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와 함께 헬프엑스를]두 번째 여행의 시작

모모와 함께 헬프엑스를 #2



여행을 다녀와서 그 이야기로 책이라는 것을 냈으니 나를 소개하기 편한 직함은 여행 작가일 것이다. 지난 2년간 그렇게 불렸다. 그런데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흔히 ‘여행 작가’라는 말을 듣고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있지도 않으며, 그 이미지에 나를 가두고 싶지도 않다.


나는 여행에 열광하지 않는다. 첫 번째 헬프엑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내 발로 간 여행이라고 칠 만한 것이 있다면 제주도 두어 번과 지방 도시 두어 번, 코타키나발루와 중국, 일본의 몇몇 도시 정도다. 나는 몇 달 전부터 황금연휴를 손꼽아 기다리며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금요일에 휴가를 내서 3박 4일 동남아라도 꼭 떠나야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숙소를 찾아보고 여행 가서 먹고 보고 할 것들을 빽빽하게 써 내려가며 행복해 하는 그런 타입은 더더욱 아니다. 주말이 되면 별생각 없이 늘어져 있거나 전등불 하나만 켜고 술과 책을 끼고 지내는 게 제일 좋다.


그런 내가 헬프엑스라는 방식으로 여행을 가는 이유는 그것이 한곳에서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그렇다. 나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물며 세상의 다양한 이들의 삶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었다.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여행’과는 의미가 조금 다른 ‘떠남’이고, 언제나처럼 내게 새로이 주어질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쓰는 방법이었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감으로써 얻을 성장과 변화를 믿었기 때문이다. 일단 오랜 기간 타지에서 지내려면 물리적, 정신적으로 안정되어야 하고, 비용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약간의 노동으로 개인의 시간과 개인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교환여행은 나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이었다.


콜롬비아의 산


헬프엑스 여행을 다시 떠나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3년 동안 단 하루도 고민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늘어갔다. 그 이유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하나씩 줄을 그어 지우는 일이 지난 3년간 아린 마음을 쓰다듬는 과정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다시 떠나야겠다고 생각해 와서인지 정작 떠나는 당일에는 이상하리만치 실감이 나지를 않았다. 마치 너무 오랫동안 잡아당겨 늘어진 고무줄 같았다. 오히려 막상 떠나기 전 마지막 두어 달은 한국에서의 일상이 너무나 소중해져 내가 정말 다시 떠나고 싶은 건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실감은 의외의 장소, 미국 댈러스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찾아왔다. 재작년에 아버지와 함께 직접 산속에 집을 짓다가 상한 허리에 복대를 두르고 좁은 이코노미석에 앉은 채 잠을 청했다. 문득 눈을 뜨자 모두 잠에 빠져 있고, 승무원들만 발소리를 죽이고 카펫 위를 걸어 다니는 새벽 시간이었다. 이를 닦으려고 기내 화장실에 들어갔다. 때마침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좁은 세면대에 코를 박고 양칫물을 퉤, 하고 뱉어내며 거울 속의 나를 보았다. 노란 전등에 비친 눈이 조금 빨갰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피로가 역력한 나를 본 순간, 지난 몇 년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며 내가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이 온몸에 전류처럼 흘렀다. 아, 그랬지, 내가 왜 이 여행을 시작했는지, 떠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 왔는지, 무슨 마음으로 나를 세상에 다시 내던지기로 했는지.


다시 떠날 결심이 온전히 선 것은 테드 창의 단편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였다. 그의 소설에서 ‘받아 들인다’는 감각을 배웠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감사히 받아들일 것,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건을 겪어도 그것이 나를 성장시키고 ‘내 인생의 이야기’가 되리라고 믿는 것. 그런 마음을 내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아, 이제는 비행기 티켓을 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막막한 독서모임'에서 읽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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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세계여행의 시작을 남아메리카로 정한 데도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나도 모르게 비행기 티켓을 끊게 한 장본인은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였다. 그의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에서 그는 유년 시절을 보낸 칠레의 숲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는 그가 묘사한, 한국과 너무나 다른 식생과 자연환경에 매혹당했다. 그의 말들은 하나같이 너무도 아름답고 슬프고 유머러스해서, 나는 남아메리카를 여행함으로써 그와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고 싶었다.


