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여행을 떠나기 적절한 때

신혼여행 특집



도처에 도식이 있다. 사람 사는 일 이래저래 갈래가 있고 전형이 있지 않겠나. 뭔가를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옭아맨 의례도 더러 있겠지만, 사는 도리쯤으로 여긴다면 못 할 것도 없겠지. 예컨대 추석 같은 거. 게다가 나는 의식을 치르며 고양되는 부분들이 있다고 믿고 살기 때문에 어지간한 도식들은 허투루 건너뛰지 않는 편이다. 결혼 생활이 한 해 한 해 쌓여갈수록 아내에게 욕을 덜 먹는 건 이제 말하기도 지쳐서일지 모르지만, 부부 생활의 도식들을 꽤나 놓치지 않고 거쳐 왔던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력에다 지식을 연관시킨다거나, 남성의 사회화와 군대를 묶는다거나 하는 도식에는 완강하게 화를 내 왔다. 예컨대, 서양철학사 같은 책을 인류 발달사로 여기는 학번의 몸종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의심이 많고, 의심하는 것으로서 존재가 증명된다는 구절을 두고두고 우려 마시며 교양에 젖은 인간을 볼 때면, 참으로 졸렬한 생각이군, 자연과 인간, 인간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말장난 따위가 어찌 윤리의 한 축이 된다는 건가, 구시렁구시렁 미움도 많이 샀다. (용가리 같은 영화 얘기나 하자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까지 꺼내야 직성이 풀린다니, 나 원 참.)


이대 후문 빈티지BAR <섬>


쉬고 싶다면서 여행 계획을 짜는 것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도식이었다. 나에겐 여행지에서 쏟는 힘이 평소보다 월등히 컸기에, 살을 빼는 계기로 여길 만큼 여행을 하루하루 가진 힘을 온전히 소진하는 기간으로 여겨 왔다. 여기에 결혼식, 신혼, 여행이 병치되는 도식이라면. 그 번거로운 의식을 마친 뒤 화장도 못 지우고 수많은 머리핀을 머리에 꽂고 불평하는 여자와 공항을 향하는 게 옳은 일일까,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신혼여행을 가지 않기로 했다. 아내는 그전부터 지속해 오던 앨범 녹음을 재개해야 했고, 나는 겨우 잘 곳 하나 갈무리된 집안 정비를 마저 마쳐야 했다. 쉬다 오라는 권고들에 마음이 주춤거리기도 했으나, 과일을 몸에 바르는 일도 싫었고, 굿모닝 Sir, 아파요 Sir 하는 과한 대접에 우쭐대고 싶지도 않았다.


내 인격의 줄기는 그렇게나 미숙하고 삐뚤어져 있었던 것이다.


<섬>은 개업 10년을 앞두고 새 단장 중이었는데, 결혼식 이후 일정을 책임지겠다며 그날 아침 부랴부랴 공사를 마쳤다고 한다.


결혼식을 끝내자마자 일단의 무리를 이화여대 후문 근처 <섬>이라는 바bar에 몰아넣었다. 결혼 6개월 전 신촌 연세병원 외과 병동 침상에 나란히 누워 만나게 된 사람의 가게였다. 자정이 오기도 전에 술병과 사람이 바닥에서 한 데 뒹굴고, 희롱과 추파로 흥건한 소파, 테이블 위엔 음악에 취한 척 흐느적대는 취객들이 쌓였다. 이래서 신혼여행을 갔어야 했구나. 술집 문밖을 나섰는데도 처음의 인원들이 이탈자 없이 2차를 이야기할 때는 외투 안주머니 현금을 어루만지며, 지금쯤 적도로 향해가는 비행기 좌석에 앉아 있었다면 얼마나 호젓했을까, 꽤나 급박한 심정이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술자리가 둘로 나뉘는 바람에 정작 결혼 당사자인 우리가 따로 떨어져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결혼식 이틀 뒤부터 우리는 마치 3년쯤 지난 부부처럼 아침밥을 먹고 나서면 새벽이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면서도 집안 꼴이 엉성해지지 않게 유지해 가는 능숙한 부부 생활을 해 나갔다. 그리고 그해 겨울 아내가 대강의 앨범 활동을 끝내고 난 뒤 오사카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신혼여행은 아니었다. 신혼여행은 오로지 이탈리아가 아니면 안 된다 붙박아 놓기도 했고, 순전히 필요만 가득한 일정이기도 했다. 그때의 기록은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라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화되지 않는 더부룩한 제목의 책에 남아 있다.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일본, 중국과 교묘하게 얽히고 간사하게 숨겨진 시간 속에서 딱히 누구의 땅이었다 말할 수 없는 경계를 지으며 살아가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담아보려 했던 책이었다. 하지만 구절구절 남아 있는 건 처절한 다툼과 감정 소모뿐이었다.


