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다게레오 타입

신혼여행 특집



다게레오 타입 :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된 최초의 사진술이다. 루이 다게르에 의해 1839년에 개발되었다. 후대에 개발된 다른 사진술들의 단가가 싸지고 효율이 높아지기 전인 186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셰필드 건판이라 불리는 은 판때기와 요오드 용액을 사용한다. 그래서 아주 비쌌지만, 인간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세부 디테일까지 표현해 낸다고 한다.



신혼여행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기억나는 단어는 다게레오 타입이다. 19세기 위인들의 사진들처럼 배경은 흐릿하지만 인물만은 정교하다고 느껴지는 사진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아코디언 가게를 찾기 위해 헤매었던 조그만 시장이 섰던 그 거리 때문이다.


결혼을 준비하던 11년 전, 특히 신혼여행의 준비는 의견 충돌의 정점이었다. 휴양지와 도시? 유럽? 아시아? 혹은 아메리카? 가고 싶은 곳? 이동 수단? 휴가 스케줄 정하기? 하나부터 열까지 싸울 일들뿐이었다. 이것이 내 자신이 부릴 수 있는 마지막 허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서로 의견을 맞추기 정말 힘들었다.


어찌 되었든 파리와 런던으로 신혼여행지를 정하고 호텔과 공연을 예약했다. 쇼핑할 백화점, 악기가게, 시장, 벼룩시장 등도 여행 책자와 인터넷을 통해 정리했고, 식당, 고성, 박물관, 유적지의 교통편을 알아두었다. 계획표를 정리하고… 이 시점에서 많이 다퉜는데 계획적인 시간 배분으로 최대한 시간 낭비를 줄이자는 아내의 의견과 마! 여행이 슬렁슬렁 밥이나 먹고 탑이나 보면 됐지 하는 내 입장이 충돌해 버린 것이다. 결국은 계획표를 세우되 그때그때 결정하는 방식으로 합의를 봤다.


합의를 봤던 것 같다. 사실 여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1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여행을 가서 뭔가 이것저것 더 하려고 하는 사람은 내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한다.


다게레가 그가 고안해 낸 사진술로 찍은 사진. 타게레오 타입의 특성 상 좌우가 뒤집혀 있다.


정신없이 지나간 결혼식과 피로연 뒤풀이 만취. 어쨌든 비행기에 몸을 싣고 파리로 향했다.  프랑스의 첫인상은 어깨까지 늘어진 공항 경비대의 베레모였을까? 군복은 생각보다 별로였고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급하게 들어가서 먹은 생미셸의 케밥은 맛이 없었다. 첫날은 너무 피곤해서 근처 공연장이나 클럽을 찾아볼 생각도 나지 않았고 호텔 방 밑에 있는 아이리시 펍은 그냥 간판만 보고 지나쳤다.


여기서 충고.

아무리 젊어도 신혼여행은 역시 휴양지다. 허세란 숨만 쉬어도 돈이 펑펑 나간다는 휴양지에서나 누리는 것이지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는 공간에서, 게다가 대도시에서 누릴 것은 아니다. 결혼하느라 피곤했잖아. 우리 부부가 아무리 친구로 오래 지냈다고 해도 15년이었다. 내 인생의 반을 이 사람을 모르고 지냈었다. 그런 사람과 같이 살기로 결심하고, 같이 살기로 성전을 찾았고, 친척, 친구, 지인들을 모두 불러놓고 마치 강령회와 같은 결혼의식을 치렀다. 천주교라 성혼미사를 치렀으니 뭐 그렇다. 아무리 좋다고 해도 신나게 놀러 갈 기력은 없었던 것이다. 쉬다가 출국한 것도 아니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마셨으니 더 피곤했겠지.


‘인정하고 싶지 않군, 내 자신의 젊음으로 인한 과오라고 하는 것을’ 이런 건담에 나오는 샤아 아즈나블의 대사를 중얼거리게 된다.


ⓒ신태진


뭐 어찌 되었던 그렇게 허니문이 시작되었고 남들과 조금 비슷하거나 조금 다르게 여행을 즐기게 되었다. 밤의 에펠탑을 오르고, 샹젤리제를 걷고, 미슐랭 가이드인지에 나왔던 프랑스 요릿집에 갔다. (너무 놀라운 맛이어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집이었는데 스팅이랑 파바로티 닮은 아저씨 둘이 마른안주에 와인만 마시고 있더라.) 오페라 바스티유에서 오페라를 봤고 프렝탕을 비롯한 백화점들에서 가정용품들을 샀다. 명품 백 가게 앞의 중국 사람들은 그때도 많았다. 사실 파리에 처음 갔던 1994년에도 많았다.


