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술집]카페 사이, 하몽을 자르는 프란체스코의 형제

작은 술집 #1



신을 찾아 이탈리아 전역을 떠돌던 사내가 있었다. 10년의 행려를 겪고 나자 그는 천국의 갈구도 하루 한 끼 구걸을 마치고 난 뒤라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인간 가운데 가장 성스럽다는 프란체스코가 사는 마을 아시시에 도착해서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누가 나에게 오늘 저녁을 베풀 것인가’ 선포하는 일이었다. 그의 내면이 갈구하는 실체가 신이었다는 건 그의 겉모습에 드러나 있지 않았으므로, 발밑엔 빵 부스러기 하나 쌓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13세기의 골목의 허다한 거지 중 하나였다.


밤이면 여인의 창가 아래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던 거상의 도련님, 사교계의 일등 호남자 프란체스코가 나병 환자들에게 입을 맞추고, 가난한 이들에게 남은 옷가지 한 벌마저 벗어주는 수도사로 변하는 데는 겨우 일주일이 걸렸다고 했다. 그가 진짜 성인일지 단숨에 미쳐버린 광인일지는 오직 신만이 알 수 있겠지만, 신에 이르는 길은 몰라도 저녁 한 끼 정도는 기꺼이 내어 주지 않을까? 남아 있는 게 있다면. 그는 프란체스코가 한 줌 한 줌 벽돌을 날라 손으로 지었다는 작은 교회로 찾아 갔다. 성인 혹은 광인은 오늘도 탁발과 멸시, 노래와 돌팔매, 섭리와 비웃음 사이에서 시달리던 옷자락을 가지런히 모으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두 해 전 나는 순전히 유유자적의 순간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북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이라는 현실을 몇 해 견디고 나자 이곳에선 끝내 유유자적할 수 없을 거라는 자조만 남아 있었다. 좁은 도로 양쪽엔 거주자 우선 주차 공간이 그려져 있었고, 그 가운데로 다니는 차들, 걷는 내내 뒤에서 조여 오는 엔진 소음에 곤두서야 했다. 담벼락 쓰레기와 보행 흡연자, 담배꽁초 다발. 월세는 날로 불어나 겨울 패딩을 맡기던 세탁소도, 디자이너가 생각한 이상적 다리 길이와 내 실체의 접점을 찾아주던 수선집도 문을 닫았다. 현관은 늘 누군가 주워 온 박스 더미로 너저분했고, 다들 종일 창가에 서서 누가 자기 집 앞에 주차를 하지 않나 지켜보는 것 같았다.


손에 닳아 반질반질해진 브레멘의 음악대, 안데르센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오덴세, 한자 동맹 선원들이 묶어 가던 베르겐의 500년 된 마을. 값은 톡톡히 치렀다. 하지만 마을 모습은 값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로 정해지는 것 같았으므로, 남들 잘 사는 모습 넘겨다보는 것만으로 그런대로 유유자적했다. 그리고 멀리 오로라를 찾아 북극권 마을로 떠났다. 해가 떠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바닷가에 앉아 조약돌이나 줍다가, 오후 세 시 지나 어두워지면 연어 살을 발라 맥주를 마셨다. 오로라를 기다리는 밤은 길고 길었다.



프란체스코에게 뻣뻣한 빵이나 얻자고 보낸 10년은 아니었다. 당신은 어디에서 신을 찾을 수 있었습니까? 그가 물었다. 10년 행려 끝에 이른 곳이 여기라고요? 프란체스코가 말했다. 저런, 당신은 한 걸음도 신께 다가가지 못했군요. 이곳은 당신에게 줄 빵 부스러기마저 아까워하는 마음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잖소. 저들이 얼마만큼 신에 다가선 걸로 보이나요?


애석하게도 프란체스코마저 신이 있는 곳을 말해 주지 못했다. 당신의 마음속이라 말하기엔 프란체스코 자신도 신의 실체에 대한 갈망이 너무나 컸다. 그들은 세계의 수도 로마를 지나 예수가 태어난 동방, 이방 신의 나라 이집트까지 함께 먼 길을 걸어 보기로 했다. 들판을 지나고 숲을 헤치며 프란체스코는 온갖 새들에게 천국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천국을 거니는 건 아니었다. 태양을 형제 삼고 불을 자매 삼아 살아가자 다짐했지만, 배고픔과 들짐승들의 위협은 끊임없이 죽음 가까이로 몰아붙였다. 위기의 순간에도 신은 나타나주지 않았다. 인간의 비루한 생애만이 언제까지고 이어졌다.



한때 프란체스코 형제회의 수도사였던 ‘균’이 커피를 내려주는 카페 ‘사이’는 망원동에서 일찍부터 문을 열고 있던 가게지만 요사이 그는 커피보다 하몽을 자르는 일에 더 신경을 쓰고 산다. 이제 막 봄이 왔나 싶은, 커피를 들고 한강에나 나가볼까 싶은 저녁이었다. 오늘부터 하몽을 하게 됐어요, 시간 날 때 와인 드시러 오세요. 하몽이 뭔지 모를 때였다. 한강이 절실해 나온 길도 아니었으니 어물쩍 자리에 앉았다. 그럼 하몽 하나 주세요. 그가 고기 덩이를 칭칭 감고 있던 랩을 풀었다.


