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그책다의 『음악을 입다』 리뷰

그책다의 리뷰


이 책의 인트로에서 저자는 세 가지 영화 퀴즈로 글을 시작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입고 있던 티셔츠에 대한 질문인데요. <500일의 섬머>에서 톰과 섬머가 레코드숍 데이트를 할 때 톰이 입고 있던 티셔츠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고작 책의 첫 페이지를 읽던 제게 짜릿한 전율을 안겨주었어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한 호감과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이 단번에 느껴져서랄까.


톰이 입던 록 밴드 조이 디비전 티셔츠의 커버가 인쇄된 ‘Love Will Tear Us Apart’는 그들의 앞날에 대한 복선이자 음악적 견해가 다른 두 사람의 갈등을 나타내는 장면이에요. 음악에 특히, 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스쳐 지나갈 장면이겠지만 저는 이 장면에서 남녀가 사랑을 이어갈 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비틀스의 드러머 ‘링고 스타’를 좋아한다는 섬머의 취향을 가볍게 무시한 톰의 태도를 보면서 말이죠.


<음악을 입다>는 자칭 ‘팝 키드’라 부르는 저자가 그동안 수집한 뮤직 티셔츠를 꺼내 보이며 티셔츠에 얽힌 음악과 그 시절의 추억을 풀어놓는 책이에요. 비단 수집만이 아닌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조예가 담겨있죠. 새로운 뮤지션들의 음반을 모으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러 가며, 기념으로 구매한 티셔츠를 세탁소에서 수선해서 입는 열정은 취미가 일상이 되고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한 좋은 예시로 보이더라고요. 삶의 궤적이 수십 년간 모은 티셔츠로 알 수 있다니 기묘하면서도 꽤 근사하지 않나요?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게도 음악이 소중했던 그 시절을 반추했어요.


70년대 초에 태어나 대중문화의 수혜를 누리며 영미권을 중심으로 팝과 모던 록 음악의 전성기를 함께 보낸 저자의 일이십 대를 지켜보며, 80년대에 태어나 혼란했던 시기에 일이십 대를 보낸 나의 청춘을 보듬어주던 뮤지션이 누구였는지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그 시기의 한국 음반시장은 카세트테이프와 CD가 공존하지만 소리바다 같은 불법 프로그램이 성황을 이루던 시대였는데, 음반을 사면 부록으로 주는 브로마이드 때문에 CD를 고집했던 기억이 나네요. 처음으로 레코드숍에서 팝 음반을 구매한 뮤지션은 ‘네오소울’의 일인지라 불리는 ‘에릭 베넷(Eric Benet)’였어요. 우연히 거리를 거닐다 흘러나온 노래를 듣고 곧바로 들어가서 ‘지금 나오는 노래 뭐예요?’라는 조금 촌스러운 방법으로 구매를 했죠. 팬으로 푹 빠져 지낸 시절을 보내던 중 에릭 베넷의 내한 소식을 듣고 공연을 보러 가고 싶었지만, 당시 시간적 여유가 없던 나와는 달리 책 속의 한 남자는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공연 일정이 잡히면 거침없이 행동으로 옮겼고 공연장의 뜨거운 열기를 흡수하며 밝은 에너지를 글로 고스란히 옮겼죠. 읽는 이의 내적 흥이 밖으로 분출될 정도의 건강한 에너지를 선보이며.



지산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나온 라디오헤드 공연을 묘사하는 글에선 야생과 히피스러운 젊은 분위기에 취해 그곳에 있는 기분이었어요. 덕분에 라디오헤드의 ‘Creep’ 밖에 모르던 내게 다른 좋은 곡도 많다는 것을 알게 해 줬죠. 챕터 마다 나와있는 플레이리스트와 뮤직 티셔츠의 이미지는 눈과 귀를 동시에 즐겁게 만들죠. 이토록 풍요로운 책 한 권이라니. 탐나는 티셔츠에는 괜스레 표시를 하며 아직 구매가 되는지 검색도 해보고. 개인적으로는 책의 중반부부터 음악적 여정이 비슷해짐을 느꼈는데, 아마도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겹쳐서겠죠?


“그의 푸른 영혼은 혼탁한 나의 색채를 정련하고 걸러 준다. 진실이 담긴 음악을 연주하고, 그 음악만큼 진실하게 살려고 했던 그의 마흔 생애는 피곤하고 안일한 중년의 귀를 간질인다. 콜트레인을 입은 날, 나는 진지하고 예민해진다. 그리고 완강하게 평균적 취향을 거부한다." _227p


지루해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어긋난 펫 샵 보이즈 티셔츠를 입고, 평균적 취향을 거부하겠다는 마음으로 존 콜트레인을 입는 저자의 단호한 매력에 결국 “와-“라는 강한 탄식이 흘러나왔어요. 진심으로 부럽기도 하고.


오늘은 홍대의 ‘김밥레코즈’를 가볼 거예요.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사고 싶은 음반을 발견했거든요. 스트리밍 시대에 음악을 애정 하는 나만의 방법을 한 번 구축해보려고요. 





글/사진 이유리

성산동에서 책방 '그렇게 책이 된다'를 운영했습니다. 

http://instagram.com/becoming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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