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미야]캄보디아, 국경 넘어 힌두의 세계까지 #2

카페 미야 #9



“이제 어디 가고 싶어요?”

“배가 고파요.”

“그럼 우리 밥 먹으러 갈까요?”


재키가 데려간 곳은 씨엠립 시내 한 쪽의 허름한 식당이었다. 관광객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식사메뉴는 1.5달러, 음료는 0.5달러로 단돈 2달러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으니 주머니 사정에도 딱 맞았다. 맛 또한 기가 막혀 매 끼마다 이번엔 무엇을 먹어볼까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해가 너무 쨍쨍해서 다니기 힘들 때에는 여기로 달려와 관자놀이가 띵하도록 망고 쉐이크 두 잔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쉬어가곤 했다. 씨엠립에 머무는 동안 재키의 단골 식당은 나의 단골 식당, 단골 카페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새벽 방콕에서 출발해 저녁까지 종일 먹은 것이라고는 샌드위치 한 쪽이 다였다. 우리나라 장조림과 비슷한 돼지고기찜을 시켜 두 볼이 미어지도록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재키는 자기가 주문한 음식의 야채와 계란, 고기를 내 접시에 덜어주었다. 재키의 음식까지 싹싹 먹어치울 동안 재키는 앙코르왓이 그려진 맥주 한 병을 마시며 흐뭇하게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재키가 데려간 식당


앳된 얼굴의 재키는 벌써 툭툭이 기사 경력 7년이라 내가 들고 있는 한국어 가이드북 표지만 보고도 어떤 일정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툭툭이 기사로는 돈벌이가 시원찮아 언젠가는 방콕에 가서 일을 하고 싶은데,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영어를 익히는 일이라고 했다.


“영어를 배우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동네 중학교 영어 선생님한테 가서 청강하게 해달라고 졸랐어요. 겨우 허락을 받아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나는 직업이 툭툭이 기사니까 매일 새벽까지 공부한 단어를 손님한테 연습하다보니 자연스레 늘게 되었어요.”


삶에 충실한 사람만이 내뿜는 에너지가 있다. 그것이 일이건 사랑이건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할 때 사람은 반짝반짝 빛난다. 재키의 인상이 좋았던 까닭도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배어있기 때문이었다.


재키와 종업원


졸음이 밀려온다. 첫날부터 너무 강행군이었다. 앞으로 3일 동안 드넓은 앙코르 유적지를 누비려면 충분히 쉬어야 할 터. 계산을 하려는데, 종업원은 활짝 웃으며 재키를 가리킨다.


“재키가 벌써 계산 했어요”


너무 당황하며 미안해하는 나에게 재키는,


“Next life(다음 생에)!”


짧게 말하고 툭툭이의 시동을 건다. 호텔에 도착해 내일 만날 시간을 정하고 돌아서려는데 봉지 하나를 내민다. 언제 샀는지 1.5리터짜리 생수병이 두 개 들어있었다.


“호텔에서 사먹으면 비싸니까 이걸로 마셔요.”


재키의 츤데레 애정표현에 나는 점점 매료되어갔다.




"내게 남아있는 그의 편린들을 지우기 위해 떠나온 여행이었다."



다음날 재키는 말끔히 차려 입고 호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툭툭이 바퀴 고장으로 어쩔 수 없이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다니기 시작했다. 앙코르 유적지는 사원 수만 37개에 달하는 넓은 곳이라 관광하는 시간만큼이나 초원을 달리는 시간이 길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팜트리 길을 쌩 달리면 바다처럼 깊은 하늘 속으로 풍덩 빠져버리는 것 같았다.


팜트리가 어우러진 풍경


새로운 모습과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감탄을 내뱉으면 재키는 오토바이를 세웠다. 그리고 실컷 구경하도록 내버려두고는 재촉하지 않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노래도 부르고, 수다도 떨다보니 재키와 나의 이심전심이 깊어져 툭툭이 바퀴가 고장난 것은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입안이 흙으로 버석거리고, 피부가 새까맣게 타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듬성듬성 나타나는 마을 안을 구경하며 시원한 대나무 집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동네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면 다들 수줍게 미소로 답하곤 했다.