하몽은 돼지 넓적다리를 말린 스페인 음식으로, 스페인에선 국가차원에서 맛과 함량을 관리하고 해마다 최고의 하몽을 뽑기도 한다. 검색 결과를 읽고 나서, 무엇을 마시면 좋을까 휘적휘적 메뉴판을 넘겼다. 벨기에 플로레페Floreffe 수도원에서 만든 플로레페 맥주 마셔 보셨어요? 하몽하고 같이 먹기 좋아요. 와인 한 병 가격이긴 하지만 일반 맥주처럼 막 들이키며 마시는 맥주가 아니라 양도 적당할 거예요. 지난 500년 간 수도사보다 맥주와 어울리는 직업이 있었을까. 가난한 프란체스코의 형제였던 ‘균’의 말대로 미적지근한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고, 빳빳한 빵 조각에 기름진 하몽 한 점을 올려 천천히 씹었다.



하몽 염분에 고혈압의 위기를 느끼며 맥주 한 병을 길게 길게 마시고 있는 사이 몇 명의 잘 차려 입은 여성들이 카페 사진을 찍고 지나갔다. 1000만의 사람들이 사는 도시의 구석진 한 귀퉁이, 망원동은 서울에선 비교 대상이 드물 만큼 물가가 유난스럽지 않은 동네였다. 40평 내외의 건물을 팍팍하게 쪼개어 월세를 받는 원룸, 빌라 건물 들이 풍경의 거의 전부였고, 택시를 타면 어디로 가자 말해야 할지, 누구나 알 만한 장소 하나 없었다. 시시때때 창밖을 두리번대면 땅값 치솟는 소리가 들리긴 했다. 서너 집 건너 하나씩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었고, 삶의 일대 전환을 노리는 사람들이 부동산에 모여 월세 올릴 시기를 모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서울 어디에서건 흔하디흔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도 더러 여행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나라면 어느 날에도 렌즈를 통해 바라 볼 일 없는 대수롭지 않은 골목을 오직 렌즈를 통해서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하루하루 늘어갔다.


저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보는 것일까? 핫플레이스? 홍대 뒷길? 뜨는 동네? 유리문 밖으로 개 한 마리가 길게 자란 털로 바닥 먼지를 쓸며 지나갔다. 취기가 도는 걸까. 그 개가 벼룩 묻은 유기견인지, 이국을 지나는 여행자인지, 프란체스코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수행자들은 바다와 사막과 돌길과 얼음 위를 걸어, 다시 신을 찾아, 아시시로 돌아왔다. 프란체스코는 눈멀고 뼈만 남은 추악한 몰골이 되기까지 기도하고 갈구하다 자신의 처음 기도 장소였던 포르티운쿨라, 손수 지은 작은 교회에서 죽었다. 자신의 몸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받았던 다섯 개의 상처가 생겨났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는 ‘죽음 형제’의 품을 향해 호산나, 나귀를 타고 두려움 없이 걸어 들어갔다.



한때 프란체스코의 형제였던, 지금은 하몽을 자르는 ‘균’이 올리브 절임과 빵을 더 가져다주었다. 팔다 남은 자투리라 모양이 좀 그렇지만, 없는 것보단 나을 거예요. 반쯤 빈 맥주잔을 도로 채워주며 ‘균’이 말했다. 흐트러진 빵 조각에 깃든 세심함은 분명 남은 술잔 비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빵 끄트머리 몇 조각만큼이라도 세심하게 살다 보면, 어느 날이고 이곳에서 유유자적의 시간을 맞게 될지 모른다. 나는 이곳에서의 삶을 전보다 세심하게 살아볼까 싶어졌다.


대수롭지 않은 날들에 하루 정도는 렌즈를 가져다 대 보면 어떨까. 되도록 어딘가를 가지 않으면서 며칠의 경험을, 몇 년의 경험을 찬찬히 적어 보면? 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도하듯, 유유자적의 순간이 나귀를 탄 예수처럼 내 마음에 임하시길 바라며.


먼 데 사는 친구들이 누가 있을까 떠올려 보았다. 네가 사는 장소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을 별 것 없어도 한 달에 하나씩 보내주지 않을래? 몇 개의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내가 볼 수 있는 건 눈앞에 펼쳐진 벽돌들, 무심히 자기 자리에 박혀 있는 도시 한 귀퉁이뿐이지만, 그게 지식도 아니고, 새삼 깨달을 것도 없겠지만, 일단 네 눈앞의 벽돌과 내 눈앞의 벽돌을 연결해 보자. 그런 식으로 서로를 동경하다 보면, 그게 오해라도 사는 공간은 늘어나게 될지 몰라. 최소한 작은 휴대폰 액정 안에서만이라도. 그래서 이 공간의 이름을 벽돌들, 브릭스라 부르기로 했다. 이런 일을 벌이느라 또 얼마만큼 유유자적과 멀어질 수도 있겠지만.





글/사진 이주호

여행 매거진 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 『도쿄적 일상』을 펴냈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