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 여행작가의 여행법][여행]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

직딩 여행작가의 여행법 #5



모처럼의 일이었다. 여행하는 열흘 내내 거짓말처럼 비가 퍼부었다. 잠시 빗방울이 멈추면 그 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미친 듯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지금껏 20여 년 여행을 하면서 이토록 지독하고 끈질기게 비를 맞으며 여행한 적은 처음이었다.


처음 하루 이틀은 그래도 믿었다. 그간 늘 운이 좋았던 것처럼, 행운의 여신이 손짓하여 아름다운 포르투갈의 햇살을 마주할 거라고. 그런데 사흘이 지나면서 조금씩 고개가 갸우뚱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그렇게 끝내 우산 없인 다닐 수 없는 여행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마음을 비우면서 포르투갈의 있는 그대로의 빛을 마음속에 담아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포르투갈행 항공권을 끊기 전까지 여정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유럽의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고, 직항은 당연히 없으며, 아무리 스카이스캐너를 검색하고 유럽 항공사 사이트를 뒤져보아도 저렴하면서 시간대가 적절한 항공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난 돈에 신세를 졌다. 한국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날아간 후 비싸지만 같은 터미널에서 떠나는 포르투갈 항공권을 결제한 것이다. 그리고는 룰루랄라 여행 날을 기다렸다.



긴 비행 끝에 도착한 리스본에는 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택시로 이동하며 본 차창 밖의 리스본은 유럽의 고풍스러움과 남미의 빈티지함을 섞어놓은 느낌이었다. 노란 트램이 눈에 띌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느라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왔고, 모든 건물과 창문을 꾸미는 포르투갈식 타일 장식(아줄레주) 또한 볼 때마다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저마다 다른 스타일과 컬러감을 뽐내는 타일의 향연에 취해 길을 걷는 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리스본에서 지내면서 포르투갈식 여행에 길들어졌다. 영어가 잘 통하진 않았지만 그들만의 친절한 표정과 몸짓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으며, 출출해질 즈음이면 언제 어디서나 선명한 노란색 에그 타르트를 사서 먹었다. 파삭파삭 쫄깃한 식감에 속도 든든해진다니! 더군다나 가격은 한 개 천오백 원꼴. 이 감동적인 맛이 한국이나 홍콩, 마카오에서 파는 것의 반값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내 비가 왔음에도 사진 속 풍경만큼은 화창한 이유가 있다.


유난히 다른 나라의 대학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당일치기로 코임브라도 다녀왔다. 포르투갈 중부에 위치한 코임브라는 이 나라 최고의 지성 도시로 유명하다. 1210년 개교한 코임브라 대학 때문이다. 12세기에 지어진 산타크루즈 수도원, 13세기에 지어진 교회도 압권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코임브라 대학 도서관이다. 고서에서만 나는 특유의 냄새에 대학의 유구한 역사가 느껴져 절로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여정의 마지막 도시는 포르투였다. 많은 이들이 방문 전부터 극찬해 마지않았던 그곳, 포르투. 리스본에서 출발한 버스가 포르투로 진입하던 순간, 도오루 강 위로 펼쳐지던 그림 같은 풍경이란…. 유럽의 재발견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을 만큼 아름다웠다.


주황색 지붕 사이사이 골목마다 노랑과 흰색으로 칠해진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리스본과 매한가지로 갖가지 타일이 그 외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강가를 둘러싼 와이너리 거리를 걸으며 포르투 와인에 취했고, 취기 때문인지 강의 아름다운 야경에 반해서인지 발걸음은 가벼웠다. 또, 조앤 K. 롤링이 <해리 포터> 시리즈를 쓰는데 큰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렐루 서점은 관광객의 입장 시간을 따로 지정해 놓았을 만큼 이 동네의 명소가 된 지 오래였다. 여느 관광객이 그러하듯 우아한 나선형 나무 계단 앞에 줄을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행복했다. 이런 여러 가지 매력 때문에 많은 이들이 유럽 최고의 여행지로 포르투를 손꼽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나의 지나친 감탄사 연발(?)이 신의 질투를 불러일으켰던 것일까. 우산 두 개를 사용하면서 매일 비 오는 포르투갈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았는데, 와이너리에 갔다가 카메라를 떨어트리는 사고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단언컨대 여행 중에 카메라는 내게 여권보다 소중하다. 내가 매 컷 최선을 다해 찍은 여행의 기록은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와인 시음을 하다가 그 차갑고도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카메라를 내팽개치고 말다니! 일순간 나도 모르게 지른 비명소리와 주변 사람들의 놀란 시선을 기억한다. 모서리가 비참하게 부서진 카메라를 다시 주워 담으려니 내 부주의를 원망하는 것도 부족해 나 자신을 용서하기 힘들 정도였다.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며 여정의 마지막이라 다행이라고 중얼거렸다. 비도, 카메라도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내가 늘 바라는 대로만 되진 않을 테니까.



결론적으로는, 그럼에도 슬프도록 아름다운 포르투갈이었다. 여행 내내 비가 오고 카메라를 박살냈다는 가슴 아플 만큼 잊지 못할 이유에서 또 포르투갈에 가야 할 명분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아니 감사하기까지 한 여행이 아닌가. 해가 짱짱 뜰 다음 포르투갈 여행을 기다리며 난 오늘도 그곳에 다시 갈 날을 꿈꾼다.





글/사진 루꼴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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