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 여행작가의 여행법]신선놀음이라 불러다오, 스위스 로이커바트!

직딩 여행작가의 여행법 #1



스위스의 청정도시 체르마트Zermatt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로이커바트Leukerbad에 도착했다. 기차가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간식 먹는 데 정신이 팔려 하마터면 내릴 역을 지나칠 뻔 했지만, 역시 행운은 나의 편이었던 것. 무사히 로이커바트 행 버스에 탑승, 만원의 버스 안에서도 당당히 자리를 꿰찼다. 버스가 오르막길을 내달리기 시작하자, 놀랍게도, 페루의 마추픽추가 아닌가, 화려한 산세와 웅장한 스케일이 펼쳐졌다. 그 풍경에 졸리던 눈이 번쩍 뜨였다. 사람 마음 모두 똑같은 건 어딜 가나 같은 이치, 버스 안 승객들이 너도 나도 휴대폰을 꺼내 들고 버스 창밖으로 펼쳐지는 로이커바트의 풍경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셔터를 눌러댔다.



오늘의 목적지는 테름Therme,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 온천 테마 파크다. 로이커바트를 스위스 여정에 넣었던 건 몇 년 전 지인의 추천 때문이었다. 세상사든 여행이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걸 오랜 세월 터득한 터라 별 기대 없이 온천장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나는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병풍처럼 테름을 에워싼 알프스 산맥, 부드럽게 몸에 닿는 온천수, 각양각색의 테마를 입힌 실내외 풀장! 신선놀음이라 했던가, 여기저기 오가며 물장구를 치고 놀이기구를 타고, 이토록 절절한 물놀이가 대체 얼마 만이던가. 늘 어디론가 여행을 가도 바쁘다는 핑계, 혹은 다른 일정이 많다는 핑계로 이런 놀이시설엔 발조차 담가본 적 없었다. 하지만 로이커바트에서만큼은 온전히 나를 내려놓고,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늘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마저도 지켜내기 버거워 치열하게 부딪치고 상처받는다. 내 서울의 일상에 비하면 이 얼마나 황송한 시간인가. 내 이마를 간지럽히던 미풍과 내 피부를 따끈하게 덥혀주던 햇살 또한 스위스가 주는 축복이었다.


어린아이처럼 야외 온천 놀이에 온전히 열중했다 싶었는데도 배꼽시계는 여지없이 가열 차게 울려댔다. 이른 아침 기차를 타기 전 숙소에서 새벽 같이 일어나 주먹밥을 싸신 어머니 표 도시락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온 가족이 어렵게 시간 맞춰 스위스 여행을 감행한 덕분에 누려보는 호사이기도 했다. 스위스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수영복을 입고 잔디밭에 앉아 주먹밥을 먹게 될 줄이야. 예상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스위스에서 먹었던 그 어떤 호화로운 만찬보다 맛있었던 한 끼였다. 그것도 주변 현지인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껏 받으면서 말이다.



산을 끼고 있는, 지극히 아름다웠던 온천 마을, 로이커바트. 버스를 타고 다시 기차역으로 나오는 순간 다시 한 번 눈앞에 펼쳐지던 아름다운 마을의 전경. 여행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 바지만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유명한 대도시나 중요한 스폿보다는 이렇게 기대 없이 스쳐 지나가는 차창 밖 풍경, 바람 한 줌이 더 마음에 동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건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일까, 아님 인생이 나에게 주는 깨달음일까.


뭐 둘 다여도, 둘 다 아니어도 상관없다. 내가 그 순간을 충분히 즐겼으므로. 그걸로 나는 충분히 행복했으므로.





글/사진 루꼴

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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