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분의 책방: 리뷰]월간 여분의 리뷰: 2021년 3월

월간 여분의 리뷰: 2021년 3월



여분의 책방 인스타그램에서 매주 소개한 책을 모아 월간 '여분의 리뷰'를 발행합니다.

2021년 3월에 소개한 책 두 권을 모아 보았습니다.



1.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35년째 폐지를 압축해 온 남자가 있습니다. 한때는 멋도 부리고 사랑에도 빠져봤지만 이젠 오롯이 혼자가 된 사람입니다. 주변에는 폐지를 음식이자 보금자리로 여기는 생쥐들뿐이지요. 하지만 남자는 악취 가득한 지하실로 떨어진 폐지와 쓰레기 더미 속에서 귀중한 책들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고, 지금껏 그 책들을 읽어왔습니다. 괴테, 카뮈, 헤겔과 쇼펜하우어…. 그중 그가 가장 좋아하는 두 사람은 서로 양극에 서 있는 듯한 예수와 노자입니다. 그가 읽은 작가와 철학자를 비롯해 예수와 노자도 때때로 그의 지하실로 찾아오지요. 환영들의 방문은 남자를 기쁘게 합니다.


체코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폐지를 처리하며 평생을 살아온 한탸라는 인물의 독백으로 이뤄진 소설입니다. 무엇보다 책을 사랑하지만 35년 동안 그 책을 파괴하는 일을 해왔다는 아이러니가 소설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하지요. 체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독일의 지배에서 벗어나지만 소련에 의해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구 프로이센 왕실의 장서가 독일의 잔재라는 이유로 쓰레기처럼 버려졌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를 떠나 인류의 유산이 그런 취급을 받는 데 충격을 받은 한탸는 이후로 불행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태도를 지니게 됩니다. 그는 버릇처럼 말합니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실제로 그가 알던 많은 이들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도 지키지 못한 채 죽거나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저자 흐라발은 주인공 한탸의 기억을 통해 가슴 싸늘해지는 비극을 묘사하면서도 그걸 비극적이지 않게,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럽게 묘사합니다. 한탸가 평생 폐지 더미에서 찾아낸 책으로 교양을 쌓고 심오한 사고를 흡수해서 비극과 고된 일상을 견뎌내는 걸까요? 그보다는 권력과 부, 지위의 주변부에 사는 소시민의 무력감을 체화하고, 자기만의 세계(작품을 만들 듯 폐지를 압축하고 맥주를 들이켜고 책을 읽는 일상의 반복)에 침잠함으로써 가까스로 생존해 나가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너무 시끄러운 고독』 또한 실존주의 소설로 읽히지요.


5년 앞으로 다가온 은퇴 시점에 압축기를 사들여 자신만의 폐지 꾸러미를 만들겠다는 한탸의 꿈은 이번에도 ‘인간적이지 않은’ 변화에 위기를 맞게 됩니다. 젊은 시절, 그는 자신을 쫓아 집까지 따라온 집시 소녀와 함께 지낸 적이 있습니다. 난롯불과 매일 똑같은 소박한 음식, 하늘 높이 날리는 연만으로 모든 게 족했던 시절이었죠.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그래서 회상의 결말을 알기도 전에 이미 슬퍼지는 장면이었습니다. 거기서 한탸가 잃었던 건 그 집시 소녀의 이름이었습니다. 폐지 더미에 파묻혀 일한 지 35년 만에 휩쓸린 마지막 파고 속에서 마침내 그가 기억해 낸 이름이요. 하늘은 내내 인간적이지 않았지만, 그는 그다운 인간으로 살다가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한번 책에 빠지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책 속에 있기 때문이다 (…) 그 순간 나는 내 꿈속의 더 아름다운 세계로 떠나 진실 한복판에 가닿게 된다. 날이면 날마다, 하루에도 열 번씩 나 자신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소외된 이방인이 되어 묵묵히 집으로 돌아온다. _16p.

자비로운 자연이 공포를 열어 보이는 순간, 그때까지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모든 것이 자취를 감춘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공포가 인간을 덮친다. (…) 그렇게나 시끄러운 내 고독 속에서 이 모든 걸 온몸과 마음으로 보고 경험했는데도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니(…). _75p.

