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여분의 리뷰: 2021년 5월

월간 여분의 리뷰: 2021년 5월



여분의 책방 인스타그램에서 매주 소개한 책을 모아 월간 '여분의 리뷰'를 발행합니다.

2021년 5월에 소개한 책 세 권을 모아 보았습니다.


1.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이탈로 칼비노 지음



입이 걸고 예측 불가한 악동이 등장하는 소설, 그래서 언뜻 『호밀밭의 파수꾼』이 떠오르지만 성장 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는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은 이탈로 칼비노의 첫 번째 장편소설입니다. 배경은 제2차세계대전 말. 무솔리니가 실각한 후 이탈리아를 점령한 독일군에 맞서 레지스탕스가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빈민가에 사는 핀은 가족이라고는 매춘부인 누나 한 명 뿐이고, 친구도 없습니다. 그래서 동네 어른들이 모이는 술집을 들락거리며 만만한 사람을 웃음거리고 만들고 노래 한 곡 시원하게 뽑으며 그들과 어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핀을 차별하는 아이들의 세계에도, 그를 하찮게 여기는 어른들의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지독하게 외로운 이 아이에게 안식처가 있다면, 그건 땅에 굴을 파서 집을 짓는 거미들이 사는 계곡 어딘가의 비밀 장소뿐입니다.


소설은 술집 어른들이 핀에게 누나를 찾아오는 독일 해병의 권총을 훔치라고 종용하는 도입부부터 쉴 새 없이 전개됩니다. 핀은 권총을 훔치는 데 성공하지만 이내 감옥에 가고, 거기서 ‘빨간 늑대’라는 소년을 만나 함께 탈옥하지요. 그리고 산 속에서 활동하는 저항군 유격대에 들어가게 됩니다. 파란만장하지요? 실제로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칼비노의 경험이 빛을 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은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동시에 반파시즘을 기치로 내걸고 레지스탕스의 활약을 강조하는 ‘네오리얼리즘’으로 분류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전후 문학사조의 대표작에 그치지 않는, ‘고전’의 깊이를 갖추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자유와 해방이라는 대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 이면엔 치정과 배신, 나태, 복수, 잔혹함과 무력함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모든 유격대원이 조국을 해방하려는 신념으로 레지스탕스가 된 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어쩌다가, 심지어 죄를 짓고 도망치기 위해 들어온 사람도 있습니다.


핀은 눈치가 빠르고 영민한 아이지만, 이런 모순적인 세계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욕쟁이에다가 저질스러운 농담을 달고 살지언정 가장 순수한 영혼을 가진 존재가 바로 그 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핀은 친구가 필요합니다. 어른들 사이로 끼어들기 위해 혀를 내두를 만큼 개구쟁이가 되길 자처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의 관심사에 진정으로 공감해 주길 기대하지만, 그 기대는 매번 부서져 버립니다. 흙더미에 파묻어둔 차가운 권총이 자신의 유일한 구원처럼 여겨질 만큼요. 전쟁과 가난, 욕망과 폭력이 온 땅과 온 마음을 휩쓸고 있는 시대에 핀 또한 희생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은 작지만 참 희망적으로 보입니다.


레지스탕스, 독립군, 반란군이 주인공인 작품은 손에 땀을 쥐게 하지요. 특히 영화는 너무 조마조마해지는 바람에 잘 안 찾아보기도 합니다. 이 소설도 레지스탕스들을 주인공으로 삼았기에 비슷한 스릴(?)을 선사하는데, 그건 전투와 죽음 때문이 아닙니다. (솔직히 독일군은 산 저 아래 펼쳐진 배경 같습니다.) 핀과 그 주변 군상의 욕망과 괴벽이 제멋대로 충돌하는 데서 생겨나는 긴장감 때문입니다. 이탈로 칼비노의 전집을 시작하기 위해 집어든 작품인데 첫 만남으로 제격이었네요. 작가의 특징이라는 ‘환상성’이 더욱 드러날 이후 작품들도 기대가 됩니다.


권총을 스웨터 안에 숨기고 있었고 감히 그것을 만질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권총이 숨겨진 곳을 더듬었을 때 권총이 그곳에 없기를, 자신의 체온으로 녹아 없어져 버렸기를 바라기까지 했다. _28p.

“형법은 잘못된 거야. 한 사람이 인생살이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이 잔뜩 쓰여 있지. (…) 하지만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한마디도 없어.” _60p.

