 있었다. 


와인양조는 매해 날씨와 포도농사의 작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와인을 마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좋은 빈티지가 어떤 해인지가 궁금해지는데, 질문에 답하는 그의 말에서는 ‘좋다 / 나쁘다’라는 단순한 규정이 없다. ‘좋은 해’ 보다는 ‘아름다웠던 해’, ‘나쁜 해’보다는 ‘포도밭에 신경을 더 많이 썼지만 개성이 있었던 해’. 그가 와인에 대해 설명하며 가장 많이 사용했던 말은 ‘아름다웠다’는 것. 그 말에는 와인을 다른 요인으로 판단하기에 앞서 먼저 즐겁게 맛을 봤으면 하는 소망이 들어있다.


앙리 구주에서의 테이스팅


양조자와의 대화는 그 와인을 더 각별하게 만든다. 까다로운 사람일 것이라는 상상은 섬세한 사람이었다는 인상으로 덧씌워진다. 저장고에서 함께 맛본 와인의 향에 더해진 포도에 대한 ‘아름다운’ 애정으로 부르고뉴의 여름을 추억한다.




글/사진 이원식

본업은 영상콘텐츠를 만드는 PD. 애호하는 것은 와인, 프랑스, 그리고 프랑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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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이 바쁜 나날들 속에서, 갑자기 나른해지는 여유로움이 느껴져 잠시나마 행복을 느끼고 갑니다~~~
향에 기억을 담아, 그리고 그것은 돌아서 다시 추억으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것이 아주 매력인게 바로 와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