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 #2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 할지라도 본인이 직접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자리를 비운다는 것이,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결심을 해야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전혀 일상적인 일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지금 같은 시국에 홍콩을 간다고?”


두 달 전부터 일정을 맞춰 계획하고 예약을 끝마친 상태라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응하기엔 여러모로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홍콩이라는 말을 꺼내는 게 민망할 정도로 반응은 비슷했다. 나라고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나,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새벽녘 안개 속을 걸을 때의 막막함이 지금 기분과 비슷할까. 양가적 감정이 팽팽하게 평행선을 그리며 우선순위를 다퉜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서점 몇 곳만 둘러 볼 계획이니 조심하면 괜찮을 거야. 안전한 거리로만 잘 다니자.’ 김영하 작가의 책 한 구절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여행은 예기치 않는 순간들로 이루어져 인생과 비슷하다.” 용기가 차올랐다.



주변의 우려대로 홍콩 여행은 순탄치 않게 시작되었다. 홍콩을 강타한 태풍 ‘위파’로 인해 홍콩발 항공편은 결항되거나 지연되기 일쑤였고, 나는 하염없이 기다림과 사투하며 6시간을 대기한 끝에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긴 하루에 지쳐 짐정리도 못한 채 깊이 잠들었다 일어난 다음 날. 열 시쯤 룸 청소를 해주시는 분의 노크로 겨우 깨어나 대강 세수만 하고 나와 근처 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하루 일정을 정했다. (홍콩에 사는 지인이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기엔 ‘pret a manger’가 스타벅스보다 더 좋다고 강력하게 추천해 주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시위 장소를 확인하는 일. 다행히 오늘 가고자 하는 곳은 시위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서점을 운영하다 보니 다른 독립 서점들은 어떤 특성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늘 궁금하다. 소비자, 그러니까 독자의 입장일 때는 깊게 들여다볼 수 없었던 극히 현실적인 이면까지 더해져 숫자들이 허공을 둥둥 떠다닌다. 일인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서로가 준비과정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고민과 수많은 선택 그리고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알기 때문에 대화 몇 마디를 나누다 보면 금세 동질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다. 우린 척박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함께 싸워나가는 동료라는 것을. 


첫 장소였던 홍콩 섬에 위치한 ‘셩완’이라는 동네는 예술적인 감각의 로컬 숍들이 즐비한 곳으로 특색 있는 카페들과 오래된 골동품 골목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가야 할 서점은 안쪽으로 좁은 골목을 굽이굽이 들어가면 나오는 2층의 아담한 건물. 문을 열자마자 한눈에 공간이 담겨지는 것이 우리 서점 같아 정겨웠다. 서점 주인의 정성이 들어간 책 큐레이션. 이를 테면 신간과 베스트, 서점 추천 책의 높낮이를 다르게 진열해 눈에 잘 보이는 효과를 준 책장과 계단 입구부터 환영 인사를 하듯 칸칸이 각이 잡혀 맞이하는 매거진. 거기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타자기와 서점 주인의 감수성이 묻어나는 소품, 손님이 없을 때 앉아서 한숨 돌릴 수 있는 간이 의자와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컵. 차례대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주인의 하루 일과가 그려져서 나도 모르게, ‘아, 그러셨군요.’ 하는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 공간의 일상까지 엿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서점 탐방의 묘미랄까.



이 서점은 2층 창가가 포토 스폿으로 알려진 곳이라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으며 나선형 계단을 올라갔다. 창가 앞엔 긴 머리의 여성이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바라보는 시간만큼 창밖으로 머무르는 시선이 긴 걸 보니 혼자만의 사색의 시간을 방해해선 안 될 것 같아 조용히 내려왔다. 살며시 서가의 책들만 사진으로 남겼다.


작고 가녀린 몸으로 손님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주인을 보고 있자니 본인의 가치를 지키고 키워나가는 마음이 느껴져 다정한 인기척이라도 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작은 독립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조심스레 말하자, 그녀는 꽤나 놀라는 눈치였다. 


“나처럼 개인 서점을 운영한다고?” 