핀은 아직 적이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몰랐다. 핀이 보기에 인간이란 존재 안에는 벌레처럼 구역질 나는 어떤 것과 친구를 끌어들이는 따뜻하고 친절한 어떤 것이 함께 들어 있었다. _102p.



2. 『반쪼가리 자작』, 이탈로 칼비노 지음



내게도 양면성이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데서 선한 마음이 우러나오기도 하고, 반대로 스스로 혀를 내두를 만큼 나쁜 마음이 치밀어 오르기도 하지요. 인간에게 선한 면과 악한 면이 공존한다는 건 우리가 이미 경험으로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물론 극단적인 선이나 악으로 치닫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착한 쪽이든 나쁜 쪽이든 경향이라는 게 있을 순 있지요. 하지만 대체로 좁은 스펙트럼 안에서 저마다 가치관에 따라 삶의 우선순위를 달리하는 정도로 살아갈 것입니다.


테랄바의 메다르도 자작은 그 ‘예외’ 중 한 명입니다. 그렇다고 요즘 말로 ‘히어로’나 ‘빌런’이 됐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는 반으로 쪼개져 버렸습니다.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다가 대포를 정면으로 맞은 메다르도는 용케도 목숨을 부지했지만 ‘오른쪽’만 살아남았습니다. 문제는 메다르도의 악한 면만 고스란히 남은 반쪽이었다는 거지요. 테랄바로 돌아온 메다르도는 아버지의 호의를 잔인하게 짓밟아 병약한 그를 죽게 만들고, 잔혹한 통치로 수많은 사람을 교수형에 처합니다. 뿐만 아니라 동식물을 막론하고 반쪽으로 잘라 버리질 않나 진심으로 어린 조카를 해하기 위해 함정을 파고 독약을 주고 칼날을 내밀기도 합니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반쪼가리 자작』은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이후 그가 두 번째로 낸 장편소설입니다. 인간이 반으로 쪼개지며 온전한 악, 또는 온전한 선이 된다는 이 이야기는 잔혹 동화 같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초반 전쟁터 묘사나 오른쪽 메다르도가 저지르는 악행의 수위를 보면 아이들을 위해 쓴 작품은 아니겠다 싶지만요. 칼비노는 인간 안에 존재하는 선과 악 중 한 쪽만 발현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흥미로운 상상력을 동원해 실험합니다. 인간이라는 완전성에서 벗어나 반으로 잘렸을 때만 진정으로 ‘완전’해진다는 오른쪽 메다르도의 주장은 그 인물다운 논리라는 점에서 핍진성을 가지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포탄을 맞고 떨어져나간 메다르도의 ‘선한 왼쪽’도 살아 돌아오며 이 소설의 주제는 명확해집니다. 완벽한 선도, 완벽한 악도 ‘완벽하지 않다’는 거지요.


하지만 『반쪼가리 자작』의 백미는 양쪽 자작을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는데 그게 사람을 죽이는 기발한 교수형 기구를 만드는 데만 발휘되는 장인, 자칭 의사이지만 사람을 고치거나 살리는 일엔 관심 없고 무익한 연구에만 몰두하는 의사, 이교도로 찍혀 도망치던 중 그들만의 성경도 교리도 모두 잃었지만 믿음만 남아 오로지 규율로써 신앙을 증명하려는 교인들, 병을 얻고 마을에서 쫓겨난 비극적인 운명을 방탕하고 문란한 생활로 마취하려는 한센병 환자들. 이번 소설도 『오솔길』처럼 사태를 바라보는 어린아이가 화자인데요, 아이의 말을 빌리면 이들 역시 몸만 쪼개지지 않았을 뿐이지 “반쪽짜리 인간”들입니다. 아마 짐작이 가시겠지만, 그들은 우리 사회의 여러 계층을 상징하고 풍자하지요.


분량이 많지 않고 전개가 흥미진진해 금방 읽게 될 소설입니다. 하지만 읽는 내내 자문하게 되고 아이러니에 탄복하게 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온전한 것들은 모두 이렇게 반쪽을 내 버릴 수 있지.”
(…)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이 둔감해서 모르고 있는 자신들의 완전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나는 완전해. 그리고 내게는 모든 것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막연하고 어리석어 보여.” _56~57p.

“내가 성한 사람이었을 때 난 (…) 도처에 흩어진 고통과 상처 들을 느낄 수 없었어. (…) 반쪼가리가 되었거나 뿌리가 뽑힌 존재는 나만이 아니야, 파멜라. 모든 사람들이 악으로 고통받는 걸 알게 될 거야.” _84p.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_114p.