우리는 그렇게 영원히 사는 것 외에는 달리 바라는 것이 없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이미 오래전에 서로 합의를 본 것 같았다. 이 세상에 함께 온 우리는 한 번도 서로를 떠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_81p.



2.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세상이 어쩐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 지탄하는 거대한 악도 그렇겠지만, 상식이나 습관, 때로는 혁신을 가장하여 퍼져나가는 ‘스몰-미디엄 사이즈’의 부조리가 특히 그렇습니다. 아닌 게 확실한데 다들 그게 맞는다고 여기는 분위기라면 아니라고 말할 용기도 나지 않지요. 그럴 때면 나보다 훨씬 현명하고 신랄한 누군가가 나서줬으면 싶기도 합니다.


아마 칼럼을 쓰는 움베르토 에코가 그런 사람 중 하나였을 겁니다.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은 에코가 타계하기 전까지 시사지에 연재한 칼럼을 모은, 일종의 유고작입니다. 번역가가 붙인 제목이겠지만 어쨌든 타이틀에서부터 정신 나간 세상을 열심히 이해하거나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충고가 읽힙니다. 바보의 곁에서 바보가 되지 않는 실용적, 내면적인 처세술이 한바탕 쏟아질 분위기이고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같은 에코의 예전 에세이를 읽어보신 분이라면 책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기대감에 속이 근질근질할 겁니다. 자, 이번엔 얼마나 웃기고 통쾌한 융단폭격이 시작될까?


지금 우리는 기술, SNS, 음모론, 정보의 홍수와 조작된 정보(가짜 뉴스), 혐오와 차별 등이 만연하고 거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 이 중 한두 가지의 덫에 걸려있지 않은 이는 없을 겁니다. 에코는 서문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이 제시한 ‘유동 사회’라는 개념으로써 현대 사회를 진단합니다. 기술의 발전과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종교, 국가, 이데올로기나 철학 같은 공동체를 지탱하던 기존의 가치가 뒤로 밀리고, 구심점을 잃은 사람들이 삶의 중심을 자기 자신에게서만 찾게 된 것입니다. 예컨대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자고 만들어진 SNS도 실제론 자기표현의 수단에 더 가깝습니다. 제가 지금 쓰고 있는 리뷰도 타인에게 책을 소개하고 감상을 나누자는 의도인지, 저라는 개인이 책을 읽고 벅차서 푸는 ‘썰’에 지나지 않는지 모호하거든요.


에코의 칼럼엔 풍자와 역설, 패러디가 가득합니다. 그래서 재밌습니다. 진짜 소리 내서 키득거리게 될 때도 많습니다. 때로는 나 사진을 향한 비웃음이기도 하고, 때로는 내내 못마땅하던 누군가를 향한 비난의 공조이기도 하죠. 『미친 세상』을 읽고 『세상의 바보』를 다시 꺼내 뒤적였습니다. 메모를 보니 그 책을 처음 읽은 게 딱 10년 전이더군요. 칼럼 자체는 2~30년 전에 쓰인 것들이고요. 하지만 여전히 유효하고, 에코의 스윙은 더 과격했지요. 그런데 문득 10년 동안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기보단 오히려 세상의 바보가 되어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10년 동안엔 미친 세상에 녹아들어 완벽히 이해하게 되는 건 아닌지…. 안타깝게도 10년 후에 저를 다시 일깨워 줄 노학자, 항상 사진 속에서 짓궂은 미소를 짓던 노학자는 이미 세상을 떠나버렸네요.


모두가 정체성 위기와 가치 혼란에 빠져 방향타가 되어 줄 기준점을 상실한 이 유동 사회 때문에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되었는지 모른다. _48p.

사랑은 몇몇 사람을 향해서만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하지만, 증오는 수백만 명의 사람이나 한 국가, 한 인종, 다른 피부색이나 다른 말을 쓰는 인간 집단들을 향해 나와 내 이웃의 가슴을 분노의 불꽃으로 뜨겁게 한다. (…)
증오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범위가 넓고 많은 사람에게 해당된다. 또한 단 하나의 불꽃으로 거대한 군중을 껴안는다. _176p.