지인들은 걱정 일색이었다. 경찰들도 믿지 말라는 남아메리카인데 여자인 너 혼자 여행한다고……? 그것도 거의 4~5개월 동안 헬프엑스로 아무도 가본 적도 없는 곳을 간다니. 부모님의 마음을 졸이게 한 것을 생각하면 나는 불효자가 맞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모르는 것’을 ‘위험한 것’으로 쉽게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모르는 것과 위험한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진정한 위험을 위험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은 순진한 것이지만, 나는 모르는 것을 위험한 것으로 혼동해 내 인식의 지평을 좁히고 싶지 않다. 나는 남아메리카를 조금 더 가까이서 알고 싶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그들의 삶을 보고 싶었다.


떠나기 2개월 전부터 헬프엑스 웹사이트에서 첫 번째 호스트가 될 사람을 물색하고 있었는데,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버스로 9시간 거리에 있는 ‘그나마’ 가까운 도시 우아라스Huaraz에 흥미로운 자기소개가 보였다. 우아라스에서도 30분 더 올라가야 하는 산속에 산다는 그의 이름은 넬슨. 흙과 돌로 지은 집, 푸르른 하늘 아래 눈 덮인 고산高山과 그 아래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진 호수, 오랜 역사를 가진 원주민 복장을 한 나이 든 여성과 그녀가 요리하는 페루 음식 사진 등이 보였다. 이 가족들은 스페인어 외에도 잉카 시대의 언어인 ‘케추아어’를 쓴단다. 진정한 케추아 문화를 배우고 싶다면 여기로 오라니! 이전 헬퍼들이 남긴 애정 가득 담긴 ‘리뷰’와 평점들도 모두 훌륭했다. 이 이상 적합한 곳이 있을까. 당장 그에게 내 자기소개를 보냈고 넬슨은 흔쾌히 승낙했다. 나는 11월의 중순부터 2주간, 그의 집에서 교환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넬슨은 내가 묻는 것들에 친절하게 답장하며 말끝마다 ‘Greeting from the distance’라고 보내왔다. 생각해보면 정말 ‘지구 반대편’에서의 인사다.


넬슨과 주고받은 메시지들


현지 적응을 위해 리마에서 이틀을 보내고 우아라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9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버스 여행에는 몸보다 마음의 준비가 더 절실했다. 남아메리카는 이런 장거리 버스가 도시를 잇는 주요 교통수단이다. 땅덩이 자체도 큰 데다 산악지대가 많고 도로포장도 잘 되어 있지 않아 연착되면 이동에 한나절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흔하다. 야간에는 두 명의 기사가 교대하며 운행하는 버스도 있다. 


우아라스는 해발 3,091m의 고산 도시다. 한라산이 2,000m가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국 사람들이 남아메리카에서 고산병을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리마의 숙소 사장님은 고산을 절대 간과하지 말라고 했다. 


“버스가 산을 오를 때 추워질 수도 있으니 긴 바지에 재킷을 입으세요. 반팔을 입고 다니는 현지인들은 한평생 그곳에서 살면서 온몸으로 그 기후를 받아들인 사람들이에요.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인간이라고요.”


넬슨의 집 앞에 있다는 산


두려움이 엄습했다. 주어진 육체 조건의 차이는 명징하다. 나는 그곳에서 얼마만큼 버틸 수 있을까. 내가 넬슨의 집에 가서 도와주기로 한 일은 흙으로 짓는 게스트하우스 증축 공사 보조다. 공사 보조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고, 페인트칠이나 소소한 잔심부름일 것으로 예상한다. 문제는 ‘고산’이라는 조건이다. 아버지와 강원도에서 내 손으로 집을 지어본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고산의 조건에서 내가 고작 몇 시간이라도 노동을 할 수 있을까. 문제가 생기면 내 호스트 넬슨은 얼마나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그들이 고산증에 대비해 씹는다는 코카 이파리가 내게도 효과가 있을까.


걱정은 꼬리를 물지만, 안 되면 내려오지 뭐, 하는 마음으로 가보기로 했다. 당초의 계획대로 2주를 버텨낸다면 나는 나의 육체에 진심 어린 존경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넬슨의 자기 소개에 올라와 있던 사진




글/사진 김소담(모모)

교환여행, 헬프엑스(HelpX)로 전세계에서 ‘살아보고자’ 하는 생활인. 여행보다는 일상을 좋아하여, 장소보다는 그곳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선호한다. 대안적인 삶, 환경문제, 퍼머컬쳐(Permaculture), 채식주의, 공동체 등에 관심이 많고 서울의 공동체 ‘성미산마을’에 산다. 《모모야 어디 가? : 헬프엑스로 살아보는 유럽 마을 생활기(2018)》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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