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분의 책방: 리뷰]월간 여분의 리뷰: 2021년 1월

월간 여분의 리뷰: 2021년 1월


여분의 책방 인스타그램에서 매주 소개한 책을 모아 월간 '여분의 리뷰'를 발행합니다.

2021년 1월에 소개한 책 중 네 권을 꾸려보았습니다.



1. 『사진의 용도』, 아니 에르노, 마크 마리 지음



우리는 왜 사진을 찍을까요? 순간의 포착, 장면의 소유, 기억의 보조. 사진의 일차적인 기능은 기록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빛이 허락하는 한, 단 한 프레임 분량의 시간과 장소가 고스란히 박제되니까요. 그런데 어떤 사진들은 화상이 맺히는 순간부터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집니다. 기록된 것들 너머로 ‘기록되지 않은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지요.

아니 에르노는 연인인 마크 마리와 사랑을 나눈 다음 날 아침마다, 지난밤에 남겨진 흔적들을 마주하며 그 흔적이 매혹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옷과 신발, 먹다 남은 음식이나 제멋대로 움직인 가구들은 두 사람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구성으로 이미 “멀어진 축제”를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마크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사랑이 지나간 자리를 사진으로 찍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진 몇 장을 선별하여 각자 그에 관해 글을 쓰기로 하지요. 글이 완성될 때까지 서로에게 보여주지 않기로 하고서요.

이 작업이 단순히 연인 간의 게임에 그치지 않는 것은 아니 에르노가 유방암 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는 항암치료 과정과 그로 인해 변해버린 몸에 관해 자세히 씁니다. 죽음이 어른거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거의 인물이 나오지 않는 사진만 찍었는데, 그런 사진들이 그녀가 없는 세상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미처럼 구겨진 옷이나 걸어가다 막 걸음을 멈춘 것 같은 뮬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부재를 주관적으로 옮기면 ‘상실’일 테고, 잃어버린 모든 것은 아름답기 마련이니까요.

이 책은 묘하게 로맨틱합니다. “당신을 베니스에 데려가고 싶어요.” 서로 어떤 글을 쓸지 공유하지 않았음에도 한 사진에서 같은 것에 관해 쓰는 부분이 있어서인지도 모릅니다. 또, 관계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서 (연인 간의 글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조금은 위태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글은 우리를 갈라놓을까, 혹은 더 가깝게 만들까?” 한 사람은 투병 중이고 한 사람은 막 이혼한 상태에서도 사랑을 나누고 여행하고 싸우고 질투하는 일상성이 유지되는 것을 보며 막연한 안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사랑 후에 어질러진 풍경의 상을 항상 보존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왜 조금 더 일찍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왜 어떤 남자에게도 그것을 제안해 본 적이 없었을까. (…) 아마도 나는 그 일을 오직 그 남자와 내 인생의 그 시기에만 할 수 있었으리라. _25p.

그 안에서 병은 제외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단번에 ‘내재된다’. 우리 셋, 죽음과 A와 나는 몇 달 동안 함께 살게 된다. 우리들의 동거인은 성가셨다. 그는 항상 거기에 머물 수 있는 권리를 손에 넣었다. _84p.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를 찍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 서로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아침에 일어나서. 그것은 가속이 붙은 상실과도 같다. 상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십 장의 사진을 찍는 것은 오히려 더 깊은 상실 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을 준다. _101~102p.



2. 『오늘도 손님이 없어 빵을 굽습니다』, 박무늬 글, 박오후 그림



카페를 운영한 적은 없지만 일은 해 본 적 있습니다. 공원 옆에 있던 곳이라 여름에는 제빙기가 텅 빌 정도로 바쁘고 겨울에는 눈이라도 왔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없었죠. 손님이 없는 카페는 정말 조용합니다. 음악을 틀어도 조용합니다. 혼자서 가게를 지키고 있으면 그래서 소일거리를 찾게 됩니다. 선곡표를 다시 만들거나 샷 연습을 하거나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보거나. 언니와 함께 카페를 운영했던 박무늬 작가는 손님이 없어서 빵을 구웠다고 합니다. 우선은 먹고요, 팔기도 하고요, 남으면 퇴근할 때 또 먹으려고요.

『오늘도 손님이 없어 빵을 굽습니다』는 베이킹 레시피와 스위츠 에세이가 담긴 독립출판물입니다. 저자의 문체엔 특별한 매력이 있는데요, 조곤조곤 높임말을 쓰면서 중간중간 자조적인 문장을 섞어냅니다. 설탕과 소금, 설탕과 고춧가루의 좋은 조합 같아서 읽는 내내 미소가 지어집니다. 저는 자기를 까내리는 화법의 에세이를 좋아하거든요. 거기에 빛깔 밝은 감수성이 슈가파우더처럼 묻어있습니다.