산문의 원칙은 ‘사물이 먼저고, 말은 그다음’이다. (…)
시는 정반대다. 시인은 먼저 말과 사랑에 빠지고,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온다. 즉, ‘말을 먼저 장악하면 사물은 절로 이어지는 것’이다. _256~257p.



3. 『미식견문록』, 요네하라 마리 지음



어느 아담한 서점에서 이 책을 꺼내 들었을 때, 한국판 제목과 원제의 차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미식견문록』과 『여행자의 아침식사(원제)』라는 제목이 한 점에서 벌어진 두 변이고, 진짜 내용은 둘 사이에 부채꼴로 널찍하게 들어있겠다 싶었지요. 요즘 음식에 관한 책을 주로 읽고 있기 때문에 구미가 돋았습니다. 부채꼴, 하니까 맛있는 소 부챗살도 떠오르면서요.


그런데 웬걸, 음식 칼럼인 건 맞는데 1부의 배경은 주로 러시아입니다. 저자가 작가이자 러시아어 동시통역사로 평생 살아왔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죠! 이건 예상 밖의 횡재였습니다. 음식 에세이에서 러시아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은 그리 흔치 않거든요. 심지어 원제인 ‘여행자의 아침식사’는 러시아에서 아주 맛없기로 소문난 통조림 이름이었습니다. 호텔, B&B 조식을 상상하던 독자에게는 샤슬릭 꼬챙이처럼 쿡 들어오는 반전이었죠.


저는 이 책으로 처음 접했지만, 저자 요네하라 마리는 생전에 미식가 혹은 대식가로 널리 알려진 듯합니다. 어렸을 적 키우던 병아리 떼가 모두 죽어버린 후 한동안 달걀도 닭고기도 입에 대지 못했던 저자가 맛있는 카스텔라에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새로 태어나는 도입부만으로도 이입이 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게다가 은근히 장난기가 있어요. 또, 음식 에세이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에 관한 정보, 역사, 루머와 그로 인한 해프닝 등도 상세하게 들려줍니다. 2부는 독특하게 세계 각지의 신화, 성경, 전래동화에 나오는 음식 이야기로, 3부는 진짜 ‘미식견문록’다운 미식 여행기와 소박한 일본 음식에 관한 이야기로 꾸려졌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지막지하게 추운 러시아 사하에서의 강 낚시. 현지 낚시꾼이 조금 따뜻해진 영하 53도에 일행을 이끕니다. 바다처럼 넓은 레나강의 얼음을 깨고 낚싯줄을 드리우니 금세 입질이 오는데요, 물고기를 잡아 올리자마자 몇 번 펄떡이다가 순식간에 얼어버렸다고 합니다. 그걸 어떻게 먹느냐? 대패로 ‘언 회’를 떠서 먹는다고 하네요. 정말 놀라운 겨울 나라입니다.


어머니가 “어, 거기도 달걀이 잔뜩 들어 있는데” 하셨다. 그 순간, 팔딱거리다 죽어간 병아리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계속 카스텔라를 먹었다. 기왕 독을 먹을 거면 접시까지 핥자는 심정이었다. 아니, 하필이면 그렇게 맛있는 카스텔라였을까. _24p.

그들은 맛이 없어 통 안 팔리는 통조림을 계속 생산하는 데 드는 막대한 낭비와 헛수고를 멈추고 맛을 개선하려 노력하기보다, 생산과 판매를 방치한 채 풍자하고 야유하는 우스개를 만드는 쪽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러시아인의 기막히게 비생산적인 열정, 그야말로 지극히 문학적인 재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_38p.

나라면 우선 인간을 ‘살기 위해 먹는’ 타입과 ‘먹기 위해 사는’ 타입으로 나누겠다. 이쪽이 성격을 훨씬 더 정확하게 맞힐 수 있으리라. 전자는 공상벽이 있는 염세주의적 경향의 철학자에 많다. 후자는 낙천적이고 인생을 즐기려는 현실주의자에 많다. (…)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양극단의 중간에 퍼져 있겠지. _201p.




글 신태진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을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www.instagram.com/ecrire_lire_vivr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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