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책방]『자기 앞의 생』, 계절이 변해도 사랑은 가득하길

책과 책방 특집호 #7

THEME : 이 계절의 책



서툰책방에서 고른 이 계절의 책 : 『자기 앞의 생』, 로맹 가리


2017년 가을 서툰책방을 연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입니다. 입고할 책들의 목록을 정리하지 못해 판매할 책들을 주문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 결과 책장은 휑하니 비어 있었습니다. 저와 짝꿍은 비어 있는 책장을 채울 생각으로 출근 때마다 소장하고 있던 책들을 몇 권씩 가져다 놓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마다 가져온 책을 보며 우리가 책 취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연애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 많은 부분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소소한 다름이 즐겁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놀랍게도 우리는 책 취향만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책 입고와 배치, 빗자루 보관하는 방법 등 책방 운영에 대한 큰일에서 작은 일까지 모든 일에 생각이 달라 사사건건 부딪혔고 서로 서운한 감정에 휘감겨 힘든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짝꿍이 모아놓은 책들 사이로 낯익은 책이 한 권 보였습니다.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저는 무심코 손을 뻗어 표지를 넘겼고 책 표지 뒤에는 저의 글씨가 삐뚤게 쓰여 있었습니다. 


“생일 축하해. 당신 앞에 놓인 생이 사랑으로 가득 차길. 2015년 10월 주석이가.”



2015년 가을 당시 짝꿍은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고 있었고 저는 직장을 그만둔 지 6개월 만에 간신히 백수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여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짝꿍의 생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지만 저는 여전히 선물을 고르지 못한 상황이었고 결국 짝꿍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짝꿍은 읽고 싶은 책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책이 『자기 앞의 생』이었습니다.


2017년 가을 다시 만난 『자기 앞의 생』은 곳곳에 형광펜이 지나간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짝꿍의 흔적을 따라 천천히 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에는 세상의 커다란 폭력과 무수한 차별에 밀리고 밀려 소외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모모는 그들과 함께 성장합니다.


아이들을 돌보며 아이들의 부모에게 매달 양육비를 받으며 생활하는 로자 아줌마와 더 이상 양육비가 오지 않는 아이 모모. 돌보던 아이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하나둘 로자 아줌마 곁을 떠나갔고 결국에는 갈 곳 없는 모모만 로자 아줌마 곁에 남습니다. 수입이 없어 생활은 어려웠지만 둘은 세상에 소외된 이웃들의 도움을 받으며 아옹다옹 일상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늙은 로자 아줌마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집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로자 아줌마의 생은 가혹했습니다. 수용소의 기억이 몰려오는 두려운 날이면 7층에서 지하실로 이어지는 계단을 쉬지 않고 내려가 평소 안식처로 삼던 지하 방에 박혀 애써 자신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병이 깊어 고달팠던 그녀의 생이 끝나가기 직전에 모모는 그녀를 부축하여 지하 방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피신처이자 안식처였던 지하 방에서 생을 마감했고 삼 주가 흘러 부패된 상태로 사람들에게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옆에 누워있던 모모가 함께 발견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모모는 그녀가 사랑으로 자신을 돌본 만큼 죽은 그녀를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결국 어린 모모가 품었던 ‘사람이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모모가 직접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답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지낸다는 건 서로 애정을 품고 돌보는 마음이 필요한 일이겠지요. 아무래도 사람은 사랑이 필요한 존재인가 봅니다.



어느덧 서툰책방을 연 지 2년이 지나 2019년 가을입니다. 이제 책방은 어느 정도 안정된 분위기를 품고 있습니다. 책방 운영 초기 서로 다른 부분이 너무도 많아 힘들어했던 짝꿍과 저는 함께 일하는 방법을 많이 찾았습니다. 일단, 책방 공간을 넓혀 서로의 취향이 담긴 서가를 각자 관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의견이 맞지 않아도 서로 조금 양보하고, 조금 더 서로를 알아가나 봅니다.


다시 한 번, 짝꿍에게 전했던 글귀를 봅니다. 


“당신 앞에 놓인 생이 사랑으로 가득 차길.”


우리 둘 앞에 놓인 생이 사랑으로만 가득 찰 수는 없을 거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짝꿍 앞에 놓인 생에 열심히 사랑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짝꿍이 제게 그러하듯이요.

 




글/사진 한주석

서툰책방의 남주인장. 취미란에 ‘독서’를 쓰면 거짓말로 오해받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도 책 좋아해요.

춘천 옥천동 서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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