이 사람은 왜 이런 길까지 걸어보려 하는 걸까, 얘는 왜 남의 여행 따라와서 저런 볼품 없는 소품 가게에 환희하는 걸까. 이 사람은 정말 지금까지 배가 안 고픈 걸까, 굳이 저런 카페에는 왜 들어가 앉아 있어야 하는 걸까. 교토에 대한 책을 쓰겠다면서 금각사도 안 간다는 게 말이 돼? 그런 책은 수없이 많은데 굳이 뭐하러 그런 글을 또 쓰려는 건데. 누구의 말도 다 그럴듯했기에 이해는 멀어져 갔다. 침묵이 길어지고, 아내는 급기야 자신도 ‘미친 사람과 여행하는 법’이라는 책을 내겠다고 포고했다. 그래서 술값이 많이 들었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브릭스 필자 스텔라님이 찍으신 사진. 지도에다 ‘피렌체 - 토스카나의 주도’라고 메모할 때는 이리 쉽게 7년이 가버릴 줄 몰랐다.


6년이 지난 지금은 얼추 같은 풍경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 비슷하게 서성이다, 엇비슷한 시기에 배가 고프다. 전라도, 강원도 한적한 곳에서 시내버스와 도보에 의존하다 조난당할 위기를 몇 번이나 겪었고, 북극해 앞 농장에 묵으며 기어이 오로라를 지켜보기도 했다. 독일 맥주를 찾아다닐 땐 화장실에 갈 때마저 맥주캔을 들고 다녔다. 동네 산책을 하도 다니다 보니 망원동 집값을 내다보는 일엔 꽤나 도통한 복식조가 되었다. 집에 가져다 놓으면 좋을 물건이 뭔지 취향도 같아졌기에 상점을 헤매는 시간이 줄었고, 통장 잔고마저 낱낱이 공개된 사이라 누가 누굴 따로 책임질 일도 없다. 준비도 한결 가벼워졌다. 일본, 대만 정도는 전날 비행기 표를 예매한다고 해서 풍찬노숙을 염려하지 않는다.


시에나는 교황청으로 가는 순례자들이 지나는 도시였다는데, 이 도시에서는 골목 하나하나 속속들이 걸어볼 생각이다.


신혼여행으로 계획만 해 두었던 이탈리아 토스카나 여행을 떠나기에 참으로 적절한 때가 오지 않았나, 요새 들어 그런 이야기를 종종 한다. 더 나이 들면 많이 걷기 어려울지 몰라, 시기를 당겨 보자, 한 달에 얼마씩 모아야 가능할까. 여행 자료를 모아 둔 서랍에서 7년 전 신혼여행을 준비하며 만들어 둔 파일을 꺼냈다. 손으로 그린 지도에, 읽어야 할 책 목록, 형광펜으로 강조된 여정, 매우 어수룩한 종이 뭉치였다. 그것들을 구글지도 앱에 표시해 두고 올해 일정을 훑자니, 정말 갈 수 있을까, 한 달 정도 시간을 비워도 될 만큼 일이 안 들어온다면 그게 더 곤란한 건데, 갑자기 상심이 깊어졌다. 그래도 합의된 건 우리는 아직 신혼여행을 다녀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진 어느 만큼 설레고 풋풋한 관계로 지내야 하겠지. 우리 사이에 부족했던 건 뒤늦은 의식을 치러내며 고양해 보기로 하고.




글/사진(1-3) 이주호

여행 매거진 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 『도쿄적 일상』을 펴냈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