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미야]암스테르담 Bruin Café

카페 미야 #2



사랑하는 사람과 공항에서 재회하는 것만큼 애틋한 일이 또 있을까?


국경을 넘는 짜릿함과 게이트 너머 들떠 있을 그의 얼굴. 그는 공항에서 비행기 도착을 알리는 전광판을 들여다보며 게이트가 열릴 때마다 지친 표정으로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얼굴을 찾을 것이다. 다가가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그 설레는 한 순간을 위해 게이트를 바라본다.



H와 알게 된 건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직장 신입 시절, 유난히 위계질서가 엄격했던 회사 분위기 속에서 동갑내기인 H에겐 언제나 깍듯한 존대와 호칭으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매일 계속되는 심한 야근에 점심, 저녁, 간식까지 세 끼를 함께하며 하루 14시간을 꼬박 붙어있다 보니 이내 한숨 섞인 연애사까지 공유하며 서로 토닥이는 베프가 되었다. 갑작스레 헤이그에 회의가 잡혔다는 H의 반가운 연락에, 쓰던 논문을 팽개치고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갔다. 나는 런던에서 H는 인천에서. 출발지는 달랐지만 비행기 도착시간은 같았다. 공항 라운지 저편에 나타난 H. 두 팔 벌려 달려가 얼싸안고 방방 뛰는데, 주책없이 눈물을 훔치고 만다.



"낮게 드리운 샹들리에와 낡은 테이블에 마치 18세기로 시간여행을 거슬러 온 듯했다."



기차는 단 17분 만에 우리를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내려놓았다. 오후 회의까지는 여유가 있어서 담(Dam) 광장 주변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암스테르담은 이미 크리스마스였다. 역을 나서자마자 도로를 따라 늘어선 사람들. 그 틈을 헤집고 들어갔더니 크리스마스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있었다. 네덜란드에는 신터클라스(Sinterclaus)와 검은 피터(Zwart Piet)라는 독특한 크리스마스 문화가 있다. 신터클라스는 12월 5일에 찾아와 착한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고 나쁜 아이에게는 하인 검은 피터가 벌을 준다. 온몸을 새까맣게 칠한 검은 피터가 퍼레이드 선두에서 아이들에게 비스킷을 나눠주며 분위기를 돋운다. 사실 이는 네덜란드가 아프리카를 식민 지배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네덜란드 사회에서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논란을 일으키며 전통이다, 인종차별이다 대립이 첨예하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우리는 눈앞에서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휙휙 날아다니는 피터에게 체면 불구 있는 힘껏 손을 뻗어 비스킷 몇 알을 얻어내 두 볼 가득 우물거리기 바빴다.



담 광장으로 향하는 골목들은 트렌디한 옷가게, 레스토랑, 치즈 가게, 펍, 카페가 뒤섞여 지루할 새가 없었다. 먹고 싶은 토핑을 골라 만드는 Burger Bar의 수제 버거는 내 ‘인생 버거’였다. 아삭거리는 채소, 한입 베어 물면 숯불 향이 코를 찌르는 두툼한 패티. 치즈의 나라답게 체다 치즈는 살구 빛 벽돌 치즈를 잘라 얹어 궁극의 고소함을 맛볼 수 있었다. 흡족하게 배를 채운 우리는 고풍스러운 왕궁을 뒤로하고 담 광장을 가로질렀다. 마차, 핫도그, 거리공연, 관광객, 비둘기로 뒤섞인 광장 끝에 얼키설키 각목을 쌓아놓은 듯 독특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다. 그 주변을 서성이는데 훈남 하나가 나타나 (암스테르담의 또 하나의 재미는 훈남 구경!) 매거진에 쓸 크리스마스 특집 기사 취재 중이라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크리스마스에 뭘 할 건가요? 나는 런던 월세 방에서 쓸쓸히 라면을 끓일 것 같네요, 하고 말했다.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북한 망명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 같습니다.” H의 상반된 답변이 훈남 기자를 감탄시켰다. 잡지에 실리면 한국까지 보내준다는 말에 주소를 꼭꼭 눌러 적고 구태여 핸드폰 번호까지 남겨줬다. H는 서둘러 헤이그를 향해 떠났고, 나는 그가 회의를 마칠 때까지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브라운 카페(Bruin café)를 찾아 유대인 지구(The Jordaan)로 가보기로 했다.



브라운 카페는 네덜란드의 전통 펍이다. 담배 얼룩과 세월의 흔적이 나무로 지어진 벽과 천장을 짙은 갈색으로 물들여 브라운 카페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안네의 집(Anne Frankhuis)을 지나쳐 수로 옆 근사한 은행나무 아래 테이블이 한가로운 브라운 카페 'Cafe ‘t Smalle'에 들어섰다. 짙은 고동색의 바 뒤로 천장까지 빼곡히 들어찬 각종 술병과 술통들, 낮게 드리운 샹들리에와 낡은 테이블에 마치 18세기로 시간여행을 거슬러 온 듯했다.



삐걱거리는 좁은 계단을 따라 천장이 낮은 2층으로 올라갔다. 단출한 가구는 본래의 선명한 고동색을 잃은 대신 세월의 빛이 더해졌다. 아늑한 다락방 같았다. 작은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손님이라고는 나와 옆 테이블의 영국 남자 셋. 하이네켄이 이렇게 청량한 맥주였던가, 일기장을 꺼냈다. 이따금 창문 너머 옆집을 들여다보다가, 옆 테이블 남자들이 아주 진지하게 네덜란드 여성들을 품평(!)하는 얘기를 훔쳐 듣다가, 문득 그들의 이야기에 참견하고 싶은 마음이 솟기도 했다.



어느새 석양이 은행나무에 내려앉았다. 금빛으로 물든 구름 아래 가로등이 하나씩 불을 밝히고, 잘 깎아놓은 연필처럼 가지런히 늘어선 건물들이 물 위로 흔들렸다. 발개진 얼굴로 수로를 따라 천천히 걷다보니 저 멀리 나를 기다리고 있는 H가 보였다. 나는 또다시 두 팔 벌려 그 설레는 한 순간을 위해 달려갔다.





글/사진(1, 3-9) miya

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옥스퍼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지금은 서울 체류자. 대륙을 가리지 않고 오지를 휘젓고 다녔지만, 이제는 카페에 나른하게 앉아 일기를 쓰고 엽서를 쓴다. 창밖을 바라보는 맛이 더욱 좋아져 걷기도 싫어져 버린. 아니, 아니, 나이 때문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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