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와 함께 헬프엑스를]페루의 고산으로 살러 가다

모모와 함께 헬프엑스를 #3



리네아LINEA 버스터미널은 강원도 홍천의 시외버스터미널보다도 작다. 리네아는 페루의 많은 버스 회사 중 하나다. 한국 여행자들에겐 ‘크루즈 델 수르’ 같은 대형 회사가 더 익숙하지만, 호스트 넬슨이 리네아가 가격 대비 괜찮다고 조언해 줬다. 남아메리카는 이런 버스 회사 정보조차 찾기가 쉽지 않은데, 현지에 사는 호스트에게 미리 물어볼 수 있으니 교환여행의 장점은 이런 소소한 데서도 눈에 띈다. 마찬가지로 유심 카드도 대체로 다들 ‘끌라로’를 선택하지만, 넬슨은 ‘비텔’을 사용해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맞았다. 끌라로보다 비텔이 더 좋은 가입 조건을 제시하고, 산악 지역에서 신호도 잘 잡힌다. 나는 대체로 호스트에게 현지 적응을 위한 정보를 얻는 편인데, 현지인 호스트는 거의 항상 최적의 선택을 알려준다. 


아침 일찍 숙소 사장님의 도움으로 우버를 잡아타고 리네아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기사가 내려준 터미널 앞은 회색 빛깔 내리깔린 페루의 서민 지구다. 터미널 입구에 진을 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택시 기사들의 둥근 얼굴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열댓 개의 시선이 내 발걸음을 그림자처럼 쫒았다. 이른 시각의 터미널은 적당히 한산했다.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카운터가 몇 개 있었고, 플라스틱 대기 의자에는 보따리를 껴안은 아주머니와 소박한 행색의 아저씨 들이 고개를 숙이고 조각상처럼 앉아 있었다. 빈 줄에 무거운 배낭을 놓치듯 내려놓으며 자리를 잡았다.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는 어리숙한 여행자가 절대 아니에요’와 같은 분위기를 풍겨보려고 새침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지만, 누군가 그때의 나를 조금이라도 가까이 와서 보았다면 두려움으로 흔들리는 눈동자와 빳빳이 곤두선 팔의 솜털들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리네아 버스 터미널


한 할아버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리네아 버스 이름표를 목에 걸고 있는 것을 보니 직원이다. 너 저기 카운터에 가서 짐을 부치렴, 라고 하는 것 같은데 “Si, Si(네, 네)”하고 웃으면서 그냥 보냈다. 가만 보니 카운터에 가서 뭔가 짐표 같은 것을 받고 짐을 맡기면 그 짐을 한꺼번에 대형 카트로 실어서 직원이 해당 버스 짐칸에 실어주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서비스라서 혹시 추가 요금이 붙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하는 표정으로 짐짓 여유로운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스페인어를 몰라서 바가지 쓰는 변을 당하지 않으려고 웬만한 것은 대부분 “Si, Si”와 미소로 무장한 ‘아는 척 하기 전략’을 고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추가 요금은 없었다. 친절한 직원 할아버지가 두 번이나 와서 불러준 덕분에 결국 짐을 잘 부쳤다. 할아버지는 어색한 발음이지만 영어도 조금 할 줄 알았다. 곧 타야 하는 승객이 짐을 부치지 않고 꼭 껴안은 채 눈만 굴리고 있으니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혹시나 추울까 겨울 내의를 따로 챙기느라고 평소와 약간 다른 패턴으로 짐을 쌌다. 게다가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혹시나, 정말 혹시나 짐칸에 실은 큰 배낭이 없어질 수도 있음을 대비해서 노트북과 서류 등 중요한 것은 모두 버스에 들고 탔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타자마자 160도로 젖혀지는 널찍한 소파 의자와 청결한 버스 안 화장실에 나는 감탄을 연발했다. 허리 협착 때문에 복대까지 했던 비행기 이코노미 석에서의 시간과 비교할 수 없이 만족스러운 환경이었다. 이층의 제일 앞자리는 앞이 훤하게 보인다는 장점이 있지만 빛이 사방에서 쏟아져서 잠을 자기 좋은 환경은 아닐 것 같았다. 내가 탄 아래층은 옅게 선팅이 되어있어 바깥이 안 보이는 것은 아쉽지만 고산을 극복하기 위해 이참에 푹 자두자 싶었다. 새벽부터 긴장해서 짐을 싸고 풀고를 반복했더니 타자마자 곧 졸음이 쏟아졌다. 널찍한 의자는 양반다리를 해도 될 정도로 안락했다. 9시간 동안의 이 멋진 환경이 단돈 40솔(14,000원)이라니, 크루즈 델 수르 같은 대형버스 회사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 입구에는 ‘Frena Acoso’, 그러니까 성추행 방지 캠페인 포스터가 떡하니 붙어 있었지만 똥똥한 페루 아줌마와 나, 둘 뿐인 일층 공간에 긴장감은 없었다. 버스는 평균 80km의 속도로 순조롭게 달리고 있었다.


