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미야][여행] 모로코, 페즈 - 오감이 지도인 곳

카페 미야 #3



나는 ‘시모’에게 페즈에서 제일 좋은 카페로 데려다 달라고 주문했고, 시모는 Hotel Sahrai 루프탑으로 안내했다. 은인인 시모에게 할 수 있는 근사한 대접이라고 해봐야 카페에서 모히토 한잔 사는 거였다. 테라스 아래로 페즈의 메디나(medina,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도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거리를 가득 채운 무슬림들의 기도 소리가 들린다. 온 메디나가 그들의 바람을 동글동글 풍선처럼 피워 올리는 것 같다. 성스러운 순간이다.


시모 덕분에 나는 사하라 사막으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   *   *


하늘에 별은 총총한데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카사블랑카를 경유하는 작은 비행기는 좌석의 반도 채우지 못하고 떠났다. 승객들은 동네 이웃처럼 앞좌석 뒷좌석 가리지 않고 와글거렸다. 페즈에 도착, 까다로운 입국 심사를 마치고 한참을 기다려도 내 가방은 나타나지 않았다. 항공사 직원과 고성방가에 삿대질까지 오가며 알아낸 절망적인 사실은, 가방의 행방은 알 수 없다, 매일 밤 이 시간 비행기가 도착해봐야 안다, 혹시라도 가방이 도착하면 호텔로 연락할 테니 가지러 와라였다. 자기가 무슨 잘못이냐며 오히려 목에 핏대 세우는 직원을 이길 여력이 없었다. 나의 모로코 여행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사하라 사막을 가기 위한 모든 걸 준비해왔는데! 가방 속에 담긴 준비물들을 머릿속으로 헤아린다. 하늘에 별은 총총한데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너는


덜컹대는 차에 몸을 싣고 20분 남짓 달려 메디나에 도착하고도, 구불거리는 골목을 더듬거려 한참을 들어가야 했다. 창문 하나 없는 붉은 흙벽, 낡고 커다란 나무문은 수용소의 외관 같았다. 사진발에 속았다고 한숨을 내쉬는 찰나, 문이 열린다. 그건 천국의 문이었을까? 푸른색 이슬람 전통 문양의 타일로 둘러싸인 벽과 바닥, 작은 분수와 화초가 잘 가꾸어진 안뜰이 나타난다. 오래된 샹들리에와 테이블이 근사하다. 객실은 안뜰을 두고 ㅁ자형으로 둘러 싸여 있고, 모든 창이 안뜰을 향해 있다.


이 호텔은 부유층이 살던 모로코의 전통 가옥 리아드(Riad)를 개조한 곳이다. 리아드는 모로코의 고온 건조한 기후와 바람에 견디기 위해 두껍게 흙벽을 바르고, 이슬람 문화권의 폐쇄적인 사생활 보호, 정확히 말하면 ‘보호’라는 사명 아래 여성들을 감추어놓기 위해 모든 창문을 안뜰 정원으로 향하게 두었다. 5만 원짜리 호텔방이라고 하기에는 놀랍도록 화려하다. 매끈한 침대 시트 위에 대자로 뻗었다. 아, 내 가방... 어떻게든 되겠지. 앞선 걱정을 하기엔 너무 지쳤다.



다음날 모로칸식 아침식사로 건강히 배를 채우고 전체가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챙겨온 지도는 푸른색의 아라베스크 문양의 부즐르드 문(Bab Boujloud)에서부터 이미 무용지물이었다. 문 뒤로 모로코식 찜요리 타진(Tajine) 냄새가 솔솔 흘러나오는 식당 골목에 발을 들이자마자 나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9세기 페즈는 모로코 이슬람 왕조의 최초 수도로 선정되며 종교, 정치, 문화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고, 지중해와 사하라를 잇는 북서부 아프리카의 상공업 요충지로 등극하면서 외부의 탐나는 먹잇감이 되었다. 외적의 침입이 얼마나 두려웠던지 주민의 불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하여, 9600개가 넘는 길을 좁히고 굽혀가며 지상 최대의 미로를 만들어냈다.