3. 『서울의 목욕탕』, 6699press 기획, 박현성 사진



마지막으로 목욕탕에 가신 게 언제인가요? 찜질방이나 스파 말고요, 간판에 ‘탕’이라고 크게 붙어 있고 이곳저곳 ♨가 그려져 있는 그 동네 목욕탕이요. 저는 친구들과 함께 지방 장례식장에서 밤새 술을 마시다가 새벽에 씻으며 피로를 풀었던 몇 년 전이 마지막이었네요. 넘어지면 안 되겠다 싶은 딱딱하고 까칠까칠한 바닥, 콧속으로 훅 끼쳐 들어오는 뜨뜻한 김과 약하게 감도는 물곰팡이 냄새, 주인의 취향에 따라 맨 타일만 붙어 있기도 하고 커다란 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한 벽. 뜨거운 탕에 오래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아버지를 따라 억지로 다닐 땐 몰랐는데, 어쩐지 그리운 공간입니다. 주말을 맞아 동네 목욕탕에 가려고 해도 코로나 시대에 조금 꺼려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아니, 여전히 살아남아 문을 연 곳이 있기는 할까요.


아마도 여기선 처음으로 소개하는 사진집일 『서울의 목욕탕』은 바로 그런 정서에서 기획된 책입니다. 서울의 30년 넘은 목욕탕을 찾아가 그곳의 기록을 사진과 인터뷰로 남기는 작업. 이미 사라져 버린, 앞으로 사라져 버릴 무언가를 보존하려는 시도이지요. 처음 이 책이 출간되는 걸 알았을 때도 호기심이 피어올랐는데, 솔직히 말하면 책값이 너무 비싸 사 볼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찾은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불과 3년 전에 촬영한 사진인데 그 너머로 보이는 건 그 열배에 달하는 시간, 그 많은 물로도 씻겨 내려가지 않고 고스란히 축적된 기억이었습니다. 아, 이 감당 못할 향수를 어떻게 한담…….


이 책이 단순히 보존, 혹은 복원을 위한 기획을 넘어서는 건 박현성 사진가의 사진 덕분입니다. 아무래도 목욕탕이다 보니 사람 없는 시간대를 골라 찍은 외관, 내부 사진과 인터뷰가 주를 이룰 거라는 예상을 뛰어넘어 꽤나 도발적인 시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세신 중이거나 탕 안에 들어 있는 손님들 사진도 찍은 거지요! 누드이긴 한데 ‘누드’라고 말하긴 좀 어려운… 뭐랄까요, 용기 있게 촬영을 허락해 주셨을(아마도 “뭐, 그러세요.” 하고는 쿨하게 목욕이나 하셨을) 분들의 사진은 책 속의 목욕탕을 정말 ‘목욕탕’답게 만들어 줍니다. 뿐만 아니라 몇몇 유머가 담긴 컷도 기록이나 감성을 넘어선 작품 사진으로 감탄을 자아냅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이런 에피소드도 떠오릅니다. 아버지와 함께 20대 중반까지 간헐적으로, 분기나 반기 의례처럼 목욕탕을 다니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저 혼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당시 모 국회의원이 새하얀 알몸으로 나타나 ‘서민 체험’을 하는 바람에 저도 알몸으로 엉거주춤 악수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저런 실언으로 욕을 많이 먹었던 사람인데 그렇게 다 벗고 탕 안에서 만나니 그냥 동네 아저씨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목욕탕은 겉에 두른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민낯으로 서로를 대하는 공간, 다른 사람을 이렇게까지 의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잠깐의 변칙 덕분에 마음까지 씻겨 내려가는 공간입니다.


나이 들다 보니 가던 목욕탕들이 하나둘 문을 다더라고. 집마다 목욕시설이 있으니 당연히 목욕탕 갈 일이 줄어드는 걸 뭐 어쩌겠어. 세월을 막을 수 없지. 그런데 난 목욕탕이 좋더라고. 탕 안에 몸을 담그면 세상 근심 잠깐이라도 내려놓고 주변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말이야.

여기가 문 닫으면 이젠 또 어디로 가나? 마치 고향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려나.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기분이려나.

역사는 동네에 있는 것 같아요. 삶을 살아낸, 이겨낸 터잖아요.




글 신태진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을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www.instagram.com/ecrire_lire_vivr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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