하루 시간을 내어서 몽생미셸에 다녀오기도 했다. 칼바도스는 정말 맛있었다. 부인어른께서 칼바도스가 40도 가까운 술인 줄 모르고 드시다가 낭패를 보셨다. 모두가 흐릿한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는 19세기 흑백 사진 같은 추억들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파리의 악기 거리를 찾았다. 지하철 Europe 역이었다. 파리라면 역시 아코디언이지 하는 기대에 찾았던 악기 거리에 아코디언 샵은 없었다. 주로 클래식 악기상점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중 아코디언이 전시된 한 가게에서 아코디언을 살 만한 곳을 물었더니 주소를 적어줬다.


80 Rue Daguerre ‘Accordéon Paris’.


다음 날 아침 가게를 찾아갔다. 지하철에서 내리자 상점과 카페가 드문드문 있는 소박한 주택가였다. 골목은 무슨 행사 준비 중인지 물청소를 하며 쇠기둥 같은 것을 세우고 있고 건너편 노천카페에서 노인이 빵과 커피를 시켜놓고 졸고 있었다. 아랍계인 점원이 커피 한잔하라고 손짓하며 졸고 계신 그 어르신을 깨우고 있었다. 11년 전이지만 아직도 이 광경은 내 눈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리고 펼쳐진 소박하고 아담한 거리 풍경. 아주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밝은 벽돌색 가게들의 색감이 대도시의 피로를 잊게 해줬다. 아침 공기에 반사된 나의 신부의 뾰로통한 얼굴 또한 어찌나 귀여워 보이던지.


다게레 거리. ⓒMyrabella


두어 시간 후 아코디언을 구입하고 돌아온 그 거리에는 장터가 서 있었다. 생선가게와 치즈나 햄을 파는 정육점이 상당히 컸다. 거리에선 과일이나 채소 같은 먹을거리와 빵, 샌드위치 같은 것들을 팔고 있었고, 아까는 있는지도 몰랐던 가게가 비디오 가게였고, 장터에선 옛날 멕시코 흑백 영화의 DVD를 팔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이렇게 엉뚱하고 덕후 같은 광경을 마주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경탄하고 말았다. 부인 어르신은 아무래도 남편의 쇼핑에 지치신 듯했지만 설마 파리 하늘 아래서 마주치리라 생각지 못했던 광경에 우리 둘은…, 무슨 표정을 지었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려 11년 전이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라는 노래가 있다. 우리는 예전에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지금 서로 사랑할까 하는 가사처럼 우리의 만남은 필연적 혹은 운명적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계획 없이 발견한 다게레 거리처럼 그녀도 그냥 그렇게 살고 있었을 뿐, 나도 그냥 그렇게 살고 있었을 뿐. 만남은 그저 우연이었구나. 그것을 깨닫게 된 허니문이었다.


ⓒ신태진


여행을 떠나려 인터넷을 열어보고 책을 펼쳤을 때 무한히 펼쳐진 정보의 바다를 볼 때마다 그날의 그 거리가 떠오른다. 우연히 발견한 보석이 어쩌면 더 빛나 보일 수 있는 법. 아직도 프랑스에 여행가거나 공연하러 가는 친구들이 있을 때는 꼭 다게레 거리의 안부를 묻는다.


아코디언을 샀던 가게는 아코디언과 와인 같은 것을 파는 이상한 가게가 되어버렸더군. 이 글을 쓰며 다게레 거리의 현재 모습을 찾아보았는데 기억과 조금 달라도 익숙한 가게들이 보였다. 파리는 워낙에 볼 것이 많은 도시라 아무리 길게 일정을 잡는다 해도 모자라지만, 한 번쯤 동네 시장을 돌아다니는 마음으로 다게레 거리를 산책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Agnes Varda감독의 <Daguerréotypes> 1975년 작을 추천한다. 아쉽게도 볼 기회가 없었지만 다게레 거리 사람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다게레 거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다수의 사람을 다뤘다고 한다. Agnes Varda감독은 89세의 나이로, 올해 칸에도 작품을 출품하셨다.


해 지는 다게레 거리 ⓒTommie Hansen




글 김인수

크라잉 넛, 그러니까 바로 그 크라잉 넛에서 키보드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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