비행기보다 편했던 리네아 버스 좌석


한참을 신나게 자고 일어났다는 느낌에 실눈을 뜨니 변한 것 하나 없이 평화로운 버스 안 풍경이 가늘게 새어 들어왔다. 으응, 몇 시지, 눈을 비비고 핸드폰을 보니 12시 30분이다. 9시간의 여정 중 고작 2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약간 숨이 차고 오른쪽 다리가 저린 것 같아 얼른 ‘고도계’ 앱을 확인해봤다. 지난밤 고산을 대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다가 찾아내서 설치한 앱이다. 몸에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해서 관찰하다 보니 아주 조그만 증상도 ‘이것이 고산증인가!’ 하고 호들갑을 떨게 된다. 과연, 고도는? 


216m.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서 코가 팽, 하고 나올 정도로 헛웃음을 지었다. 숨이 찬 건 허리 복대 때문이었고, 오른쪽 다리가 저린 건 두 시간 동안 가방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리네아 버스와 중간 휴게소


그 뒤로도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다가, 사막 속의 오아시스 같은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도 취하다가 내처 5시간을 더 달려서 우아라스 리네아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게 오후 7시였다. 리마에서 개통한 페루 번호로 왓츠앱을 등록하고, 넬슨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버스 터미널에서 날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어둑어둑한 가운데서도 상점과 인적이 보이는 도시의 초입으로 버스가 들어서니 두려움과 흥분, 설렘으로 가슴이 뛰었다. 짐칸에 실었던 배낭과 끌개를 찾고 복도로 나가서 두리번거리며 두어 발짝 걸을 즈음에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모모?”


캡을 아무렇게나 눌러 쓴 다부진 인상의 페루인 남자가 악수를 청해왔다. 키도 눈높이도 나와 비슷했는데 얼굴도 또렷이 보이지 않는 어스름한 불빛 아래에서도 군인처럼 단단한 느낌이 드는 사람, 그가 넬슨이었다. 내가 허리 때문에 배낭을 메지 못하고 끌개에 얹어서 끌고 있는 것을 보고, 도와줄까? 하더니 내가 아, 하는 사이에 곧 물동이처럼 배낭을 가볍게 머리에 이고 성큼성큼 앞장섰다. 우리는 영어로 대화하지만, 넬슨이 처음 몇 번 이후 계속 스페인어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보고 그에게 영어보다 스페인어가 더 편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넬슨은 영어로는 단어를 고르며 아주 천천히 이야기했다. 하지만 의사소통에는 크게 무리가 없었다. 


“오느라 수고했어, 여기서 두 블록만 걸으면 돼.”


어느덧 밖은 매우 어두워졌다. 도시라고는 하지만 서울처럼 훤한 가로등이 아닌, 간신히 길만 밝혀놓은 정도의 불빛이다. 칠이 벗겨지고 군데군데 깨진 조악한 건물들 사이에서 페루인들의 짙은 피부는 어둠 속에 감춰져 두려움을 자아냈다. 게다가 우리가 다시 산속으로 올라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 두 블록은 큰길도 아니고 뒷골목이었다. 마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넬슨을 놓칠세라 서둘러 그의 형체를 따라 걸었다. 


버스는 곧 도착했다. 15인승의 낡아빠진 미니버스였는데, 의자 하나가 어린이 변기만 하다. 그런 버스에 어른, 아이가 섞여 이십여 명이 탄다. 늦은 시각이라 산 위로 올라가는 버스가 많지 않은지 모두들 바투 앉으며 꾸역꾸역 한 명, 두 명을 더 태운다. 다행히 우리는 제일 뒷좌석 두 자리에 엉덩이를 붙일 수 있었다. 우리 뒤에 탄 할아버지 한 분은 자리가 없었는데 자연스럽게 좌석과 좌석 사이 바닥에 앉으시는 품이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닌 것 같았다. 이제 버스는 누구도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게 되었고, 그 와중에도 차비 걷는 소년은 다람쥐처럼 잽싸게 손을 내밀어 요금을 받았다. 넬슨은 동전 걷는 소년에게 내 배낭을 차 위에 좀 실어달라고 부탁하고는, 흐으, 하고 웃었다.


“자, 여기서부터 30분 올라가야 해.”


그는 한국에서부터 비행기 시간은 얼마나 걸렸는지, 배는 고프지 않은지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그가 가리킨 우아라스 시내가 오렌지빛 별들이 뿌려진 까만 캔버스 같았다. 몇 달 전부터 메시지로만 인사했을 뿐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 낯선 사내를 따라 산속으로 올라가고 있지만, 그의 예의 바르고 조용한 행동에 이상하게도 경계심이 들지 않았다. 그가 메시지마다 붙이던 “Greeting from the distance(멀리서 안부를 보내며)”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넬슨의 집이 있는 우아라스산


버스는 우둘투둘한 산길을 꽤 한참 동안 올라갔다. 올라갈수록 가로등도 점점 적어졌는데 차 안의 전등까지 꺼져서 우리는 거의 서로의 얼굴을 분간할 수 없었다. 엄청난 돌길을 구르는 타이어가 무사할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할 때쯤 넬슨이 이제 내리자, 하고 구부정하게 일어섰다. 동전을 건네받은 소년이 차 위에서 배낭을 내려주었다. 넬슨은 다시 배낭을 머리에 이고 언덕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위는 고요했고 숨을 가만히 쉬면 어디선가 개울물 흐르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단 한 개의 가로등은 밀려오는 산의 어둠을 밝히는 촛불 같았다.