모로코식 아침식사


부즐르드 문


시장 초입부터 털도 깎지 않은 채 눈알이 뒤집힌 낙타 머리가 대롱대롱 걸려 있는 푸줏간이 등장해 혼비백산하게 만들더니, 다리가 튼실한 닭들이 닭장에서 죽을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싱글대며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닭 장수는 정다운 이야기 중간 푸드덕 대는 닭 한 마리를 들어 올려 군더더기 없는 솜씨로 단번에 해체해 버린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달걀은 아직도 따뜻한 기운을 내뿜고, 시식용으로 입에 넣은 올리브는 짭조름하고 고소해서 와인 한 잔 생각이 난다. 제 몸보다 큰 짐을 싣고 힘겹게 걸음을 떼는 당나귀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좁은 골목에 차도 수레도 다니지 못하니 당나귀는 천 년 째 메디나의 대체 불가능한 운송 수단이다. 골목에서 맞닥뜨릴 때면 뒷걸음쳐 길을 내주어가며 나는 점점 시장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땅땅 때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발길을 향하니 나무망치로 구리, 황동을 두들겨가며 각종 냄비와 솥을 만들어내는 금속공예점 거리가 나온다. 고소한 냄새를 따라 걸으면 어김없이 화덕이 밀집해있는 빵집 거리가 나온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굴뚝 아래에는 이슬람식 공중목욕탕 하맘(hammam)이, 알록달록 붉은 천으로 뒤덮인 거리는 카펫 상점들로 가득 차 있다. 이제야 안다, 메디나에서는 오감이 지도다. 언제 페즈를 떠날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된 마당에 구태여 바삐 찾아다닐 곳도 없으니, 이번엔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이상야릇한 악취를 따라, 코를 킁킁거리며 따라가 본다.






"신이 함께하기를!"



코를 킁킁거리며 이상야릇한 냄새, 사실은 그냥 악취를 따라가니 가죽제품 시장이 나온다. 애타게 손짓하며 나를 부르는 주인을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빼곡히 들어찬 가죽 옷, 가방, 신발 아래 민트 잎이 수북이 쌓여있다. 주인은 내게 한 움큼 쥐어준다. 좁은 계단을 몇 바퀴 돌아 꼭대기에 올라가니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 거대한 팔레트 모양의 가죽 작업장 ‘테너리(Tennerie)’가 펼쳐진다. 냄새의 진원은 여기였다. 민트 잎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지 않고서는 숨도 쉬기 어렵다.



페즈의 가죽은 전 세계에서 최고의 품질로 정평이 나있다. 공정은 크게 무두질과 염색 두 단계로 나뉘는데, 동물의 생피를 석회 수조에 며칠 담가 부드럽게 만든 후 물에 깨끗이 씻어낸다. 그 후 나무껍질, 민트, 인디고, 샤프란 꽃과 같은 천연 염료로 물을 들이는데, 이때 염색이 잘 되도록 비둘기, 염소, 소의 배설물을 섞는다. 천 년이 넘도록 이어온 이 작업 방식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은 또 그 아들에게 전해주며 가업의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작업장의 가죽 장인들은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고무장화를 신고 온종일 수조에 몸을 담그고 있다. 가죽도 사람도 알록달록 물들어 있다.


물에 젖어 축 늘어진 가죽을 들어 올리고 밟아가며 허리 한 번 펼 새 없다. 고단한 삶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죽은 아기 뺨처럼 보들 거린다. 고된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앞서 뭐라도 사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맘에 드는 것이 없다. 제품을 샅샅이 살폈지만 가죽이 아까울 만큼 디자인이 엉성하다. 빈손으로 나가는 내게 주인은 싫은 기색도 없다. "신이 함께하기를!" 축복의 인사까지 건넨다.