직접 만들고 자기 식으로 풀어낸 레시피도 재밌습니다. “아기 엉덩이같이 된 상태”, “귀찮아서 생략”, “무심하게”, “자신이 없어서”라고 적힌 레시피를 본 적 있으신가요? 줄리언 반스가 읽었다면 일갈(?)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모든 메뉴를 직접 만들고 레시피를 썼다는 점에서 결국 반스도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을 겁니다. 그리고 박오후 작가의 귀여운 그림도 에세이, 레시피와 잘 어우러져 총천연색 음식 사진보다 더 입맛이 돌아요.

손님이 없는 카페는 결국 문을 닫았고, 해외에 일을 하러 나갔다가 돌아온 저자는 같은 동네에 서점을 열었습니다. 거리 두기 강화로 손님이 없을 땐 구독자들에게 보내는 주간 메일을 쓴다고 해요. 부디 다음엔 『오늘도 손님이 많지만 빵은 굽습니다』라는 책을 쓰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쁘게 꾸민 얼그레이 쿠키들이 한참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게 미안합니다. 치장한 채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알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한참을 위로하듯 바라보고 있으니, 속 깊은 쿠키들이 속삭입니다.
‘그래도 밀크티는 잘 나가서 다행이에요.’ _61p.

어쩌면 주인이 좋아서 하는 카페에 손님이 없는 건 우주의 법칙 같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_108p.

베이킹만큼 손님에게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일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다른 것들은 저만을 위한 일이지만, 베이킹은 손님을 생각하는 일입니다. 책을 만드는 것도 비슷해요. 읽는 사람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쓰는 것과 빵을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_148p.



3. 『휘파람 부는 사람』, 메리 올리버 지음



메리 올리버의 시와 산문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빨리 읽을 수는 없습니다. 한 번도 그녀가 산책하는 걸 본 적이 없고 이젠 영영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메리 올리버를 읽는 속도는 시인의 걸음걸이보다 느린 편이 알맞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을 음미하며 산책하는 중이니까요. 활자와 글줄의 여백 사이로 울창하게 자란 소나무 숲, “녹슨 색깔로” 반짝이는 바다, 재활용한 자재로 지은 작은 집이 보입니다.


『휘파람 부는 사람』의 원제는 『Winter Hours(‘겨울의 순간들’로 번역)』인데요, 한국어판에서는 시 「휘파람 부는 사람」을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그 시에서 휘파람 부는 사람은 시인의 동반자였던 말론 쿡입니다. 하지만 편집자 혹은 번역자가 메리 올리버의 삶을 휘파람이란 시어와 연관 짓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책 제목으로 더 매력적이기도 하니까요. 숲속을 걸으며 휘파람을 부는 사람, 새들도 어디선가 화답을 할 것 같아 기분 좋은 조마조마함 같은 게 느껴집니다.


메리 올리버는 자연계가 없었다면 자신은 시인이 되지 못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이게 적확한 표현이라 할 순 없지만, 자연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메리 올리버의 글에는 장엄함이 있습니다. 거대하고 웅장한 산세의 장엄, 종교적인 장엄이 아니라 곤충, 새, 하물며 흙에 찍힌 개의 발자국 같은 데서도 느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작고 부드러운 장엄함 같은 것이요. 산문 「겨울의 순간들」에서 시인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과 비인간, 생물과 무생물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고요. 그녀가 모든 존재에, 거북이 알을 훔쳐 먹으려는 너구리나 집 한 쪽에 놓인 의자, 길에 떨어진 돌멩이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결같고 단단하고 절대적인 믿음”이요.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 관찰의 결과를 산문과 시로써 우리에게 돌려줍니다. 이토록 수많은 영혼이 글에서 어른거리는데 어떻게 그 빛깔에 물들지 않을 수 있을까요? 수십 년간 같이 산 사람이 갑자기 휘파람을 불어 놀라듯, 어떻게 영혼을 되찾은 모든 것을 새롭게 보지 않을 수 있을까요?


부전나비라고 불리는 청색 나비들이 비밀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짝거리며 날아오른다. (…) 한 마리가 잠시 내 손목에 앉는다. 나비들은 나를 단풍나무와 크게 다른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다. 육중한 몸으로 땅에 누워 햇살을 듬뿍 받으며 행복하게 반쯤 잠들어 있는, 잎사귀에 감싸여 바람이 울부짖는 소리를 내는 이 나무 궁전과. _31p.


