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서점들]모두의 안식처가 되어준, 노형 유채꽃머리

제주의 서점들 #8



제주에 와서 내가 가장 많이 들렸을 서점, 유채꽃머리. 그곳을 처음 간 것은 제주에 온 지 한 달 즈음이 될 무렵이었다. 글 쓰는 일에 늘 목말라 있던 나는 블로그에서 우연히 ‘책 만들기 모임’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마침 당시 지내던 숙소와 유채꽃머리가 가까워 직접 가보기로 했다.

 


서점은 제주시 시내 초입, 한라대학교 부근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5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 사장님이 아주 따뜻하지도, 아주 질척이지도 않은 온도로 나를 반겨주었다. 서가에는 꽤 다양한 분야의 책이 있었다. 베스트셀러부터 고전, 에세이, 소설, 사장님의 취향으로 보이는 책들까지. 서점을 둘러본 후 책 한 권을 사고, 책 만들기 모임에 관해 물었다. 사장님은 잠시 이야기를 하고 가지 않겠냐며 따뜻한 차를 내주었다. 모임부터 책 취향, 글쓰기, 서점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누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났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그렇게 오랫동안 즐겁게 이야기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마음껏 내어주시던 차와 사탕


자연스레 책 만들기 모임에 참여했다. 독립출판 작가이자 편집자였던 작가님과 여섯 명이 모여 몇 가지 주제로 글을 쓰고, 자기가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저 글을 쓰고 읽는 행위였지만 내게는 치유가 되는 날들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내 글을 듣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고, 고개를 끄덕여주기도 했다. 한 달간 쓴 글을 모아 『유채꽃머리에 둘러앉아』라는 책을 만들었다. 요즈음은 모두 인쇄소에서 재단을 하여 책을 만드는데 우리는 인쇄한 것을 직접 손으로 재단했다. 비록 판매될 책은 아니었지만 직접 책을 만들어보는 경험은 신선했다. 손재주가 없어 비뚤비뚤하고 멋없는 책이어도 내 서가에 가장 소중한 책이 되었다.


책 만들기 모임의 결과물


책 만들기 모임을 하는 동안에도, 그 이후에도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시내에 갈 일이 있을 때면 유채꽃머리에 들렀다. 무슨 이야기든 늘 잘 들어주는 사장님 덕분에 서점을 가는 것이 즐거웠다. 특히 공통으로 좋아하는 책을 발견할 때에는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여름에는 책 만들기 모임에 함께한 사람들과 라이터스 마켓(Writers market)도 열었다. 일종의 플리마켓으로 즉석에서 소설 쓰기, 엽서에 즉흥으로 한 줄 쓰기, 캐리커처 그리기 등 글과 그림이 있는 작은 마켓이었다. 나는 질문 엽서를 제작해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위로의 글이나 떠오르는 짧은 문구를 나누었다. 이틀간 진행한 라이터스 마켓은 흥미로운 시간이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에 자신감을 가져다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라이터스마켓 열던 날


그렇게 유채꽃머리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제주에 정착하는 데 큰 이유가 되었다. 사장님과 친분이 쌓여 종종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친구들이 몇몇 있긴 했지만 한국에서 50대 남성과 친구를 맺게 될 줄이야. 사장님은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었고,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도록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그런데 나의, 그리고 모두의 안식처였던 유채꽃머리는 아쉽게도 올 초에 사장님의 개인 사정으로 문을 닫았다. 좋아하는 공간을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아쉽고 울적했다. 유채꽃머리는 한 번 찾으면 꼭 다시 찾게 되는 동네서점이었다. 유채꽃머리를 찾았던 이들은 모두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일상을 함께 나누던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라지는 허전함은 생각보다 컸다. 여전히 서점이 사라진 허전함을 어찌할 길 없지만, 서점에서 찾은 의미들을 떠올려보았다. 유채꽃머리 같은 동네서점, 독립서점은 공간 자체만으로 동네를 밝히는 힘이 있다. 동네서점은 동네 주민들이 만나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일상을 살아갈 소소한 힘을 주기도 하는 공간이다. 나처럼 어릴 때부터 동네서점을 곁에 두고 살았던 사람에게 동네서점은 없어서는 안 될 곳이다. 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안식처가 되어주는 서점들이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오래도록 스며있기를 바란다.



※ 그동안 제주의 책방들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사진 chantrea

오랫동안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집을 이고 다니며 생활하고 싶습니다. 4년 동안의 캄보디아 생활을 뒤로 하고 지금은 제주에 삽니다.

http://blog.naver.com/rashimi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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