몇몇 가게에 들어가 물건의 가격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가격을 알려주는 대신 관심 있을 만한 물품을 죄다 가져와 늘어놓는다. 세일러 문이 옷 갈아입듯 한번 핑그르 돌았을 뿐인데 완벽한 아랍 여인으로 변신해 있는 진기한 경험도 해 본다. 이것이 그 유명한 아라비아 상인의 상술인지,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두 손 가득 쇼핑백 달랑거리기 십상이다.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새초롬한 표정도 없이 신의 축복을 내려주니 가게를 나서는 게 그리 어렵지도 않다. 판매에 열을 올리다가도 내게 질문을 퍼부어 댄다. 어디서 왔니, 왜 왔니, 언제 왔니. 그러다 보면 물건 파는 것은 뒷전, 수다를 한참 늘어놓게 된다.


그러다 보면 결국은 가방 잃어버린 이야기를 하게 된다. 다들 공항에 아는 사람이 있다며 핸드폰을 꺼내 애꿎은 연락처 리스트를 오르락내리락 한다. 괜찮다고 해도 단호하게 말한다. “무슬림은 어려운 사람 도와야 해요.”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효과가 없다. 매일 미로 속에 몸을 던져가며 길눈이 차차 밝아질 즈음 나는 그곳에서 가방 잃어버린 한국인으로 알려졌고, 사람들의 위로의 눈빛도 은근 즐길 만했다.



그날도 시장을 쏘다니다 호텔로 돌아왔는데 말쑥한 청년이 문을 열어 주었다. 호텔 주인이라는 ‘시모’라는 사람이었다. 그와의 인사말도 결국 가방 이야기로 귀결되고, 시모 역시도 걱정 말라고, 책임지고 찾아주겠다며 전화 리스트를 오르내렸다. “우리는 나쁜 일이 벌어질 때마다 신께 감사하다고 말해요. 더 힘든 일을 피해가게 하려고 이렇게 한 게 아닐까 싶어요.”


무신론자인 나에게 시모의 말은 위로보다는, 도대체 무슬림에게 신은 무엇일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코란에서 시작해 기독교과 이슬람교의 차이, 여성의 지위, 테러 등 민감한 사항까지도 질문을 계속 던졌다. 가방 찾기는 급기야 열띤 토론이 되어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시모는 이슬람 율법의 핵심은 바로 자비와 상대방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라 말한다. “코란을 낱말 그대로 해석해 정치적으로 휘두르는 사람은 진정한 무슬림이 아니라, 범죄자일 뿐이에요.”



다음날 아침, 시모는 말쑥하게 빼 입고 나를 데리러 왔다. 가방을 찾았단다. 정말? 모로코 전국 공항을 수배해 내 가방이 카사블랑카에 있는 것을 찾아내고, 페즈로 들어오는 가장 빠른 비행기로 보내기 주기로 했다고 한다. 모로코에서 인맥이란 것은 이렇게 대단한 것이었구나. 공항에 도착하니 잘 차려 입은 공항 직원이 직접 나와 게이트 안쪽까지 우리를 데리고 들어갔다. 여기저기 긁힌 상처투성이 가방을 와락 껴안고 말았다. 덩달아 시모도 와락!


*   *   *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시모에게 대접하기 찾은 Hotel Sahrai의 카페. 모던한 이곳은 천 년 전 미로를 헤매는 내 뒷덜미를 잡고 현재에 툭 떨어뜨려 놓았다. 색에도 맛이 있다면 이럴까. 차가운 모히토 속 모로칸 민트의 새콤함이 손끝까지 초록색으로 물들인다. 내일은 사하라 사막으로 떠난다. 이번에도 신께 감사 인사를 드릴 일이 생길까. 호흡을 다시 가다듬는다.





글/사진 miya

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옥스퍼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서울 체류자. 대륙을 가리지 않고 오지를 휘젓고 다녔지만, 이제는 카페에 나른하게 앉아 일기를 쓰고 엽서를 쓴다. 창밖을 바라보는 맛이 더욱 좋아져 걷기도 싫어져 버린. 아니, 아니, 나이 때문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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