그 말 안에는 ‘그 어려운 걸 한단 말이야?’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한국의 서점들을 궁금해 하는 것도 잊지 않으며 일본 서점은 방문해 봤는데, 한국의 분위기는 어떠냐고 물었다. 


“한국엔 책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어쩌면 한국의 서점 트렌드가 일본보다 앞서고 있는지도 몰라요. 끊임없이 방법을 모색하고 나아가는 중이니까요.” 



그녀는 끄덕이면서도 굿즈 추천을 부탁하는 내게 일본산 연필을 보여주었다. 형형색색의 연필을 들여다보다가 내려놓으며 홍콩에서 만든 굿즈를 사가고 싶다고 말했다. 홍콩을 상징하는 시장과 상점들이 그려진 스케치 포스터 세 장과 책갈피를 구매하고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나눴다. 그녀는 서점에 영어책이 많지 않아 미안하다며 다른 전통 있는 독립 서점을 추천해 주기도 했다. 


서점에서 나온 후, 길을 따라 내려오니 카페 골목이 보였다. 혼자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평소 차가운 커피를 좋아하지만 따뜻한 커피가 담겨 찻잔이 멀리서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가져간 책을 펴고, 커피 잔을 들 때, 휴대폰으로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가수 윤미래가 부른 ‘꽃’ 이라는 노래의 동영상이었다. “빈들에 마른 풀 같다 해도 꽃으로 다시 피어날 거예요.” 이 노래의 영상은 영화 <김복동> 예고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분여의 시간은 나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교차하는 감정 안에서 책에 집중하려 노력하며 어느덧 시간은 두어 시간이 흘렀다. 내 모습을 한참 관찰했다던 옆자리 홍콩 사람이, “책에 빠져 있던 이방인의 모습”이 이 카페의 분위기에 누구보다 잘 어울렸다고 말해 주었다. 책에 빠진 이방인이 그의 어떤 기억을 움직인 걸까, 그는 말없이 내 커피 값을 계산해 주고 사라졌다. 그의 말투가 잔향처럼 은은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다음 날, 두 곳의 서점을 가기 위해 할리우드 로드로 향했다. 희귀한 고서를 파는 ‘룩만레어북스’는 전 세계에서 수집한 책들을 모아놓은 서점인데 큰 키의 운영자는 이곳이 아시아에서는 희귀 고서를 보유한 유일한 곳이라며 자부심이 가득해 보였다. 두 손에 면장갑을 낀 채 책을 꺼내는 모습에서 갓 태어난 아기를 다룰 때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전해졌으며, 책마다 기록해놓은 큐레이션 카드는 ‘책의 가치는 발견한 사람에게서 만들어진다.’는 말을 절절히 실감케 했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나를 자극한다. 



1920년대에 발행된 영미 소설을 보았을 때의 내 반응은 오랜 사회생활로 몸에 밴 정제된 형태의 예의를 다 날려버린 날 것 그대로의 들뜬 모습이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사랑이 전부라 말하던 시절 내 영혼을 토닥이는 책이었다. 개츠비가 살았던 시대는 미국에서 재즈의 시대라 일컫는 1920년대다. 재즈 시대의 메아리, 어떤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가슴만 뛸 뿐이지. 고서로 가득한 이곳은 일반 독자들이 사기에는 부담되는 값의 책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경험으로 가보기에 좋을 것 같았다. 


8월 초, 격동적인 시위 속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지하철이 중단되고 각종 상업시설이 파업을 하는 등 치열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그들만의 사정은 있겠지만, 가까운 곳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입장에선 그저 어서 평화롭게 마무리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지하보도 벽면을 가득 메우는 포스트잇에 적힌 말들, 수없는 평화를 외침처럼.





글/사진 이유리

성산동에서 책방 '그렇게 책이 된다'를 운영합니다. 

http://instagram.com/becoming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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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하면 야경밖에 안떠오르는데.. 이란 테마가 있는 여행도 좋을 거 같네요!
글에 섬세한 감정들이 묻어나서 읽는동안 같이 서점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았어요. 모쪼록 안전한 여행이 되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