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신혼여행에 관한 후일담

신혼여행 특집



18년 만이었다. 주변으로부터 우려와 조언을 넘어서 실로 다양한 오지랖과 참견까지 접한 게. 지난 세기인 1997년에 입대할 때 선배들로부터 들었던 우주 같은 경험담에 버금갈 정도로 결혼 선배들은 내 앞에서 신혼 여행담을 늘어놓았다. 그 이야기는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 써도 모자랄 판. 남의 부부가 여행 가는 것까지 걱정해주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니. 과연 한반도는 고조선 이래 줄곧 한민족 공동체답게 이들의 오지랖은 바다처럼 넓고, 하늘처럼 높았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선배들이 쏟아낸 의견의 양은 방대했지만, 그 의견의 내용은 두 가지뿐이었다는 점이다.



‘무조건 지고 들어가라.’ vs ‘신혼여행부터 주도권을 잡아라.’



선배들은 모두 암묵적으로 부부간의 관계를 긴장과 갈등의 관계로 가정하고 있었다. 부부 관계가 무슨 남북 관계인가. 남북 관계도 때로는 화해와 상생 무드가 조성되는데, 그렇다면 부부 관계는 지구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긴장 관계인 남북관계보다 더 첨예하고 지속적인 ‘적대적 동반자’ 관계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적과의 동침’을 십수 년째 유지하고 있는 결혼 선배들은 ‘마조히스트’란 말인가, ‘성인(聖人)’이란 말인가.


문득, 18년 전이 떠올랐다. 입대를 앞둔 내 앞에서 전역자들은 자신들의 고생담을 늘어놓았다. 훈련소에서 낮은 포복을 하다가 손바닥이 까져 살점이 보이는데도 정신력으로 버텼다는 둥, 자대배치를 받은 첫날 ‘앉아서 차렷’ 자세를 한 채 낮부터 아침까지 잤다는 둥, 막타워를 타다가 로프가 끊어져 순간 낙법을 구사하며 손바닥으로 땅을 치며 떨어졌다는 둥,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내 앞에서 허풍을 늘어놓던 때가 떠올랐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군 생활 내내 선배들의 고생담과 영웅담 비슷한 걸 목격하지도 못했고, 전해 듣지도 못했다.


싸울까 눈치보느라 즐기지 못했던 카일루아 비치


이토록, 남자들, 아니 인간의 ‘구라’는 인생의 시기를 거치면서 소재가 변할 뿐, 언제나 지속된다. 군대 일화, 신혼여행 일화, 이제는 육아 일화까지. 실제로 아내가 임신했을 때는 장모님부터 이웃집 아줌마까지 “아유.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좋아”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고, 막상 낳고 나니까 “아유. 가만히 누워있을 때가 최고야”라고 하더니, 조금씩 기기 시작하니까 “그래도 길 때가 천국이지”라고 말했다. 물론, 다음 단계의 말은 “걸을 때가 좋지. 뛰면 끝장나”일 것이다. 이렇듯, 인류는 후대에게 ‘내일은 오늘보다 더 끔찍할 것’이란 메시지를 전해왔다.


선배들의 우려와 오지랖을 뒤로하고, 긴장과 갈등과 오해와 분쟁이 도사리고 있는 신혼여행지로 떠났다. 나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하와이가 아니라 DMZ로 떠나는 심정이었다. 드디어 도착한 날, 향후 부부 관계의 주도권을 결정할 첫날밤의 호텔에는 O2 대신 긴장감으로 구성된 공기가 가득했다, 라기보다는 에어컨으로 낮춰진 쾌적한 공기만 가득했다. 갖은 언쟁과 불화의 시발 장소이자, 잠자리 실력의 평가무대가 될 침대에는 ‘자, 어디 한 번 실력 발휘해봐’라는 시선의 아내가 누워있었다, 라기보다는 그저 갓 결혼한 새내기 부부를 환영하는 하와이 전통 꽃목걸이가 놓여 있었다. 아울러, 역시 선배들에 따르면 아담과 하와 이후 탄생한 모든 부부들이 겪어온 논쟁, 즉 ‘쇼핑이냐!’ ‘휴식이냐!’란 주제로 대격론을 펼칠 무대인 와이키키 해변 거리에는 팔짱을 낀 커플들이 웃으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중 몇몇 커플의 눈빛에서 스파크가 튀었으니, 이 스파크의 성격은 대격돌을 앞둔 남녀 전사의 눈빛 싸움에서 나오는 레이저 같은 것이었다 라기보다는 ‘자기. 우리 어서 방에 가요. 홍홍홍’ 같은 무언의 신호였다.


나는 사고했다. ‘과연 이들이 남북관계보다 첨예한 갈등을 간직한 커플이란 말인가?’ ‘아냐, 부부관계는 치약을 짜는 방식 문제로 남이 될 수도 있는데, 저러다 갑자기 싸우는 게 부부야.’ ‘부부관계는 웃음으로 포장된 지뢰밭이자 휴화산이야!’ 그러고, 속으로 다짐했다. ‘조심하자. 지뢰밭이야!’ 도쿄에 사는 일본인이 언제 지진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간직한 채 웃으며 밥도 먹고, 섹스도 하듯, 나 역시 시한폭탄을 안은 것처럼 14박 15일을 보냈다.


역시 눈치보느라 즐기지 못했던 야자수가 즐비한 마우이의 풍경


푸른 바다의 카일루아 비치에서, 석양에 야자수 실루엣을 뽐내는 마우이에서, 청춘들이 파도 위에서 젊음을 발산하는 호놀룰루에서 나는 지진 공포의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돌아다녔다. 이 경험으로 인해 내 인생의 바보짓에 또 하나의 경력이 추가되었다. 입대를 하고 나서야 고생담과 영웅담을 늘어놓은 선배들이 모두 ‘민간 차원의 소설가들’이었다는 것을 자각했듯(고백하자면, 이들에게 배운 덕에 나는 아예 소설가가 돼버렸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고서야 이들의 오지랖과 조언 역시 ‘그냥 술자리에서 내뱉는 안주 같은 레퍼토리일 뿐’이란 걸 또 한 번 절감했다.


이런 깨달음은 좀 서글프지만, 한국 사회에서 오지랖은 영어권의 “How do you do?” 같은 것이다. 어제 몇 년 만에 만난 한 동생은 “오빠! 반가워요. 진짜 몇 년 만이에요. 살이 더 쪘네요!”라며 예전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음을 친히 밝혔다. 그러니까, 슬프게도 이 사회에서 ‘참견’은 안부를 건네는 인사이자, 친해지고 싶은 언사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친해지고 싶어 하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토록 할 말이 없단 말인가. 세상에 많고 많은 말 중에, 왜 유독 긴장하게 하고,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을 꺼내며 애정을 표하려 할까.


그나저나, 그래서 신혼여행은 어땠냐고? ‘잔뜩 긴장하고, 포기한 채로 다녔으니, 제대로 즐겼을 리가 있나? 나 원 참...’ 때문에 하와이는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다음에는 제대로 즐기고 싶다.


이 역시 눈치 보느라 즐기지 못했던 호놀룰루의 칵테일




글/사진(2~4) 소설가 최민석

소설가. 주변에서 많은 조언을 들으며 살고 쓰고 있으며, 귀가 얇다. 쓴 책으로는 소설 <능력자>, <쿨한여자>,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 에세이 <꽈배기의 맛>, <꽈배기의 멋>, <베를린 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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