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서점들]소길리, 책방오늘

제주의 서점들 #3



서점 여행을 하다 보니 독립서점과 동네서점의 차이가 무엇일까 고민스러워졌다. 독립서점은 독립출판물 시장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기 위한 서점이고, 동네서점은 주민들을 위한 서점이 아닐까 싶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일 뿐. 서점은 존재 자체로 옳다. 


잡다한 생각들로 며칠간 길을 잃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효리 언니가 살았다는 소길리에서 책방오늘이란 곳을 만났다. 효리 언니의 흔적을 보고 싶어 간 것은 아니었고, 소길리라는 이름이 언젠가부터 친숙해져 한번쯤 가보아야 할 것 같았다. 



소길리 마을회관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차가운 시골 공기가 나를 먼저 반긴다. 공항과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조용한 동네였다. 추위 때문에 많이 걷지는 못했지만 왜 효리 언니가 이곳에 살았는지 미루어 짐작이 가던 동네였다. 「효리네 민박」 이후 동네가 들썩였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카페, 식당이 몇 군데 있었다. 동네 분들에겐 이런 작은 변화도 새로운 것들처럼 느껴지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여전히 소길리만의 느낌은 잃지 않고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책방오늘은 녹색농촌체험관 공간에 있었다. 앞에 놓인 화분에 핀 꽃들에 정신이 팔려 이곳이 서점이 맞나 싶었다. 첫 만남부터 녹색농촌체험관이라니. 어리둥절한 채 책방 문을 열었다.


들어서서 가방을 내려놓자 사장님이 책방 안내를 해주신다. 한쪽에는 구매 후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있고, 그 외 책장에는 5,000원을 내면 내어주시는 커피와 함께 서점 안에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있다.



재미있는 책들이 많아 보여서 5,000원을 내고 조용히 책을 읽기로 했다. 커피를 마시지 못해서 말씀드렸더니 난로 위에 따뜻한 보리차를 내어주셨다. 마침 굽고 있는 군고구마도 먹겠냐고 하셔서, 냉큼 그러겠다고 했다. 


제주의 사라지는 곳들에 관심이 많아 비자림, 강정마을에 관해 쓴 책을 읽었다. 자연을 보전하는 것과 개발하는 것, 그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걸까. 제주에 와서 먼저 찾았던 두 곳 이야기를 차분히 읽다 보니 자연을 지키기 위한 분들의 노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몇 권의 그림책들을 뒤적였다. 사장님이 뒤쪽에도 그림책이 더 있다며 새로운 공간을 안내했다. 새로운 공간을 보자마자 아이처럼 냉큼 신발을 벗고 들어가 편안히 여러 그림책들을 뒤적이며 읽었다. 그림책은 잘 모르는 분야이지만 읽을수록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책들이란 생각이 든다. 한번 빠져들면 헤어날 수 없는 그림책의 세계. 순간 아이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가 어떤 책은 너무 심오해서 한참을 들여다보게 했다.



책방오늘의 인스타그램을 보니 그림책 치유 모임을 안내하고 있었다. 사장님께 여쭈어보니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다고 해서 덜컥 신청했다. 이 공간은 마을에서 임대를 놓는 듯한데 이전에는 그릇을 파는 카페였다고 한다. 사장님은 4월부터 책방을 열어 운영하고 있었다. 새로 생긴 공간이라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일까. 내가 있는 동안 딱 한 커플이 잠시 책방에 들러 사진을 찍고 떠났다.


그 후로도 그림책 치유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두 차례 더 책방오늘을 찾았다. 그림책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책 한권으로 누군가와 그리 오래 이야기를 나눈 것은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처음 만나는 이들과 깊은 이야기도 하고, 눈물도 흘리게 되는 경험이라니. 이상하리만큼 편안했던, 신기한 경험이었다.


현재 책방오늘은 제주시 시내로 이사했다. 하지만 여전히 책방오늘의 느낌은 변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 책방오늘의 인스타그램에는 늘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라는 문구가 함께한다. 사장님은 그 문구를 매일 적으며 어떤 마음일까 궁금해진다. 쑥스러워 건네지 못했던 질문을, 다음번에 가면 해볼까 한다. 

 




글/사진 chantrea

오랫동안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집을 이고 다니며 생활하고 싶습니다. 4년 동안의 캄보디아 생활을 뒤로 하고 지금은 제주에 삽니다.

http://blog.naver.com/rashimi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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