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책방][재즈 시대의 메아리] 헤밍웨이와 잃어버린 세대

책과 책방 특집호 #2

SPECIAL : 재즈 시대의 메아리



진심이 담긴 한 줄의 문장. 그게 다였다. 내가 헤밍웨이 문학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게 된 이유 말이다. 그의 나이 스물하고도 일곱이 되던 해, 그러니까 지금의 내 나이와 꼭 같았던 때, 그는 첫 장편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썼다. 쉽게 읽혔지만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 나이에 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시대의 아픔을 날카롭게 꿰뚫어보는 그의 통찰력에 놀랐다. 작품의 초반부는 프랑스 파리, 중반부부터 후반부까지는 스페인의 팜플로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는데, 나는 특히 작품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초반부에 마음을 빼앗겼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20년대, 전쟁의 상흔으로 인해 삶의 방향성을 상실하고 방황하며 파리로 건너온 미국 젊은이들의 모습이 사실적이고 진솔하게 담겨있었다.


헤밍웨이를 사랑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파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헤밍웨이와 파리는 하나의 세트였다. 그가 20대 청춘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이자, 그가 만들어낸 등장인물들이 허무감에 휩싸여 술과 환락에 취해 그토록 휘청거리고 다녔던 도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열다섯 번째 완독하던 날 밤, 당장 파리로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파리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파리에 도착한 날 눈이 내렸다. 헤밍웨이는 파리의 겨울이 혹독하고 고약하다 말하곤 했지만 눈 내린 파리는 그의 말이 무색할 만큼 아름답고 고요했다. 내가 파리에 간 이유는 하나였다. 마음껏 길을 잃어보기 위해서.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았다. 무엇을 할지 계획하지도 않았다. 비르하켐 다리 위에 서서 푹 삶은 와이셔츠처럼 새하얀 눈이 포근히 길 위에 덮여가는 것을 보며 발길 닿는 대로 이 도시를 무작정 걸어보자 다짐했다. 한 손엔 따뜻한 핫초코를, 다른 손엔 카메라를 들고 어깨 위에 가만히 내려앉는 눈을 이따금씩 털어내며 쉬지 않고 걸었다. 무수히 많은 카페와 술집, 그리고 레스토랑들을 지나쳤다. 걷다 보니 우연히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주인공 제이크가 친구인 로버트 콘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 라브뉘 식당도 마주쳤다. 작품에서 제이크와 그가 사랑하는 여자 브렛, 그리고 콘과 빌을 비롯한 그의 친구들은 정말이지 쉴 새 없이 파리 전체를 휘젓고 다닌다. 그들은 좀처럼 한 곳에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끊임없이 이 카페에서 저 카페로, 이 클럽에서 저 클럽으로, 또 다시 술집에서 술집으로 옮겨 다닌다. 커피값과 술값을 도대체 무슨 돈으로 감당하는 것인지 의아해질 정도다.


마치 끝없이 갈증을 느끼는 사람처럼 그들은 충족되지 못할 욕망을 채우기 위해 목구멍으로 샴페인과 위스키를 털어 넘긴다. 등장인물들이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도 카페를 전전하는 일상과 별로 다를 바 없다. 특히 브렛은 카페와 술집을 옮겨 다니는 것처럼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마음을 주고 금방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미련 없이 떠나버린다.



이 소설에 대단한 플롯이 있는 건 아니다. 드라마틱한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고, 택시를 타고 다른 술집으로 이동하고, 그 술집에서 또 다른 친구를 만나고, 또 다시 다른 클럽으로 가서 사람들을 만날 뿐이다. 이런 식의 플롯이 반복되는 것으로 소설의 초반부가 흘러간다. 서사가 비교적 뚜렷한 19세기 리얼리즘 소설에 익숙해져 있다면 당혹스러울 만하다. 밤낮으로 파리 거리를 헤집고 다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꼭 길을 잃은 사람들 같다. 거의 예외 없이 술에 취해 있고 향락을 좇고 있으며 정해진 목적지 없이 이리저리 비틀거린다. 당대의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자신의 살롱으로 불러 그들에게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거트루드 스타인 여사는 1920년대 전후 작가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모두 길을 잃은 세대요.” 이때부터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는 제1차 세계대전 후 환멸감에 빠진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이게 되었다. 그리고 스타인 여사의 이 말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에피그래프가 되었다.