“내 집은 여긴데 너는 오늘 저 언덕 위의 다른 집에서 잘 거야, 그리고 내일 여기로 짐을 다시 옮길 거야.”


잘 보이지도 않는 어느 나지막한 건물 앞에 멈춰 서서 그렇게 말하더니 넬슨은 또다시 짐을 들고 집 옆의 샛길로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길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의문스러운, 두 명은 절대 한 번에 지나갈 수 없는 좁은 폭이었다. 발밑 조심해, 머리 조심해. 크고 작은 돌로 엉성하게 만든 계단을 올라갔다. 거의 양손을 짚고 기어 올라가야 할 정도로 경사가 대단한 데도 날 듯이 오르는 그의 뒤를 따라 나도 정신없이 계단을 올랐다. 몇 계단 지나지 않아 숨이 차서 큰 숨을 들이쉬다가 흡, 하고 그대로 멈춰 버렸다. 


어둠 속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네 마리의 네 발 달린 하얀 동물, 그것은 페루의 상징인 ‘라마’였다. 두 마리는 앉아서, 두 마리는 서서 이쪽을 보고 무언가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별빛과 달빛, 그리고 라마의 빛으로 주위가 밝혀지는 것처럼 라마의 하얀 털은 어둠 속에서도 분명하게 보였다. 방으로 가려면 라마를 지나가야 했는데 우리가 가까이 가니 라마는 후다닥 뒷다리로 일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이 오밤중에 방문한 손님이 신기한지, 질겅질겅 입을 놀리며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다. 


넬슨이 열어준 방은 게스트를 위한 도미토리인지 이층 침대 두 개가 단출하게 놓여 있었다. 껍질도 벗기지 않은 통나무가 매트리스를 떠받들고 있다. 직접 나무를 잘라서 만들었음을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넬슨은 서둘러 옆방에서 담요를 서너 개 손에 잡히는 대로 가져다주더니, 뭐 좀 먹을래? 하고 묻는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산속이라서 그런지 어깨가 으슬으슬했다. 안에 입을 등산용 패딩을 가져오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했다.


“괜찮을 것 같아?”


몇 번이나 묻더니 그럼 내일 봐, 하고 열쇠를 쥐여 주고는 넬슨은 방문을 닫고 사라졌다. 사방이 모두 컴컴하고 풀벌레 소리만 들려오는 것이 아무래도 오늘 이 집에서 자는 생물은 나, 그리고 라마뿐인 것 같았다.


가방에서 꺼낸 선물 받은 빼빼로. 기압 차이로 터질 듯이 부풀어 있다.


그런대로 짐을 풀고 더듬더듬 화장실을 찾아 씻었다. 화장실은 방에서 나와서 또다시 라마를 지나가야 했는데, 라마는 역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경계하면서도 새로운 사람이 매우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목을 길게 뺐다. 가져온 따뜻한 옷을 모두 껴입고, 목도리에 양말까지 두 개나 신고 담요를 덮었는 데도 추위가 가시질 않아서 한껏 몸을 오므리고 잠이 들었다. 새벽에 문득 소변을 보는 꿈을 꿨는데, 순식간에 현실되는 듯한 오싹함에 소스라치며 잠에서 깼다. 한국에서 지어온 고산병 약을 한 알 먹었더니 부작용으로 이뇨 증세가 나타났던 것이다. 마치 잠든 적 없이 깨어있었던 양 순식간에 현실을 깨우친 나는 서둘러 더듬더듬 화장지를 찾고, 핸드폰으로 라이트를 켜고, 그 와중에도 열쇠로 문을 잠그고 정신없이 방에서 나섰다. 


화장실까지는 5미터, 아직도 뭔가를 질겅질겅 씹고 있는 라마를 지나야 한다. 아까는 풀벌레에 개 짖는 소리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미물도 모두 잠이 들었는지 그야말로 정적이다. 서둘러 볼 일을 해결하고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다. 아아, 새로운 곳에 온 첫날 심각한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세 번 지나쳤다고 여유 있게 라마에게 손 인사까지 하고 방으로 되돌아왔는데, 열쇠를 꽂고 돌려도 방문이 열리지 않는다……? 오, 젠장.





글/사진 김소담(모모)

교환여행, 헬프엑스(HelpX)로 전세계에서 ‘살아보고자’ 하는 생활인. 여행보다는 일상을 좋아하여, 장소보다는 그곳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선호한다. 대안적인 삶, 환경문제, 퍼머컬쳐(Permaculture), 채식주의, 공동체 등에 관심이 많고 서울의 공동체 ‘성미산마을’에 산다. 《모모야 어디 가? : 헬프엑스로 살아보는 유럽 마을 생활기(2018)》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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