앙코르톰


마을뿐만 아니라 앙코르의 모든 사원마다 나를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남자친구한테 엽서 보내세요.” 하며 색이 바랜 엽서를 파는 아이, 팔 물건이 없어 꽃을 엮어 만든 반지를 내밀고는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 조잡한 물건을 늘어놓고 따뜻하게 데워진 돌 위에 잠이 든 아이도 있었다. 다들 절실한 이유로 나왔을 텐데 관광객과 입씨름하는 되바라진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아이들


앙코르는 아이들에게는 일터이자 놀이터였다. 젖은 흙바닥을 도화지 삼아 돌벽에 새겨진 힌두 신을 솜씨 좋게 그리기도 하고, 왕의 전용 수영장이었던 ‘쓰라쓰랭’에 퐁당퐁당 뛰어들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찬탄해 마지않아했던 앙코르 톰의 바욘 사원에서 본 조각의 미소가 왠지 익숙했던 이유가 있었다. 커다란 석상의 치켜 올라간 눈꼬리와 두툼한 입술은 시시각각 해의 기울기에 따라 달라져 장난스럽기도 온화하기도 한, 볼수록 끌리는 캄보디아 아이들의 얼굴모습이었다.


앙코르톰 바욘 사원의 석상


앙코르 유적이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워낙 크고 대단한 유적이라 돌멩이 하나도 반출할 수 없는데, 앙코르 왓, 앙코르 톰과 같은 유명한 사원에나 관리자가 눈을 번뜩이고 있고, 외진 곳에 있는 사원은 그대로 방치되어 훼손의 우려가 있었다. 무너진 사원 안은 폐허처럼 으슥하고 복잡하기도 했는데, 길을 잃기 일쑤였다. 결국 재키는 사원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대신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그 덕에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여행 온 듯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앙코르를 떠나는 날 마지막으로 들린 사원은 안젤리나 졸리의 영화 <툼레이더>로 유명해진 '따프롬'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지붕 위로 무서운 발톱 하나가 스윽 내밀고 있는 것이 입구에서부터 심상찮았다. 안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팜트리가 사원의 지붕에서 죽 흘러내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따프롬


“왜 나무를 걷어내지 않아요?”

“나무와 건물이 엉켜있어서 나무를 없애면 건물도 무너져버린대요.”


사원의 내부는 그저 뿌리를 내려뜨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칭칭 휘감고 내리 눌러 건물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단단히 움켜쥐고 있어서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꽉 잡고 있었다. 미련한 내 모습 같았다.



4년의 사랑이 끝났다.


그와의 추억은 가시 같았다. 내게 남아있는 그의 편린들을 지우기 위해 떠나온 여행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 저 팜트리처럼 내 속에 깊게 뿌리내리고 단단히 휘감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와 함께 했던 날들은 내가 살아온 나의 삶이었다. 강제로 떼어내면 내가 무너져버린다고 나무는 내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니 스스로 뿌리를 거둘 때까지 둘 수밖에…. 따프롬 앞에서, 한번 물렁해진 심장은, 좀처럼 단단해지지 않았다.



해는 푸른 들판 위로 이지러지고 있었다. 재키의 하얀 셔츠는 바람에 펄럭였다. 어둠이 내린 시내, 오토바이 위의 연인들은 좁은 도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 손은 핸들 위로 또 한 손은 뒤에 앉은 연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들의 사랑은 스치는 반딧불처럼 밝고 가녀렸다. 빗방울이 툭툭 나렸다. 재키는 오토바이를 잠깐 세우고 행상에서 분홍색 우비를 사서 내게 건넸다. 센 바람에 벗겨지지 않도록 매무새를 고쳐주었다. 한없이 무너질 것만 같던 내 마음을 재키는 또다시 덤덤하게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짧은 캄보디아 여행이 끝나고 있었다.


재키와 나




글/사진 miya

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옥스퍼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서울 체류자. 대륙을 가리지 않고 오지를 휘젓고 다녔지만, 이제는 카페에 나른하게 앉아 일기를 쓰고 엽서를 쓴다. 창밖을 바라보는 맛이 더욱 좋아져 걷기도 싫어져 버린. 아니, 아니, 나이 때문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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