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라일레이, 내가 사랑한 바다

신혼여행 특집



신혼여행지를 고민하다 라일레이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특별한 곳을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보다, ‘우리’가 즐거울 수 있으려면 우리에게 어울리는 곳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라고 하긴 이상하지만 여하튼 막연히 ‘맥주가 있는 해변’ 어디쯤을 검색하던 나는 이리저리로 흘러다니다가 그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 속에는 조그만 해변 바(Bar)가 담겨 있었다. 바라고는 하지만, 바텐더가 음료를 내어주는 좁은 나무 선반이 가게의 전부였고, 모래사장 위로 펼쳐진 돗자리 몇 개가 테이블을 대신하고 있었다. 뭐랄까, 둘이 겨우 어깨를 붙이고 앉으면 끝인 비좁은 돗자리가 테이블이라니, 그 사실이 조금 뻔뻔하게 느껴지면서도 재미있었다. 어차피 해변에 앉을 거라면 모래 위에 앉든 돗자리 위에 앉든 뭐가 다를까 싶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부러 거기 꼬깃꼬깃 앉아 있는 게 귀엽기도 했다. 아무튼 그 귀여운 해변의 여행자들은 모두가 나란히 노을 지는 바다를 향해 앉아 맥주나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사진이니 당연하지만 그 풍경이 무척이나 고요해 보였다. 해가 지는 걸 보니 서쪽 해변이구나, 생각한 것과 동시에 저 사람들 틈에 함께 앉아 있고 싶단 조바심이 마음속을 휘저었다. 내가 찾던 ‘맥주가 있는 평화로운 해변’이 바로 그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어떤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기도 한다.




#1. 서쪽의 해변과 동쪽의 맹그로브 숲


라일레이 비치는 태국 끄라비(Krabi)에 있는 작은 해변이다. 섬은 아니지만, 육지에서 이어지는 곳이 온통 바다에 면한 암벽이라 배를 통해서만 닿을 수 있다. 주로 아오낭(Ao Nang)에서 배를 타고 십 분 정도 들어가는데, 많은 여행자들이 편의시설과 숙소가 밀집해 있는 아오낭을 거점으로 삼고 라일레이에는 하루나 반나절 정도 다녀가곤 한다. 이 말은 배가 끊기는 저녁 6시부터는 라일레이가 온전히 그 안에 머무는 이들만의 작은 섬이 된다는 얘기다. 이 섬 아닌 섬에 기꺼이 갇혀 있고 싶어서 나는 더 고민할 것도 없이 라일레이 안에 숙소를 잡았다.


지도로 짐작할 때에도 그리 넓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라일레이는 어디든 걸어서 닿을 수 있을 만큼 작은 해변 마을이었다. 이곳은 해변을 따라 리조트가 모여 있는 서 라일레이와, 로컬 식당과 여행사, 바 등이 모여 있는 동 라일레이로 나뉜다. 십 분 정도면 동서를 가로지를 수 있을 만큼 작은 섬(아닌 섬)인데 동쪽과 서쪽의 풍경이 사뭇 달라 놀라울 정도다. 서 라일레이에는 아름다운 해변과 기암괴석이 펼쳐져 있고, 동 라일레이에는 밀물과 썰물에 따라 표정을 달리하는 개펄 위로 맹그로브 나무들이 비현실적인 풍경처럼 서 있다. 조식을 먹는 숙소의 레스토랑은 서쪽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향해 열려 있었다. 그랬으니 나는 매일 아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아침을 먹으며 바라보는 풍경이 대체 이 정도라니’ 하는 감탄 속에 바보처럼 입을 벌린 채로 식사를 하곤 했다. 낮 동안엔 라일레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해가 지면 동쪽의 식당이나 바를 찾았다.


그건 마치 매일 매일 다른 하루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 작은 마을은 세계처럼 넓어지기도 한다.


동라일레이


서라일레이



#2. 이런 곳이라면 맥주를 끝도 없이 마시겠어


라일레이처럼 작은 여행지에 처음 도착하면, 여기 무엇이 있을까 싶어 가볍게 가슴이 뛴다. 짐을 풀어두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막 도착한 여행지를 한 번 둘러보러 문밖을 나설 때의 설렘은 매번 겪어도 처음 같이 좋다. 저녁을 먹을 식당은 어디쯤에 있는지, 맥주 마시기 좋은 바는 또 어디쯤인지 눈여겨 봐두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슈퍼와 인상 좋은 주인이 과일주스를 갈아주는 노점도 익혀둔다. 그러다 보면, 머무는 내내 찾아오고 싶어지는 아주 멋진 곳을 발견하기도 한다.