시린 손을 코트 주머니에 연신 집어넣으며 제이크가 자주 가던 셀렉트 카페를 지나쳐 정처 없이 걸었다. 오르세 미술관은 네 번째 방문이지만 처음 온 것처럼 설렜다. 입장을 하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 위층에서 미술관 전체를 내려다보았다. 헤밍웨이가 파리의 클로즈리 데 릴라 카페에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한참 써내려 갈 당시만 해도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미술 조각품들이 놓인 자리엔 기차역 플랫폼의 의자가, 전시를 구경하는 방문객들 대신에 다른 도시로 이동하려는 탑승객들이, 미술관 메인 통로에는 이제 막 출발하려고 준비 중인 기차가, 그리고 스페인의 낯선 도시로 새로운 길을 떠나려는 제이크와 빌이 있었을 것이다. 소설의 인물들은 자꾸 어디론가 떠나길 열망하지만, 달리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파리에 머물고 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옮겨 다닌다고 해서 나 자신에게서 달아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나에게 여행은 무엇일까? 중요한 건 내가 앞으로 가게 될 ‘장소’가 아니라 현재라는 ‘시간’이 아닐까.


눈은 이제 그쳤다. 저녁 공기가 제법 상쾌했다. 가로등에 불이 하나씩 들어오고, 자, 또 길을 잃어볼 시간이다.



*  *  *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부상을 당했다. 정상적인 성생활이 불가능해졌고, 그로 인해 사랑하는 여자와의 미래도 꿈꿀 수 없게 됐다. 제이크는 신문사 특파원으로 파리에 거주하고 있다. 기사를 쓰고 나면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커피도 한 잔 하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나 해가 지고 나면 그를 지탱해주고 있던 모든 이성과 논리의 영역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린다. 낮 동안 제이크가 애써 외면해왔던 그의 상처는 밤이 되자 잔인하게 고개를 들고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는 사실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파리의 밤엔 사람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단순히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파리에서 밤거리를 걷다 보면 도수 높은 샴페인을 한가득 마신 것처럼 문득 몽롱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뭔가 이전과는 다른, 아주 생경한 감각들이 일깨워진다. 전에는 해보지 못했던 충동적인 행동들이 하고 싶어지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상상들이 머릿속을 메운다. 암스테르담행 기차에 훌쩍 올라볼까 싶기도 하고, 지나가는 아무 버스나 잡고 타서 종점까지 가볼까 하는 충동도 든다. 낮에 파리 시내를 분주하게 돌아다닐 땐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밤이 되니 차곡차곡 가슴 한 편에 쌓인다. 센 강 너머로 노란 불빛을 뿜는 에펠탑을 보며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듣는다. 파리의 밤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불가능한 일들이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처럼.



몽마르트에 오면 항상 이 근처 술집을 배회하고 다녔을 헤밍웨이의 모습과 그가 만들어낸 소설 속 주인공들의 혼란스러운 삶의 일면이 눈앞에 그려진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도 종종 등장하곤 하는 몽마르트는 주인공들에겐 일종의 도피의 장소다. 제이크와 브렛을 포함한 그들의 일행은 항상 ‘밤’의 몽마르트를 거닌다. ‘언덕에나 가볼까?’라는 질문엔 ‘몽마르트 언덕에 올라 근처 술집에서 술이나 한 잔 할까’의 의미가 담겨있고, 동시에 복잡한 생각은 이제 제발 좀 집어치우고 싶다는 일말의 소망도 들어있다. 언제나 그렇듯 효과는 미미하고 극복하기 힘든 고통은 계속되겠지만.



옅은 보랏빛을 살짝 띠고 있는 사크레쾨르 성당은 겨울 밤하늘 아래 유난히 몽환적이다.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다. 방문객도 거의 없다. 음악 소리 대신 서늘한 겨울바람 소리만 들려온다. 끝없이 밀려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하던 뒷골목의 식당들도 거의 문을 닫았다. 여름날엔 새벽까지도 불이 환히 켜져 있곤 했는데. 대로변으로 나오자 고요했던 밤공기는 점차 사라졌다. 부산스러움과 흥겨움이 고요함을 대신했다. 물랑루즈의 붉은 풍차가 강렬한 빛을 뿜어낸다. 홀로 늦은 저녁 식사를 하는 남자, 샴페인을 터트리며 박수를 치는 사람들, 저마다의 밤. 파리의 밤에선 내가 사랑하는 작가의 숨결이 느껴지고, 그가 만들어낸 등장인물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센강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 자정 즈음에 숙소에 도착할 것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게 불빛이 하나 둘 꺼진다. 호텔 입구까지는 이제 몇 걸음. 천천히, 천천히, 남은 걸음을 세어보며 걷는다. 열두 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파리의 미드나잇, 그리고 얼마 뒤 어김 없이 내일의 해가 떠오를 것이다.





글/사진 곽서희

19세기 영국 소설 전공. 지독한 낭만주의자이자 몽상가다. 한 해에 열 두 번은 여행을 떠나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 F값도 모르면서 카메라로 순간을 기록하며 산다. 인생은 퍽 아름답다고 믿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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