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여행] 해가 뜨지 않는 북극의 파리, 트롬소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특집 #2



매일 아침 나의 출근길은 새하얗게 눈 덮인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처음에 온라인으로 집을 구할 때, 이렇게 언덕 위의 집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북극선 너머에 위치한 노르웨이 트롬소이지만, 9월만 해도 눈이 내리지 않았기에 내리막길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10월 말이 되자 본격적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1월이 되면서 기온이 출렁이면 녹았던 눈이 꽁꽁 얼어 붙어 길은 아이스 스케이트장을 방불케 했다. 그렇게 매일 아침 출근길은 공포의 길이 되었다. 이런 날에 트롬소시에서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아주 작은 돌멩이를 길에 뿌려놓는다. 물론 덜 미끄럽지만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신발에 스파이크를 착용했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내딛는 두 다리가 무사히 평지에 닿을 때, 한껏 긴장했던 내 두 어깨는 마치 게임을 클리어한 듯한 안도감에 휩싸인다. 얕은 한숨과 약간의 기쁨까지, 나의 하루는 그렇게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다.



12월이 되자 눈은 더더욱 많이 내렸다. 이제 영상의 기온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노르웨이는 북유럽이지만, 노르웨이 안의 트롬소는 북유럽이라기보다 북극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트롬소에서는 11월 21일을 기점으로 해가 뜨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트롬소 시내 건너편에 있는 산 너머로 태양의 붉은 기운이 보여 조금 환하다는 느낌은 받지만, 해는 1월 21일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이 기간을 Polar Night 즉, 극야라고 부른다.



하지만 극야라고 해서 마냥 어두컴컴한 것만은 아니다. 쌓인 눈 덕분에 거리는 온통 하얗다. 붉은 지붕이 인상적인 내가 사는 집 역시 눈으로 뒤덮여 하얀 지붕이 되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보이면 하늘은 맑은 것이다. 그런 날에는 초록빛 오로라가 찾아온다. 그렇게 북극의 겨울은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내가 2015년부터 거주하고 있는 그린란드보다는 덜 생소한 노르웨이이지만, 트롬소하면 그렇게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북극 여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로라 투어를 가고픈 도시로 통할 것이다. 그 밖에 트롬소는 예부터 Paris of the North, ‘북극의 파리’ 혹은 The gateway to the Arctic, 즉, ‘북극으로 가는 관문’으로도 불렸다. 옛날 북극 탐험가들이 북극으로 가기위한 관문으로 트롬소를 방문했을 때, 현대적인 건축물과 음식, 문화, 패션,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등 생각보다 발전된 모습에 놀랐고, 그래서 이곳을 당시 유럽 최신 유행의 중심이었던 파리라 불렀다고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트롬소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 오르자 나는 왜 트롬소가 여전히 북극의 파리라고 불리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반짝반짝 아름다운 불빛으로 빛나는 트롬소는 실로 파리의 아름다움과 견줄 만했다.


나는 이 아름다운 북극의 파리, 트롬소에 위치한 북극경제이사회에서 4개월간 인턴으로 일하게 되어 오로라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느끼고 있다.




"En! To! Tre!"


11월 23일이 되자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12월의 첫째 일요일, 올해는 12월 2일에 Advent, 대강절이 시작되었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성탄과 재림을 기다리는 절기이다. Advent는 라틴어에서 온 말로 ‘오다’ 혹은 ‘도착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2월 2일은 트롬소 시내 중심에 위치한 거대 크리스마스트리에 점등식을 하는 날이기도 하다. 점등식이 있기 며칠 전, 이 크리스마스트리는 전통적으로 헬리콥터로 옮겨지는데 나도 사무실 창문에서 그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뚜두두두 하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트리가 헬리콥터에 줄로 매달려 시내 광장까지 배달된 것이다.


트리 점등식에 많은 사람들이 오리란 예상에서 30분 정도 일찍 나가보았다. 역시나 트리 주변은 인파로 꽉 차 있었다. 작은 무대도 설치되어 밴드와 가수들이 나와 크리스마스 캐롤을 불렀다. 오후 3시, 트롬소 시장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노르웨이어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곧 점등이 될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시장이 스위치가 연결된 전선을 들어 하늘 위로 손을 뻗었다. 사람들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En! To! Tre!


드디어 트롬소 광장의 거대 트리에 점등이 되고, 주변이 환하게 빛났다.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들, 연인들, 관광객들 등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빛에 드러났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대림절을 맞아 사람들이 하는 특별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 종이별을 집 안 창문가에 다는 것이다. 그린란드에서는 오렌지 색깔의 종이별을 창가에 달곤 했는데 이곳 노르웨이는 집집마다 별의 크기도 색도 다양하다. 창가의 별 장식도 극야를 환하게 밝히는 데 큰 몫을 한다.


또한 슈퍼마켓에는 일찍부터 크리스마스 맥주가 한 코너 전체에 자리 잡았다. 트롬소에는 지역 맥주 양조장이 있다. 본래는 시원함을 강조하는 파란색 바탕에 하얀 북극곰이 그려진 맥주캔, 혹은 새 하얀 설산이 인상적인 맥주캔 패키징이었다면, 크리스마스 맥주캔은 따뜻함을 강조하는 붉은 색으로 장식된다. 크리스마스 맥주는 시판 맥주보다 높은 알코올 농도를 자랑한다. 보통 일반적인 맥주가 4.5% 정도인데 반해 크리스마스 맥주의 알코올 도수는 6.5%이며 달달함이나 과일맛도 더 많이 첨가되어있다.



나는 특히나 12월 시작부터 크리스마스이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좋다. 쇼핑몰이나 거리의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포장하여 두 손 가득 들고 지나다닌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시내에서 집까지 이어지는 약 800미터의 거리 중간에 학교가 하나 있다. 아이들은 참 재미있다. 미끄러지지 말라고 일부러 깔아 놓은 작은 돌멩이 길을 피해 굳이 미끄러운 길 구석을 따라 내려온다. 얼음에 쭉쭉 미끄러지는 그 아찔함을 즐기는 모양이다. 청개구리들 같다. 그러면서 넘어지기도 하는데 아이답게 웃으며 그걸 즐긴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을까 싶다.


몸과 다리는 긴장했지만 큰 힘들이지 않고 내려갔던 내리막길이 퇴근할 때는 오르막길이 되어버린다. 퇴근길은 출근길과 다르게 체력이 필요하다. 시내에서 장이라도 보고 두 손 가득 채워 올라 올 때면 조금 힘에 부친다. 네 달 동안 열심히 오르내렸던 길이지만, 가끔 숨을 고르며 올라온 길을 되돌아본다. 트롬소의 야경이 내려다보인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한 기분이다. 지금 나는 분명 좋은 경험을 하고 있는 거겠지. 나는 가족과의 만남과 크리스마스이브를 고대하며 다시 언덕을 오른다.





글/사진 밤하늘은하수

세계 최대 섬인 그린란드에 사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그린란드 대학교에서 West Nordic Studies 전공으로 사회과학석사과정 중에 있다.
https://galaxylake.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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