라일레이에 도착한 첫날. 바다를 따라 쭉 이어진 동 라일레이 산책로를 걷다가 인적이 드물어지는 곳에 다다라서 이 바를 발견했다. 여행자들이 머무는 중심지에서는 한참 떨어져 있어, 마치 어쩌다가 이곳까지 오게 된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곳 같았다. 커다란 나무 아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자리에선 어디에 앉아도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한눈에 반하고 만 것은 나무 위에 툭, 올려놓은 듯한 자리였다.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가지 끝에 걸쳐놓은 자리는 위태로워 보여서, 구경하라고 마련해둔 자리인지 앉으라고 만든 자리인지 알 수 없었다. 바의 주인에게 저기에 앉아도 되느냐 묻자 "Sure!" 하고 시원한 대답이 돌아온다. 과연 이 나뭇가지가 우리 두 사람의 무게를 버텨줄까 하는 심정으로 조심스레 중심을 잡고 건너가 보았다. 생각보다 튼튼한 것을 확인하고 나선 그게 재밌어서 괜히 술잔을 들고 그 위를 왔다 갔다 했다. 썰물이라 바다는 저만치 물러나 있었다. 낮에 오면 바로 아래까지 바닷물이 찰랑거리겠구나. 꼬질꼬질한 삼각 쿠션에 머리를 대고 눕자 나뭇잎 사이로 별들이 보였다. 그 순간 라일레이를 두 배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다.


나무 바



#3. 놀랍게도 잊고 있던 사실 하나


라일레이에서는 그 외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해가 뜨거운 한낮엔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도 했고, 깎아지를 듯한 암벽에 매달려 클라이밍을 하는 청년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숙소에서 프라낭(Phranang) 비치로 이어지는 길에는 야생 원숭이들이 많았는데 손에 들고 있던 사과를 어린 원숭이에게 나눠주었다가 대장 원숭이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 원숭이들의 집결지(?) 옆으로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었는데 그 위로 튼튼한 동아줄이 여행자들을 유혹하듯 흘러내려 와 있었다. 낡은 표지판은 이걸 잡고 올라가면 사진 속의 아름다운 뷰 포인트와 호수를 만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해수욕을 가던 차림 그대로 절벽에 올랐다가 죽을 고생을 하기도 했다.


스노클링 투어를 떠난 날엔 머무는 동안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보았고, 밤바다에 들어가서 팔다리를 휘저을 때마다 야광 플랑크톤들이 별 가루처럼 반짝이는 것을 보기도 했다. 저녁이면 로컬 바에 앉아 뮤지션들이 펼치는 공연을 보며 맥주를 배가 부르도록 마셨다. 그게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면 바의 주인은 늘 “벌써 가는 거냐!”고 묻곤 했다. 놀아도 놀아도 놀 게 남았다는 표정, 이제 막 즐거워지려는 참인데! 싶은 그 태도가 재밌었다. 나는 취한 채로 그들과 동네 친구가 되고 싶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곤 했다.


뷰 포인트에서 바라본 풍경. 절벽을 기어오를 만하긴 했다.


그랬는데, 나를 라일레이로 이끈 사진 속 그 해변 바에는 결국 한 번도 앉아 보지 못했다. 놀랍게도 나는 그 사실을 돌아와서야 깨달았다. 다녀온 뒤에도 친구들이 “거긴 어떻게 알고 갔어?” “거긴 왜 갔어?” 하고 물으면 늘 옛날이야기라도 시작하듯 “그건 말야,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지…” 하는 톤의 농담을 하곤 했는데, 그런 사람치고는 어이없을 정도로 그곳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라일레이가 가진 다른 것들이 머무는 내내 나를 사로잡아 그곳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채로 마냥 즐거웠던 것 같다. 이래서야 어떡하나. 해변의 그 돗자리 바에 앉아 보려면 다시 라일레이를 찾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다음 달이 되든, 다음 해가 되든, 아주 먼 훗날이 되든.


어떤 여행은, 그렇게 계속되기도 한다.





글/사진 김신지

쓰고 찍고 마시는 사람. 열대의 여행지에서 마시는 모닝 맥주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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