나는 내 시가 무언가를 묻기를, 그리고 그 시의 절정에서 그 질문이 응답되지 않은 상태로 남기를 원한다. 질문에 답하는 건 독자의 몫임이 작가와 독자 간의 약속에 명시되어 있음을 분명히 해주기를 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내 시가 고동침을, 숨차오름을, 세속적인 기쁨의 순간을 담기를 원한다. _45p.


이 우주에서 우리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그 두 가지 선물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불인 동시에 우리를 태우는 불이기도 하다. _76p.



4. 『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앞으로 남은 삶이 꿈꾸던 대로 흘러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언제 처음 느끼셨나요?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았던 기분이 완전히 바닥나고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이미 나의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는 것을 언제 처음 깨달으셨나요? 여기 어느 콘트라베이스 주자가 있습니다. 그는 국립오케스트라 단원이라는 지위와 콘트라베이스라는 악기의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자신의 삶이 성공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 성공은 한 메조소프라노의 사랑을 얻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콘트라베이스』는 전체 길이가 거의 2m에 달하는 콘트라베이스를 짊어지고 사는 남자의 모노드라마입니다. 모노드라마라는 형식은 참 흥미롭지요. 연극이라는, 문학이라는 본질을 잠시 잊고 상상해 봅시다. 거의 매일을 혼자 방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사람이 갑자기 많은 사람들 - 관객 혹은 독자 들을 초대해 자기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는 재미있는 음악사와 유명한 음악가들에 대한 험담을 소곤거리고,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 이야기도 늘어놓다가, 종종 전축으로 고전음악의 명곡들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맥주도 마시고요. 오늘 저녁 중요한 공연을 앞둔 그는 사실 단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세라!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성악가!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 주자의 지위는 형편없이 낮다고 합니다. 재즈라면 모를까, 음악사 전체를 봐도 마찬가지라고요. 훌륭한 작곡가들은 베이스 연주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도 없이 도저히 실연 불가능한 악보를 휘갈겨 놓았습니다. 혹 이 악기에 관심을 기울인 작곡가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은 아무도 모르는 무명입니다. 관현악단이건 실내악단이건 그들의 곡을 연주할 일은 없는 거지요. 이런저런 악기를 전전하다 결국 콘트라베이스 주자가 된 그는 그것으로 자기 인생에 진전은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어느 날, 이미 걸어온 길 때문에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좁아졌음을 알아차릴 때처럼요. 하지만 그가 콘트라베이스를 버릴 수 있을까요? 그의 소원대로 저 공간만 차지하고 예민한 악기를 박살내서 불쏘시개로 만들 수 있을까요? 그리고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게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요?


어릴 적 처음 읽었을 때부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쥐스킨트의 작품은 『콘트라베이스』였습니다. 갑자기 우리를 초대해 기쁨부터 절망까지 모두 늘어놓는 이 남자가 너무도 좋았습니다. 식상한 말이지만, 그의 이야기가 곧 우리 이야기이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대화의 마지막 즈음 그는 자신의 삶에 일대전환을 일으킬 상상을 하기 시작합니다. 세라에게 자신이란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각인시키기 위한 계획이지요. 이 책의 다른 서평 마지막엔 이런 질문이 많습니다. 그가 과연 그 계획을 실현했을까? 예전엔 그러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일 신문에 그의 이야기가 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케스트라의 전 장르 가운데 (…) 콘트라베이스가 빠진다면 그런 것들은 아예 모두 집어치워 버리고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언제 제일 진땀이 나느냐고요! 한번 물어보시라니까요! 콘트라베이스 소리를 듣지 못할 때 그렇다고 분명히 말할 겁니다. 완전 실패작이 되는 거죠. _10p.


이 사람들이 다 콘트라베이스의 대가들입니다. 정확히 살펴보면 저와 비슷한 사정들을 가진 사람들이지요. 어떤 절망감 같은 것에 의해서 작곡을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낸 곡들도 그런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작곡가라면 좀 더 나은 취향을 갖고 있을 터이기 때문에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곡을 쓰는 것보다는 좀 더 나은 곡을 썼겠지요. _57p.


저는…… 이렇듯 모든 것이 완벽한 이 집을 두고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여가 시간에는 바로 지금처럼, 두려움 때문에 그냥 눌러앉아 있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 이런 안정된 생활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공포로 두려워합니다. (…) 콘트라베이스를 계속 다루면서 생겨난 거지요.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채 베이스를 자유롭게 연주하며 살 수는 없거든요. 도대체 어디서 한단 말입니까? _98p.




글 신태진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을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www.instagram.com/ecrire_lire_vivr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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